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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젠 Jul 03. 2023

그냥 교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 Part 1 -

박사 졸업 후 대기업으로 취업한 대학원생

대학생 때 나는 연극 동아리에 미쳐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대화 중인 상대의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잘 못했다. 그래서 일종의 무대공포증을 이겨내 보고자 대학에 입학한 뒤에 공연을 하는 동아리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공부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 재능이 없어서 춤을 추는 동아리나 노래를 부르는 동아리는 가입할 자신이 쉽게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3월을 보내고 있던 중에 불현듯 연극동아리 홍보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학창 시절 내내 공부만 했기 때문에(재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그런 측면에서 연극동아리는 내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나의 극을 준비하는 동안은 그 '삶'을 살아가지만, 무대가 끝나고 다른 극을 준비할 때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활동했던 연극동아리는 1년에 3번의 공연을 올렸는데, 3월 정기공연, 5월 신입생공연, 10월 정기공연으로 생각보다 일정이 많이 빡빡했다. 3학년 때까지 정기공연에서는 주로 배우로 참여를 했고, 신입생공연에서는 연출을 맡아 후배들을 지도했다. 연습 후 뒤풀이가 너무 좋아서, 무대를 올리고 공연을 끝냈을 때 박수받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같이 극을 준비하는 사람들과의 연대감이 너무 좋아서 나는 4년 동안 연극동아리에 미쳐 있었던 것 같다.


제목에 '그냥 교수가 되고 싶었습니다'라고 적어 놓고, 장황하게 연극동아리 얘기를 서술한 이유는 내가 한때 배우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즈음 과 동기 남학생들은 대부분 군대를 갔고, 여름방학이 되자 남아 있는 남자 동기가 거의 없었다. 당연히 나도 군대를 가기 싫은 마음이 컸지만, 군대라는 집단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당장하고 있는 연극동아리 생활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놓기 싫어서 가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진지하게 '배우'의 길을 걸어볼까 생각을 해봤다. 6개월 동안 학원도 알아보고 유튜브로 '송강호', '황정민', '이성민' 등 대배우들의 인터뷰도 찾아봤다. 그렇게 '연극인'에 대한 공부를 통해 얻어낸 결론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성공하기까지 너무 가난했다' 등의 내용이었다. 물론 젊은 배우들 중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가 대배우들의 인터뷰를 찾아본 이유는 젊은 배우들만큼 잘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그 길은 포기했기 때문이다.


'연극'을 업으로 삼는 삶에 대한 공부를 끝낸 뒤 나는 많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과연 배고픈 연극인이 되더라도 행복할까?
나는 왜 연극을 하고 싶은 거지?
나는 연극을 할 때 진짜 행복한 걸까?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 마침 친하게 알고 지내던 과 선배로부터 대학원 인턴 알바를 제안받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자 선배는 "그냥 앉아만 있으면 돼. 앉아서 유튜브 보고 웹툰 보다가 우리가 뭐 잡다한 일 부탁하면 그것만 해주면 돼"라고 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돈을 준다는 제안에 놀랐지만, 내가 더 놀란 점은 연구실에서 제안한 월급이 내가 하고 있던 과외 단가보다 더 높았다는 것이었다. 연극동아리냐 군대냐만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다른 선택지가 갑자기 하나 생기는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큰 보람을 느껴 사범대를 진학하고자 했던 나에게 담임 선생님은 항상 "내가 교사지만 교사는 미래가 없어. 교사가 될 노력으로 교수가 되는 게 좋단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셨다. 불현듯 그 말이 떠오르면서 나는 선배의 연구실 인턴 알바 제안을 받아들였고, 연극동아리와 연구실 생활을 병행하며 내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리려고 노력했다.


3학년이 끝나갈 때쯤 나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최소한의 '돈'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큰 부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먹고,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보고,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을 업으로 삼는 것은 너무 불확실성이 큰 행위였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진로를 바꿔 '교수'가 되고자 마음을 먹었다. 군대는 '전문연구요원' 제도로 해결도 할 수 있으니 더더욱 개꿀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막연하게 그냥 교수가 되고 싶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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