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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젠 May 22. 2023

취업 시장에서 인기 전공은 없다

대학원생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

    남녀노소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반대로 회사도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자본주의 시대에서 노동자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 관점에서 규정해 놓은 쓸모 있는 사람의 자격을 갖춘 사람은 너무 적고 중소기업 관점에서 규정해 놓은 쓸모 있는 사람의 자격을 갖춘 사람은 너무 많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근로자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연봉과 워라밸을 갖춘 회사를 추구하고, 기업은 조금이라도 더 능력 있는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유형의 사람을 추구한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것으로 과거 대한민국의 산업화 시기부터 대 AI 시기인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어져왔다기보다는 점점 심해졌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이는 모든 선진국이 겪는 현상이지만 특히나 짧은 시간 안에 고도의 성장을 이룬 동아시아(일본, 한국, 중국)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 현재 자녀를 키우는 70년대~80년대생들이 자녀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현상이나, 90년대생들이 SKY로 대변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또는 삼성, 현대 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에 다니다가도 로스쿨/의학전문대학원/약학전문대학원으로 대거 이동한 현상이나, 00년대생들이 명문대를 합격하고도 의대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하는 현상은 웃프지만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앞서 말했듯이 어느 세대에서든 좋은 학교와 좋은 직업에 대한 열망은 컸겠으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생들이 사회로 진출하는 시기는 과거보다 더 특별했다. 왜냐하면 과거 세대와 비슷하게 여전히 같은 세대 내의 인구는 많았음에도 시장에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는 직업은 '사'자로 끝나는 전문직(약사, 의사, 변호사, 검사 등)만 남았기 때문이다. 즉, 이들 세대는 약 60~80만 대군이 수능을 쳤고 SKY 입학생은 그중 1만 명으로 상위 약 1.3~1.7%에 해당했지만, 부모님 세대의 IMF, 학생 때의 세계경제위기, 은퇴 후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은 부모님의 노후 등을 경험하며 평생 쓸모 있는 노동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와 인공지능도 딥러닝을 한 뒤 그걸 기반으로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데, 하물며 인간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얼마나 많은 학습을 하고 본인의 미래를 예측하겠는가? 

    결국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학부 또는 전문대학원을 진학하지 않은(또는 못한) 90년대생들에게 평생 쓸모 있는 노동자가 되기 위한 전문성을 갖기 위해서는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만 남아있다. 박사도 '사'자로 끝나는 직업은 아니지만 '사'자로 끝나는 전문 자격증이고 의사와 변호사보다는 못하지만 여전히 시장과 사회에서 충분한 가치를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한편, 석사는 박사만큼의 전문성을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박사가 도전해 볼 만한 것인지 경험해 볼 수 있고 회사를 다니다가 미래에 박사를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전국 소재 대학원에 입학하는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모두 우상향해왔으며, 박사과정 입학자 수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대학원 입학을 희망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석사/박사 학위 취득 시 본인의 취업문은 더 좁아진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학부생일 때의 취업문은 이과냐 문과냐 정도로 나뉜다면, 대학원생의 취업문은 적어도 본인의 전공(넓게 보면 학과 이름, 좁게 보면 본인 연구 주제)에 따라 지원을 해야 한다. 석사는 그나마 경력채용보다는 신입채용(공채)을 통해 경력을 인정받는 신입으로 입사하기 때문에 전공에 덜 제약을 받지만, 박사는 경력채용으로 입사를 하기 때문에 신입채용과 달리 본인의 전공, 직무적합도 등에 대해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되고 이것이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요새는 공채가 많이 없어지면서 석사 학위자도 본인 전공과 관련된 장점을 살려야 취업하기 쉬운 편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대부분의 학문 분야에서 학문으로서 가치 있는 연구와 산업/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연구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수행한 연구 회사 입사에 쓸모 있는 경우는 대부분 없다. 또한 본인이 입학할 때 인기 있는 분야, 즉 회사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가 졸업할 때도 여전히 그러할지는 미지수다. 세상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이다.


