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파생된 생각들

그냥 요즘의 깨달음

by HeeHee

근래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들을 한번 글로 정리해봐야겠다 싶어 이렇게 남겨본다. 스스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 나날들이었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다 보니 좀 중구난방인 측면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뭐 그 다소 정신없는(?) 생각의 끝은 결국 하나의 깨달음으로 수렴하는듯.


1. 어쩌면 참 뜬금없는 포인트가 인상에 남았다 싶을 수도 있는데, 3월 영화 결산에서 잠깐 언급했던 <스카페이스>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알파치노는 미셸 파이퍼의 화려한 외모에 반해서 그녀에게 열렬히 구애했다가, 그녀가 몇 번이나 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의 불도저 같은 성격으로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다. 다만, 결혼 후 그들의 사이는 급격하게 틀어지는데, 그 이유의 하나로써 사용되는 장면이 알파치노가 미셸 파이퍼한테 "애도 못 낳으면서 치장밖에 할 줄 모르는 여자"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이다.


2. <스카페이스>가 1980년대 작품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다소 예상치 못한(?) 장면이어서 좀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 당시 남자들이야 요즘의 남자들보다 더 확실하게 경제적 역할을 담당했고, 여자들은 그런 남성들에게 기대어 집안일을 담당하는(혹은 트로피 와이프 역할을 하는), 다소 원초적인 성적 역할분담이 당연했던 시대였으니까. 물론 여기서 하나 틀어진 부분이 있다면, 미셸 파이퍼는 전형적 하우스 와이프가 아닌, "애를 낳지 않은(혹은 낳지 못한?)" 아내라는 점. 이 대목에서, 아, 결국 눈에 보이는 경제적인 대가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는 확실하게 "기브 앤 테이크"가 있어야 유지가 되는 것이었지,라는 점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는 거다.


3. 갑자기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부터 결국 "내"가 잘나야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예전보다는 좀 덜 한 것 같긴 하지만, 예전에는 그냥 '여자는 돈 많은 남자 잘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게 최고야,' 라고 흔히들 말했고(사실 아직도 종종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이랑 이런 소리를 하곤 하지만), 마치 능력 있는 남자한테 시집가면 만사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만연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일부의 경우는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여태 살아오면서 본 여러 콘텐츠와, 주변의 어느 정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불균형이 있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았을 때, '과연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관계에 있어서 한 사람이 경제적인 역할을 부담하면, 그 다른 상대는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무언가 다른 형태로 그에 걸맞은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


4. 그냥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보면, 물론 사람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예를 들어 비싼 밥을 얻어먹으면 (아무리 그 상대가 나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우월할지언정) 그 대가로 나도 그에 걸맞은 무언가로 보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알게 모르게 생긴다. 그 보답이 똑. 같. 이 경제적인 형태일 수가 없는 경우에는 "감정적"(대충 리액션 등 경제적 지출 외의 행동을 말한다)인 경우로 나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사실 꽤나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일이다. 왜냐면 내 "자율성이" 어느 정도 훼손되기 때문이다. 내가 썩 내키지 않거나 피곤해도,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줘야 한다. 반면 내가 상대방에게 돈을 더 썼을 때는 훨씬 감정적으로 편해지는, '아 이젠 내가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어릴 때는 단순히 내가 경제적으로 좀 더 이득을 보고 그 외의 것으로 보답을 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때야 아직 덜 살아서 관계 "유지"라는 측면에서 크게 생각을 안 하고 살았던 것 같고. 이제는 좀 더 살아보니 모든 관계에는 공짜가 없고, 내가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받았으면 나도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 그 관계가 유지가 된다는 걸 확실히 느끼는 요즘이라 이런 생각이 들었다.


5. 하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는지 그냥 내 몸과 정신이 편한 게 최고여서, 차라리 내가 돈을 쓰고 감정적으로 에너지 낭비를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갈수록 든다. 왜냐면 나는 무엇보다 내 "자유"가 중요한 사람이라서.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남에게서 무엇이든 넙죽넙죽 "맘 편하게" 잘 받아먹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않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애초에 양심이 좀 없거나 리액션을 기가 막히게 잘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내 성격상 "나"는 그 어느 쪽도 될 수 없다.) 그러니까, 결국 어찌 되었던 이런 감정적 소모를 줄이려면 최소한 상대방과 "동등한" 위치에는 있어야 할 텐데, 뭐 그걸 골치 아프게 수치로 정형화할 수도 없으니 그냥 단순하게 내가 엄청 노력해서 최대한 여러 방면에서 잘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게 경제적인 측면이던, 인성이던, 아니면 뭐 이런저런 재능이던, 상대방이 나를 계속 보게끔 하는, 뭐 하나 "잘난" 혹은 "썩 괜찮은" 구석이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나의 경우 저 중에서 그나마 내가 노력해서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부분은 "경제적" 측면인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상대방에게 돈을 얼마큼 쓰던 거기에 따른 스트레스가 또 없으려면 그 경제력도 어느 일정 수준 이상 갖추어야 한다는 게 또 다른 문제.


6. 예전에는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갖아야 했던 큰 이유가 사실 부모 혹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그런 목표의식의 시발점은 내가 아닌 "타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부쩍 느끼는 것이, "타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행동은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도 덜할 수 있고(결국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보기에 좋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제법 있을 수 있으니). 결국 내가 행하는 모든 행동의 초점은 "나"에게 있어야 하고,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갖는 동기는 '내가 잘나서 내가 남 눈치 안 보고 떳떳하게 살아야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결국 무언가를 하는데에 있어 지속 측면에서 더 효과적인 것 같다.


7. 이 와중에 어쩌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유튜브에서 현우진의 "공부하면서 도파민을 느끼는 방법"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그의 메시지의 요지는 '본인이 뭐 하나라도 더 공부해서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질수록 삶에 대한 해상도가 높아지는데, 제발 거기서 도파민을 느끼고 공부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현우진이 이 말을 하니 더 새겨 들어야 할 것 같은...) 그런데 이게 정말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남의 지식, 남의 능력에 기대는 것보다, 내 스스로, 온전히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훨씬 삶에서 얻어가는 부분이 많다는 걸 요즘 들어 더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더 떳떳하고 당당해질 수도 있고. 이게 결국 다 내 "자율성"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힘. 그러니까 결국 쉽게 말해,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다는 거다.


8.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오며 가며 조금씩 외우고 있는 일본어 몇 단어가 드라마에서 내 귀에 들릴 때 신기함과 뿌듯함을 느끼는데, 사실 별거 아닌 것 일수도 있지만 의외로 성취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미친맛집>을 보는데, 자유자재로 일본어를 하는 성시경을 보면서 '아 저렇게 막힘없이 일본어로 원하는 말을 다 할 수 있는데 스스로 얼마나 뿌듯할까'싶어 굉장히 부럽더라. 언젠가는 나도 일본 여행 가서 일본어로 간단한 음식 주문 정도 할 수 있게 될 날을 기대하며 꾸준히 공부해야지.


9. 뭐, 앞에 그간의 의식의 흐름을 다 기록하다 보니 좀 장황해졌는데, 그렇니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최대한 남의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도록 더 공부하고 내 능력을 키우자,' 라는 거다. 여기에는 남/여 구분도 필요 없고. 그냥 한 자유로운, 온전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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