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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인테리어 준비: 생활에서 확인하는 필요

엄마 아빠가 살던 구옥을 리모델링하다

by 문성 moon song

1. 생활하며 확인하는 필요

이사 첫날 잠들기 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날의 심란함이 되살아난다. 여기 쌓인 물건들을 하나하나 직접 분류하고 정리하지 않는 한 이 아수라장이 계속되겠구나. 길고도 부담스러웠던 인테리어과정을 끝내고 쉬지 못하고 다시 새롭게 부담스러운 과정을 시작해야 하는구나. 우선 침대와 매트리스, 베개와 이불부터 펼치고 이삿짐이 잔뜩 쌓인 방에 누웠지만 절로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예산과 시간문제로 업체와 인테리어는 최소한만 했기에 이사하고 생활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직접 시공하기로 하고 미뤄둔 상태였다.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을 확인하고 최소한으로 작업하려고 했는데 정리까지 같이 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 왜 화가 나는 건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른 채 무작정 집을 나섰다.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돌아왔을 때에는 체념한 상태였다. 어차피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해줄 수 없는 일이니 차근차근해나가는 수밖에. 해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끝이 나겠지. 누우며 스스로와 약속했다. 이제부터는 나의 일상을 우선하기로 하자. 나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우선으로 그것에 맞게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틈틈이 시공하자. 기한을 두지 않고, 느긋하게. 그렇게 두 번째 리모델링, 셀프인테리어가 시작되었다.


2. 침대에서 알게 된 가리개의 역할

가장 먼저 한 일은, 침대에 누워도 훤히 보이는 아수라장을 가리는 것이었다. 방 제일 안쪽에 둔 침대에서 방문까지 가득 쌓인 물건들이 어지러웠다. 내일 치우자 모른 척 눈을 감아도 물건들이 내 앞에 쌓여있는 게 꼭 인기척 느껴지듯 느껴졌다. 이전 집에 두 배에 가까운 방 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침대 곁에 쌓여있던 물건 더미에서 가리개를 찾아내 침대 맡에 걸었다. 이전 집에서 중문대신 사용했던 가리개는 마침 침대의 가로폭을 딱 맞게 가려주었다. 반투명한 천 가리개만으로도 한결 시야도 마음도 차분해진 상태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날 쏟아지는 햇살에 잠에서 깼다. 이전 집과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강렬하게 눈을 찔렀다. 이전 집의 침대 곁 창문은 북향이었는데 이번 창문은 남향에 건물과 건물 사이로 나있어 더욱 깊이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갈수록 햇살은 더욱 강해 질 테니 블라인드나 커튼이 필요하겠지만 아직은 햇살의 온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좀 더 생활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이를 닦고 세수를 하며 일과를 시작했다.



3. 옷더미가 알려준 행거와 서랍장의 역할

두 번째 정리이자 셀프인테리어는, 옷더미를 행거로 옮기는 일이었다. 생활에 필수적인 그리고 내가 가진 것 중에서는 단일 품목으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옷. 붙박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옷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행거를 주문해 둔 터였다. 옷장은 부피도 무게도 많이 나가는 데다 공간구획이 고정된 가구이기에 이층 주택으로 이사를 올 때에도 이후 이곳을 떠날 때를 생각해서라도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잠자리에 들고일어나서 세수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동선을 고민하다가 욕실 곁으로 길게 행거를 세우기로 했다. 충분히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사계절 옷을 모두 걸 수 있도록 기억자에 6칸으로 지지대를 고정시키고 하나씩 걸기 시작했다. 거의 꼬박 한나절을 쓰고 걸 수 있는 옷들은 모두 걸고 나서도 여전히 속옷과 양말, 니트,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곧바로 정리할 수납함을 아무거나 주문하지 않고 그대로 좀 더 생활하며 행거와 남아있는 물건들을 지켜보았다. 옷을 다 걸어두는 것은 확실히 옷을 고르거나 입고 벗어 걸어둘 때에도 훨씬 편리했지만 먼지가 쌓이고 시야를 어지럽혔다. 속옷과 양말, 니트, 잠옷, 모자나 스카프, 가방 등은 임시로 박스에 있는 그대로 두고 쓰다가 가벽도, 서랍장과 수납바구니도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반지나 귀걸이, 화장품 그리고 욕실용품들도 수납할 수 있는 화장대와 욕실수납장도.


4. 남아 있는 물건이 알려준 수납장의 역할 : 서재

세 번째 정리이자 인테리어는 책더미를 책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단일품목으로는 옷 다음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는 책. 서류. 자료와 문구류까지. 이전 집에서는 공간박스와 합판을 엇갈리게 쌓아 책장으로 만들어 한쪽 벽면을 천장까지 사용했는데 이번 집은 창이 많고 커서 벽면을 천장까지 활용할 수가 없었다. 방이 늘어났으니 다른 방을 서재로 만드는 건 어떨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엄마아빠의 유품을 나누어 넣어둔 방을 아직은 손댈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 방이 남향으로 창이 난 곳이라 겨울에는 따뜻하게 햇살이 들고 여름에는 다른 방보다도 시원한 곳이었기에 이곳을 주 생활공간으로 쓰는 게 맞았다.

그렇다면 공간에 맞게 재배치하는 수밖에. 공간박스를 창문을 따라 창문 아래로 길게 배치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공간박스와 합판을 엇갈리게 쌓아가며 최대한 넉넉하게 칸을 확보하려 애를 썼다. 갖고 있던 책들을 분야와 주제에 따라 분류해 꽂기를 마쳤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건이 늘어난 건 아닌데도 물건이 다 들어가질 않았다. 배치가 달라지면서 물건이 들어갈 공간이 줄어든 탓인 듯했다. 그래도 우선은 생활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책상과 의자, 바퀴서랍장을 기억자로 배치해 책장의 윗면을 긴 선반처럼 활용해보기도 하고 조금씩 칸을 조정해 물건을 다시 정리해보기도 했다. 몇 달에 걸쳐 쌓여있던 서류와 작업물, 만년필과 잉크, 물감과 붓, 색연필과 마카 등 문구류의 자리를 정하고 조금씩 정리하긴 했지만 여전히 수납은 부족했다. 수납장이 필요했다.


5. 남아 있는 물건이 알려준 수납장의 역할 : 부엌

네 번째 정리이자 셀프인테리어는 부엌이었다. 이사 오고 며칠은 외식이나 배달음식으로 연명했지만 이전 집에서 가져온 냉장식품이며 식재료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상할게 뻔했다. 우선은 냉장고를 비우고 깨끗하게 청소한 다음, 갖고 있던 식재료들을 분류해 냉장고에 넣고 나니 상온에 둘 것들을 보관할 데가 필요했다. 식기류와 반찬통, 냄비나 프라이팬과 같은 조리도구들을 분류하고 싱크대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씻고 요리하고 다시 설거지 후 보관하는 작업동선을 고려해서 정리하는 것도 며칠이 걸렸고 역시나 자리가 부족했다. 주방세제, 수세미, 키친타월과 롤휴지, 청소용품과 세제들, 방에도 거실에도 욕실에도 두기 마땅치 않은 물건들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주방 한편에 쌓여있었다.

싱크대에는 식기건조대, 냉장고 옆에는 상온에서 보관할 식료품들을 위한 이동식 수납장, 어디에도 두기 마땅치 않은 물건들을 보관할 계단아래 붙박이장까지, 필요한 것들을 더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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