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탄생 비화: 전쟁이 낳은 미식 혁명

by M plus Paris

오늘도 우리 집 찬장이나 캠핑 가방 한구석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참치 캔'은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친숙한 식재료입니다. 보관하기 쉽고 언제 어디서 꺼내 먹어도 안전한 이 작은 금속 캔 뒤에는 사실 200여 년 전 유럽 대륙을 뒤흔들었던 전쟁 이야기와 한 요리사의 도전, 그리고 인류의 식탁을 바꾼 거대한 드라마가 숨어 있습니다.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는 도구를 넘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인류의 위대한 노력은 18세기 말 포연이 자욱했던 유럽의 전장에서 시작됩니다.


나폴레옹의 절박한 고민, 군대는 잘 먹어야 전진한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유럽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라는 거대한 시대적 물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승승장구하며 전 유럽을 누볐지만 그들에게도 무기보다 무서운 적이 있었으니 바로 배고픔과 상한 음식이었습니다.


당시의 기술로는 수만 명의 대군이 이동하며 신선한 식재료를 섭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병사들은 소금에 절여 돌처럼 딱딱해진 고기나 곰팡이 핀 빵을 먹어야 했고 비타민 부족으로 괴혈병(Scorbut)에 걸려 쓰러지기 일쑤였습니다.


전략의 천재 나폴레옹은 "군대는 위장(胃臟)으로 행진한다(Un soldat marche à son estomac)"는 유명한 통찰을 남겼을 만큼 먹거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군대 음식을 신선하게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 12,000프랑(Franc)의 상금을 주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당시 숙련된 기술자의 하루 일당이 약 2~3프랑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12,000프랑은 쉬지 않고 15년 이상을 꼬박 모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습니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수억 원대에 달하는 그야말로 '인생 역전' 수준의 현상금이었습니다. 그만큼 프랑스 정부가 이 문제를 국가적인 전략 과제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960px-Napoleon_at_the_Battle_of_Rivoli.jpg?type=w773 리볼리 전투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필리포토 作, 1844년



니콜라 아페르,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 통조림의 아버지



이 거대한 도전에 응답한 사람은 당대 최고의 과학자가 아닌 파리의 평범한 요리사이자 제과인이었던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였습니다. 그는 무려 14년 동안이나 자신만의 실험실에서 음식이 썩는 원인을 찾아 헤매며 집요한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이야기는 아페르의 기발한 발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샴페인 병에 조리된 음식을 넣고 코르크와 밀랍으로 입구를 꽉 막은 뒤 끓는 물에 넣어 오랫동안 가열하는 방식을 고안해냈습니다.


가열(Chauffage): 뜨거운 열로 부패의 원인을 차단.

밀봉(Herméticité):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완벽히 차단하여 신선함을 가둡.


결국 그는 고기, 채소, 수프를 수개월 동안 신선하게 보관하는 데 성공했고 1810년에 이 비법을 담은 책을 펴내며 당당히 상금을 거머쥐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가 세균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을 때라는 점입니다. 아페르는 과학적 이론보다 경험을 통해 미생물학의 시대를 반세기나 앞서간 셈입니다.


a4_123456789101112131415161718192021.jpg?type=w773 니콜라 아페르(1749-1841) - 통조림 보존법 발명가, 1999년 탄생 250주년 기념, 프랑스 우표



유리병에서 금속 캔으로, 영국인의 실용주의가 더해지다


아페르의 유리 병조림은 대단한 발명이었지만 전쟁터에서 쓰기에는 너무 무겁고 깨지기 쉽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며 오늘날의 형태를 완성한 건 영국의 상인 피터 듀란드(Peter Durand)였습니다.


1810년 그는 유리 대신 주석을 입힌 철로 만든 '캐니스터(Canister)' 방식을 고안해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부르는 '캔(Can)'의 시작입니다. 가볍고 튼튼한 금속 통조림은 곧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고 영국 해군과 육군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프랑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영국의 실용적인 기술과 만나 완벽한 먹거리 혁명을 이룬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역사, 통조림은 있는데 따개가 없었다


여기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인류는 음식을 튼튼한 쇠 통에 가두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이걸 편하게 꺼내는 방법은 한참 뒤에야 생각했습니다.


초기 통조림 캔은 지금보다 훨씬 두껍고 단단했습니다. 오죽하면 캔 겉면에 "망치와 정(Chisel)을 써서 두드려 여시오"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을 정도였습니다. 군인들은 배고플 때마다 총검이나 칼로 캔을 부수다시피 해서 먹어야 했고 때로는 총을 쏴서 열기도 했습니다. 전용 캔 따개(Ouvre-boîte)는 통조림이 발명된 지 무려 45년이나 지난 1850년대에야 세상에 나왔습니다.



초기 양철 통조림 제작 방식 - 돈킨의 오리지널 통조림, 사이언스 뮤지엄




보관의 미학이 담긴 프랑스인의 보코 라이프


전쟁터의 절박함에서 태어난 이 보존 기술은 오늘날 프랑스 가정에서 평범한 라이프스타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집에 초대받아 가보면 주방 선반에 유리병들이 예쁘게 진열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를 프랑스어로 '보코 앙 베르(Bocaux en verre)'라고 부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제철의 신선함을 겨우내 즐기기 위해 지금도 전통적인 보관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살균(Stérilisation)과 정성을 통해 계절의 맛을 병안에 가둡니다.



채소와 과일: 당근이나 양파를 피클로 만들거나 제철 과일로 잼들을 만듭니다.

03-bocal-charniere-verre.jpg?type=w773 채소 피클을 담은 유리 밀폐 보존병들



고기 요리: 돼지고기를 기름에 끓여 보관하는 콘피(Confit, 육류를 자체 지방이나 기름에 담가 저온에서 장시간 조리한 후 그대로 식혀 보관하는 방식)나 풍미 가득한 라구 소스를 병에 담아두기도 합니다.

delice-agneau-recette-lepar.jpeg?type=w773 르파르 병조림 양고기 요리 (Délice d'Agneau)



지속 가능한 삶: 곡물이나 견과류를 담아두는 것은 물론 일상의 작은 식재료 하나도 유리병에 보관하며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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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리병 문화는 단순히 음식을 저장하는 행위를 넘어 낭비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인들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예쁘고 건강하며 환경까지 생각하는 이 우아한 전통이 사실은 나폴레옹 시대의 절박한 전장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정말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식탁에 가장 평화로운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오늘 저녁 찬장에 있는 통조림이나 유리병을 보며 200년 전 그 뜨거웠던 열정과 지혜를 한 번쯤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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