모교의 한 공대 교수님 왈 90년대에 내로라하는 천재들은 다 진동/소음을 전공했다고 한다.(물론 이 교수님이 진동/소음 전공자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원생도 별로 안 들어오거니와, 연구과제도 별로 없으며, 대학에서 전공한 교수를 뽑으려 해도 전공자가 없단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대부분 의대 또는 AI에 가 있을 거라 생각이 들지만, 곧 세상은 또 변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취업시장'에서 인기 있는 '전공' 또는 '학문분야'는 없다는 것이다. 단, 여기서 취업시장이란 정부출연연구소나 학교(대학교수가 되고자 하는 자)가 아닌 대기업을 말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조언에 대해 현재는 AI 전공하거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면 취업하기 쉽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학계는 매우 제한된 영역과 통제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신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지 대량 생산, 상용화 등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간단히 예를 들어 웹툰/웹소설의 무단 배포가 큰 문제여서 그림/글 내에 일반인은 식별할 수 없는 워터마크를 새겨 넣는 것이 이슈라고 해보자. 학계에서는 워터마크를 만드는 방법, 새겨 넣는 방법, 워터마크의 모양 등을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구현해 내는 데 중점을 두지만, 네이버나 카카오는 버그가 없고, 조작이 어려우며, 모든 웹툰/웹소설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큰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AI 분야가 학계와 산업계에서 관심 있는 영역이 어느 정도 겹치고, AI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학 분야에서는 학문적으로 가치 있는 연구 주제와 산업적으로 가치 있는 연구 주제가 상이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취업시장에 나가고자 하는 이공계 대학원생은 학위 취득을 위해 열심히 연구할 뿐만 아니라 다음의 덕목을 길러야 한다:

1) 공학적 지식

2) 공학적 사고방식

3) 어느 분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기초학문

4) 다양한 대외활동(학술대회, 교육, 강습회 등)을 통한 인맥 형성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공학적 지식을 쌓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보다는 연구 수행에 매몰되어 있다. 하지만, 본인이 어떤 직무 또는 어떤 회사에 지원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코스 웍(course work,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기간) 동안 다양한 수업을 통해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본인 연구 주제와 관련된 지엽적인 내용만 파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다양한 지식을 쌓을 여유가 없다.

    박사 학위자가 회사에 입사할 때는 박사 학위를 경력으로 인정받고 서울대/카이스트/포항공대 출신의 경우 대부분 책임연구원(과장급)으로 제안받지만, 회사에 신입채용으로 입사하여 먼저 2~3년 정도 있던 사람들보다 '일'적인 지식과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모르는 영역의 새로운 문제가 주어지더라도 현상을 규정하고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공학 분야는 전공에 따라 기초학문이 다르지만, 수치해석이나 프로그래밍 등과 같은 학문은 많은 공학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활용 가능하기 때문에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 프로그래밍 수업은 C언어나 자바 등이 아닌 범용성이 좋은 파이썬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이 좋다. 요즘처럼 어느 분야든 AI를 활용해야 하는 시기에는 더더욱 파이썬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회사에서도 자체 교육으로 사원들한테 파이썬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인데, 대학원에서 본인은 매트랩(MATLAB)만 써봤다고 파이썬은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하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맥 형성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박사 학위자를 경력채용으로 뽑고 과장급으로 대우해 준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큰 투자를 하는 것이다. 즉, 기업은 지원자가 명문대 나왔다고 그냥 뽑아주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적합한' 인재인지 검증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기업에서 30분~1시간 정도 진행되는 면접만으로 그 지원자의 실력과 인성, 사회성 등을 모두 골고루 평가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기업 내부 사람에게 추천을 받아 지원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본인이 오마카세를 가려고 하는 소비자라고 생각했을 때 메뉴판 글과 사진만 볼 수 있는 식당과 지인에게 추천을 받은 식당 중에 어디를 선택하겠는가? 한편, 학생 입장에서도 기업 내의 어떤 부서에서 어떤 직무로 사람을 뽑고 싶어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맥을 통해 미리 알면, 그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본인 연구실이 전통 있고 큰 규모라면 홈커밍 행사나 연구실에 방문하는 선배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연락처를 받아 놓자. 만약 그렇지 않은 연구실에 다니고 있다면 학술대회에 성실하게 참여하여 산업계에서 요즘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학회나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교육에 참가하여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이공계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험이나 조언이 이공계 박사 학위자에 맞춰져 있고, 석사 학위자의 취업이나 인문계 대학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적다. 그럼에도 본 글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학계와 산업계에서 중점을 두는 바가 다르다는 것과 대학원생을 이를 인지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취업시장에서 인기 있어 보이는 전공을 선택하지 못한 경우 또는 학위과정 중 세상의 트렌드가 바뀐 경우에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 취업시장에서 더 중요한 덕목을 기르는 데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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