닿지 못한 마음은 사진 속에 빛으로 남았다
가끔은 지나간 사랑 이야기를 꺼내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오래된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다가 무심코 멈춰 선 파일 하나. 흑백의 프레임 속에는 그녀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녀를 만났던 건 내 인생에서 유독 풍파가 많고 어두웠던 시절이었다. 웃을 일이라곤 하나 없는 내게, 만날 때마다 기어이 웃음을 만들어주던 사람. 우리의 만남은 길지 않았고, 결국 못난 내 자격지심과 마음 탓에 좋은 친구로 남기를 택했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내가 나이테를 하나둘 더해가는 동안 그녀는 자연스레 '추억'이라는 이름의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깊은 어둠에 갇혀 있을 때, 하필이면 가장 눈부신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일까 형벌일까?
사진 속 장소는 그녀와 함께 갔던 어느 미디어 아트 전시회였다. 빛을 이용한 오브제와 빔 프로젝터가 만들어내는 실험적인 공간.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부서지는 빛들을 보며 감탄하던 그녀 뒤에서, 나는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지금 와서 보니 그때 찍은 사진들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어둠 속에 서 있는 나, 그리고 빛 속에 서 있는 그녀.
"좋아하는 사람에게선 빛이 난다"는 흔해 빠진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바보 같은 사진쟁이는 그 말을 낭만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증명해버리고 말았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 마음은 사진에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빛이 있었고, 그 빛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어 그저 그녀의 그림자 뒤에 숨은 내가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렌즈 앞으로 내세우지 못했고, 결국 그녀의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했다. 빛나는 뒷모습만을 쫓다 스스로 뒷걸음질 쳤던 비겁한 짝사랑.
그때는 그저 구도가 좋아서, 조명이 예뻐서라고 변명했겠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안다. 저 사진이 결국 내 마음의 위치였다는 것을.
이제는 아득한 옛일이다. 어디선가 여전히 환하게 빛나고 있을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빈다. 비록 닿지는 못했지만, 앵글 속에 담아두었던 그 시절의 빛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삶을 지탱하는 잔잔한 힘이 되어주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것으로 되었다.
P.S. 혹여나 이 글이 바람을 타고 당신에게 닿는다면. 그래서 사진 속 뒷모습이 자신임을 알아채고, 혹시라도 그 기억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언제든 이야기해 주길.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훼손하거나 당신을 곤란하게 할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그대의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이 글과 사진은 조용히 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