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 위 꼬마 펭귄들이 가르쳐준 것
나이가 들면 눈에 대한 낭만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눈에 대한 인식은 군 복무 시절을 기점으로 명확히 나뉜다. 입대 전의 눈이 '낭만'이었다면, 전역 후의 눈은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예쁜 쓰레기'일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정설처럼 돌곤 하니까.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그나마 남아있던 감성마저 흐려진다. 창밖의 함박눈을 보면 낭만은 온데간데없고 출근길과 퇴근길 걱정부터 앞선다. 도로가 얼지는 않을지, 평소보다 얼마나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할지 계산기를 두드리며 도로 상황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처음부터 눈을 짐짝 취급했던 건 아니다. 어쩌면 치열하게 살아가며 생긴 '실전 생활 근육'들이 마음속 낭만을 덮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눈을 사랑했다. 꼬맹이 시절에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장갑부터 찾아 끼고 골목으로 뛰쳐나갔다. 동네 친구들과 뒹굴며 눈싸움을 하고, 눈이 소복이 쌓인 날엔 고사리손을 모아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학창 시절 내내 눈은 설렘 그 자체였고, 20대가 되어선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거나 연인과 함께 바라보는 로맨스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낭만의 시대를 살아왔다.
언제부터 눈이 이렇게 골칫거리가 되어 버린 걸까. 사람마다 시기는 다르겠지만, 우리는 서서히 눈에 대한 설렘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눈이 펑펑 내린 그날, 회사 앞 난간에 꼬마 눈 펭귄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풍경을 마주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내 바로 밑의 후배가 어디선가 사 온 눈 집게로 열심히 만들어 세워둔 작품이었다.
처음엔 '참 어리고 순수하네'라며 웃어넘기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줄 서 있는 눈 펭귄들의 뒷모습은 훨씬 더 귀여웠고, 그 모습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낭만'이라는 녀석을 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다.
결국 나는 카메라를 들어 그 모습을 담고, 후배 녀석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함께 펭귄을 만들어 줄을 세웠다. 손이 시린 줄도 몰랐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낭만이란 건 아주 사라진 게 아니라, 그저 일상의 무게에 잠시 가려져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누군가 톡 하고 건드리기만 하면 금세 터져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아직 내 안에 그런 마음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조금 감사해졌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께도 전하고 싶다. 비단 눈뿐만이 아닐 것이다. 마음속 어딘가에도 핀 하나만 톡 뽑아내면 와르르 쏟아져 나올 낭만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언제라도 늦은 때는 없다. 우리는 원래, 그리고 여전히 낭만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