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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하반기 결산

7월-12월의 결산

by HeeHee

어쩌다 보니 매달 기록하려던 계획은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작년 상반기에 기록이 멈춘 관계로... 연휴를 맞아 작년 하반기를 정리해 본다. 작년 7월-12월 간 총 64편의 영화를 보았다.


이런저런 각자 다른 이유로 인상에 남았던 영화 10여 개 정도를 추려보려고 했는데... 리스트를 보니 10개도 추리지 못할 것 같다. 그나마 11월-12월에 좀 기억에 남는 영화들을 좀 본 것 같고... 그전에는 너무 별로였던 영화들을 많이 봤달까.




The Room Next Door (2024)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처: 네이버 영화

내 인생 최초로 독립영화관 "씨네큐브"에서 관람한 영화. 잠깐 씨네큐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관은 영화 시작 전에 광고를 전혀 안 하기 때문에 기재된 영화 시간에 칼 같이 맞춰가야 한다. 나름 씨네필들만 찾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의 단독 예술 영화관인데, 영화 초중반부터 내 옆 젊은 청년이 코를 엄청 골면서 딥슬립을 하길래 이 영화가 정말 그렇게 지루한가 싶어 내심 좀 안타까웠다... (나는 홀린 듯이 보고 있었는데 말이지... ㅠ_ㅠ)


현란한 색채와 은근한 유머코드 때문에 OTT에서 열심히 작품을 찾아본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이다. 비록 이번에는 병으로 더는 고통받기 싫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한 여자와 그 여자의 부탁을 들어주는 친구의 이야기여서 나름 진지하지만 (그리고 스페인 배우들이 열연하는 영화가 아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기존 알모도바르 감독의 스페인 영화들보다는 확실히 코믹한 면이 덜하다), 개인적으로 예술뽕(?)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탁월한 영화였다.


영상미, 대사, 음악, 정말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는데, 그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틸다 스윈튼과 줄리앤 무어가 나눈 예술가들에 대한 대화였다. 이 대화가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 유명한 예술가들의 삶의 이면을 알고 나면 '역시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게 살 수밖에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슬퍼지기도 하고...


어쨌든, 다 보고는 '이 영화 자체가 예술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간만에 문화생활에 대한 나의 니즈를 아주 확실하게 채울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Anora (2024) - 션 베이커

출처: 네이버 영화

작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해서 기대했던 작품이다. 사실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중 평이 상당히 좋았던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개인적으로 좀 별로였는데(의외로 아류작처럼 보이는 "레드 로켓"이 좀 더 내 취향이었다), 이번 영화는 그래도 좀 더 내 취향이겠지 싶어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보았다.


내용은 대략 한 뉴욕의 스트리퍼가 (영 앤 리치 앤 핸섬) 러시아 재벌 2세를 만나 신분상승의 꿈을 안고 결혼까지 하지만 남자 집안의 반대로 결국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내용이다. 션 베이커 감독의 특징이, 그 전작들에서 볼 수 있듯 사회 비주류의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것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의도가 뭔지 아직도 파악이 잘 안 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너무 인성이 되바라진(?) 꼬마들이 주인공인데, 사실 이 꼬마들이 이렇게까지 타락한 그 서사도 크게 와닿지도 않고(뭐 그냥, 성노동자 같은 비주류 부모 밑에 자란 아이들이라서? 하지만 그러기엔 영화에서는 그 부모들도 자기 자식들은 나름 끔찍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갑자기 뭔가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암시하는 엔딩으로 끝나버리는 느낌에 '이걸 대체 왜 이렇게까지 극찬을 하나' 의문이었던 영화였다. 이런 특정 비주류 계층을 다룸으로서 대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지 뭔지, 잘 와닿지가 않는 거다.


솔직히 이번 영화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아노라에게 공감을 할 수가 없었는데... 누가 봐도 뻔히 남편 가족과 그 측근들이 이 결혼을 무효화하려고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그러게 눈치가 더럽게 없는 건지, 정말 멍청한 건지,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인 거냐며 "진심을 다해" 그 가족과 측근에 맞서 끝까지 우리 결혼은 유효하다고 발악을 하는 그 모습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았고 물론 나와는 애초에 성격이나 모든 게 다른 인물일 테니 그녀의 그러한 행동을 이해를 온전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상황 분위기 파악을 할 수 있잖아... 솔직히 그 장면들은 너무 "과하게 늘어진다"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보는 내가 너무 지쳤다는; 그런 장면들은 좀 짧게 줄일 필요가 있지 않았는지?), 그래도 아노라는 음악과 영상미가 있었으니 "볼 만했다"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남자 주인공에게서 리브 타일러 젊은 시절 얼굴이 보였는데... 나만 그런가?)


그래서, 이 영화가 칸에서 황금종려작을 받을 정도인가? 묻는다면 의문이다. 특히 "슬픔의 삼각형"이나 "추락의 해부"같은 이전 수상작들을 본다면.


