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경계에 선 두 예술가, 터렐과 린치

빛이 만든 명상, 빛이 만든 심연

by HeeHee

최근에 페이스 갤러리 열리고 있는, 소위 “빛의 건축가”인 제임스 터렐의 전시가 화제라 궁금했는데, 매진인 와중에 운 좋게 당일 취소표를 주워 다녀올 수 있었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가 컸다.


전시는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 1-2층은 일부 LED 작업, 프린트물 등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만 규모가 크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 다소 단조로워 빠르게 훑어본 정도였다. 하지만 3층에서 펼쳐지는 20분가량의 LED 빛 전시는 확실히 하이라이트였다.


작은 암실 같은 공간에 여러 관객이 조용히 앉아, 서서히 변해가는 빛을 계속 바라보는 방식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걸 보며 ‘어떤 생각을 해야 하지?‘ 싶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차분함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조용히 변주되는 이 불빛을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가 마치 ”명상“ 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은 파스텔톤에서 고채도의 색으로 바뀌곤 했다. 보고 있자니, 강렬한 붉은빛과 푸른빛이 나타날 때는 문득 데이비드 린치가 떠올랐다. 어두운 공간 속에 감도는 푸른빛에서 린치의 영화 톤이 연상되었달까. 그러다가 궁금해졌다. ‘혹시 린치가 터렐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거나 했던 건 아닐까?’ 그런데 대충 찾아보니 두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빛을 매개로 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는 점이 흥미로웠다.


터렐의 빛은 관객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무중력이나 초월적 체험에 가깝게 이끈다. 반면 린치의 (예를 들어) 푸른빛은 불안, 욕망, 초현실의 상징처럼 쓰인다. 게다. 터렐은 아예 서사를 지우고 빛 그 자체의 순수한 감각에 몰입하게 하지만, 린치는 파편화된 서사와 기괴한 인물, (구분되지 않는 현실과 꿈과 같이) 불협화음 같은 장치에 빛을 더해 감각적 혼란을 일으킨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지만, “빛을 통한감각의 전환“이라는 지점에서 맞닿는다. 터렐은 모든 것을 덜어내 색과 빛, 시간의 변화만 남겨 미니멀하고 명상을 선사한다. 반대로 린치는 채워 넣기와 과잉을 통해 관객을 무의식의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같은 빛을 다루지만, 터렐은 “빛 자체의 초월성”을, 린치는 “빛이 열어젖히는 무의식“을 탐구한다. 하나는 비워냄으로, 하나는 채워 넣음으로 관객에게 현실을 넘어선 감각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번 제임스 터렐 전시는, 같은 “빛”이라는 매개가 관객에게 얼마나 서로 다른, 때로는 극단적인 영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 자체로 꽤나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이었다.


James Turrell <The Wedge> (출처: 페이스 갤러리)
James Turrell <The Wedge> (출처: 페이스 갤러리)


David Lynch <Blue Velvet> (출처: 네이버 블로그)
David Lynch <Twin Peaks> (출처: 네이버 블로그)
David Lynch <Twin Peaks> (출처: 네이버 블로그)
David Lynch <Mulholland Drive> (출처: 네이버 블로그)

오설록에 걸려있던 터렐의 작품 1
오설록에 걸려있던 터렐의 작품 2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의식의 흐름대로) 파생된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