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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젠 Aug 25. 2023

그냥 교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 Part 3 -

박사 졸업 후 대기업으로 취업한 대학원생

교수가 되는 길은 99.999%의 운과 0.001%의 능력이 요구된다


'그냥 교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 Part 2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교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거리를 꼽으라면, 바로 어떤 전공을 하느냐이다. 물론 어떤 학문에 족적을 남기고 싶다거나, 어떤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교수가 되고 싶은 열망이 강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당시 유행하는 전공을 선택한다. 학과의 유명한 교수들도 그 분야를 하고 있고, 그 분야를 전공해야 취업도 쉽다고 하고, 본인이 살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교수 TO(table of oragnization, 정원을 뜻한다)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모든 학문의 인기는 사이클이 있기 마련이다. 90년대 초중반에는 기계분야의 진동학에 기라성 같은 천재들이 모두 몰렸으나 현재는 진동학 분야 교수를 뽑으려고 해도 사람이 없다. 00년대 초중반에는 조선업이 흥했고, 00년대 후반부터 10년대 초반에는 자동차업이 흥했고, 1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는 반도체업이 흥했다. 그리고 몇 년 전 구글 DeepMind에서 개발한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뒤 대 AI 시대가 열렸다. AI 분야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끝없는 신기술 소개로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Tesla의 압도적인 자율주행을 시작으로, Facebook(현 Meta)의 메타버스, OpenAI의 ChatGPT 등 AI라는 하나의 분야에서 파생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기술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AI에 뛰어드니, 시장에서는 개발자, AI 전문가, 데이터사이언티스트 등의 인력에 대한 수요가 치솟고 있다. 자연스럽게 몇 년 전부터 컴퓨터 공학과는 의대 다음으로 경쟁률이 높은 과가 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가 미달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교수를 하고 싶다면 지금 유망한 학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유망해질 학문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예언가나 미래학자도 아니고 미래에 유망해질 학문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걸 알면 교수 같은 걸 하지 않고, 투자를 해서 백만장자가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교수가 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교수를 바라면서 공부를 하고 있던 게 아니라, 눈 떠보니 교수가 되어 있었다고. 우스갯소리로 어떤 교수님은 취업이 안 돼서 계속 지도교수님의 술친구로 대학원에 남아 있었는데, 지도교수님의 은퇴 후 그 연구실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교수 임용 시 당연히 훌륭한 논문과 연구 성과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혹시나 현직 교수이신 분이 이 글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학위를 마치고 교수를 지원할 즈음에(30대 초중반 ~ 40대 초반)

1) 그 학문 분야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학교에 있어야 하고, 

2) 해당 학과에 본인 분야를 전공으로 하는 교수가 없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가 되는 길은 운9.999기0.001로 봐도 무방하다. 


내가 학위를 마칠 즈음 교수 TO가 생기는 분야는 뭘까?


    그냥 교수가 되고 싶었던 나는 전공 교수님들의 은퇴 시점을 따져봤다. 이리 재고 저리 재봐도 우리 학교에는 나의 30대 초중반 ~ 40대 초반쯤 기회가 올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학교에 교수 자리가 없다면 그다음 단계는 내 전공 학과가 있는 국내 소재 대학들의 각 교수별 은퇴 시점을 짐작해 보는 것이었다. 나의 전공은 농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국립대(주로 지방거점국립대학교)에만 존재했기에 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결론은 농업기계 쪽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재직 중인 교수님들은 대부분 유학 1.5세대로,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학번이었는데 주로 농기계를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종자나 농법 자체에 대한 연구보다 하드웨어적인 기계 발전이 더 중요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또한 현재 지거국(지방거점국립대학) 특성상 지역에서 요구되는 연구 프로젝트들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농기계와 관련된 연구들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농기계 전공 교수를 뽑을 것이라는 정보도 알 수 있었다.

    우리 대학에 농기계 관련 연구를 하는 교수님은 세 분이 계셨다.(마치 포켓몬스터 게임에서 처음에 세 포켓몬 중 누구를 정하냐에 따라 이후 스토리 진행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같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게임의 경우 마음에 안 들면 리셋할 수 있지만, 내 인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도교수를 고를 때 학생들은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한다. 교수의 인성, 명성, 강의 전달력, 연구실 분위기, 인건비, 연구실 선배들의 평균 박사 졸업 소요 기간 등등.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다르지만,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 봐도 가장 좋은 교수님은 한 분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교수님께서 나의 학부 졸업 한 학기 전에 정년 은퇴를 하실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 봐도 부족해 보였던 두 교수님의 연구실로 갈지, 어떠한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새로 오실 교수님의 연구실로 갈지 결정해야 했다.  




다음 편에 이어서 계속...


P.S. 6월부터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와 직무에 적응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 글을 꾸준히 쓰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많은 분들께서 이야기를 좋게 봐주셔서, 조금씩 짬을 내어 글을 써보려 합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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