Love Lies Bleeding (2024) - 로즈 글래스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가 갑자기 온갖 OTT에 풀려서 보게 되었는데, 내가 애정하는 A24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조합이니 안 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건 내 개인적 취향인 것 같은데, ("챌린저스"와 같이) 아름다운 육체의 그 생동감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해서 잡아주는 영상을 너무 좋아한다. 이 영화가 그런 영상을 기가 막히게 담아낸다. 육감적인 몸으로 땀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는 케이티 오브라이언에게 반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그러한 연출이 의도한 것이었겠지?) 이 두 여자의 맹목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역시 외모에 기반한 게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사랑인 걸까?) 어쨌든 이 영화도 영상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 보는 맛에 나름 괜찮았던 영화다.


그나저나... 아래 이야기 할 "서브스턴스"도 그렇지만, 왜 잘 나가다가 갑자기 뒤에서 말도 안 되는 판타지적 요소를 넣어서 읭...? 스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감독들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영화니까 말도 안 되는 개인적인 상상력을 다 펼쳐보겠다, 이런 건지. (이런 영화들 보면 자꾸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떠오르고...)


The Substance (2024) - 코랄리 파르자

출처: 네이버 영화

메시지는 나름 명확하다. 외모에 집착하지 말자. 이런 바디호러, 고어물 영화치고 메시지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일단 점수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젊음과 미를 파는 미디어와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에 집착하다가 몰락하게 되는 한 때 잘 나갔던 늙어가는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상이 좀 충격적이면서 신선하기도 하고 자극적이다. 데미무어의 연기도 정말 인상 깊다. 이번에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받을 만했다. 그에 대적하여 마가렛 퀄리는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역할을 정말 기가 막히게 수행했다 (여자인 나도 영화 보는 내내 그녀의 미모와 싱그러움에 넋 나간 듯...)


하지만 영화 정말 괜찮았는데... 마지막에 'ㅎ ㅏ... 이거 또 뭐야...??'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판타지적 결말로 끝이 났다. "파묘"가 정확하게 절 반 지점에서 영화가 댕강 끊어진 느낌이라면 이거는 그래도 뭐 한 1/4 지점 정도이긴 하다만. 결말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Afire (2023) - 크리스티안 페촐트

출처: 네이버 영화

평이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해서 보게 된 영화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일단 봤는데, 뭐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불"이 은유적으로 사용되는 영화다. 사실 내가 뭐 평론 전문가도 아니고, 그 불의 은유가 언제 어떻게,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일단 이걸 잘 모르겠다는 것에서 적어도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자기 고집대로 혼자 잘난 척 다 하면서 작업하던 작가 주인공이 결국 타인을 통해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한 단계 성장한다는 모습에서 인상 깊었다. 주인공에게서 나의 모습이 좀 보여 아마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재미는 좀 없었고... 좀 지루하지만 그냥저냥 잔잔하게 보기 괜찮은 영화였다. (내 식견이 짧아 뭔가 심오한 저 은유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


The Beast (2023) - 베르트랑 보렐로

출처: 네이버 영화

여러 시제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SF요소가 가미된 영화다. 여러 번 끊어 보기도 했고 영화를 다 본 후에도 무슨 메시지를 말하고 싶은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내용 측면에서 별로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단지 내 최애 레아 세이두를 보는 맛으로 본 영화다.


아... 레아 세이두는 정말 너무 아름답다. 그냥 이 영화는 그녀를 위한, 그녀에 의한 영화이다. (그런데 사실 레아 세이두가 주인공인 영화 중 안 그런 게 있긴 할까?) 전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이 영화에서 조지 맥케이의 마스크도 꽤나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Night on Earth (1991) - 짐 자무시

출처: 네이버 블로그

연말에 본 짐 자무시의 오래전 영화. 사실 짐 자무시의 영화를 몇 편 보기는 했으나 썩 재밌게 본 영화는 없었다. 그래도 워낙 유명한 감독이고 하니 그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다면 보는 것이지.


이 영화는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와 손님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단편 이야기가 여러 개 엮인 옴니버스 영화인데, 꽤나 재밌었다. 카페에서의 여러 잡담들은 엮은 옴니버스 영화 "커피와 담배“ 의 택시 버전인 격? "커피와 담배”는 개인적으로 좀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는데(내 말을 들은 친구가 그 영화는 결국 감성맛으로 보는 것이라는데...), 이 영화는 대놓고 개그 포인트들이 좀 있다. 최근에 본 좀비 영화 "데드 돈 다이"도 힘 뺀 B급 감성으로 즐겼다. 그 영화 평은 썩 좋은 것 같지 않았지만. 사실 세상 모든 게 그렇듯 다 결국 내 취향에 맞춰 즐겨야 하나보다. (그래도 누군가는 나와 취향이 비슷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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