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남긴 구옥을 리모델링하다
1. 셀프인테리어 세 번째: 가벽으로 공간 활용도 높이기
세 번째 작업으로 가벽을 세우기로 했다. 구옥 주택 우리집에 붙박이장이라고는 신발장뿐이었다. 가구라고 할 만한 것도 테이블과 의자 외에는 슬림한 수납장 정도가 다라 수납을 하려면 추가로 가구를 사거나 수납용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했다. 가구를 사려면 예산부터 공간에 맞는 디자인인지 나아가 재개발이 본격화되고 결국 이 집을 떠나야 할 때 가져갈 수 있는지까지 고려해야 했다. 엄마아빠의 자개장을 나눔 할 곳도 찾지 못해 끝내 부숴야 했던 순간이 두고두고 나를 속상하게 했기에 그런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었기에 가구는 가장 마지막 선택지로 두기로 하고 수납공간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가벽을 세워야겠다 결심한 곳은 주 생활공간이 될 방의 꺾인 부분, 현관의 신발장에서 거실이 시작되는 부분, 계단 아래 부분까지 세 군데였다. 우선 주 생활공간으로 삼기로 한 방은 가벽으로 행거와 책장과 책상사이를 나누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신발장을 기준으로 가벽을 세우고 계단실 아래 남은 공간에 가벽을 세우고 문을 달기로 했다. 각각 드레스룸과 서재 겸 작업실, 현관과 거실, 수납장과 부엌의 공간을 구분해 시선을 차단해 주고 수납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미 첫 자취집 인테리어를 할 때에도 친구와 함께 동네 목재소에서 각재와 원목합판을 사서 가벽을 세워 신발장을 만들어본 터라 이번에도 친구와 함께 만들기로 했다. 집의 구조적 특성을 이용해 최소한의 가벽을 세우고 문을 달거나 조립식 간단한 가구를 더해서 수납공간으로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였다. 마침 천장과 계단실을 만들며 남은 각재가 남아있기도 했고 친구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 같다고 흔쾌히 응해줘 가볍게 끝날 줄 알았다. 가벽을 세울 위치를 정하고 치수를 재곤 동네산책하듯 가볍게 목재소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2. 한 번에 하나씩, 가벽으로 만들어나가는 공간의 변화
치수에 맞게 주문한 각재와 합판을 사장님이 꺼내주시자마자 간단치 않겠다는 당연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걸어서 오분 거리의 목재소였지만 친구와 그대로 들고 가는 것만도 녹록지 않았다. 친구는 하루 만에 가벽을 모두 끝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지만 나는 반신반의하며 친구의 스케줄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구상하고 디자인하긴 했지만 목공에 가장 중요한 직소와 타카를 가진 것도 둘을 다룰 줄 아는 것도 친구였기에 친구의 스케줄에 맞춰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하루에 하나의 가벽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는 날마다 작업을 이어나갔다.
첫 가벽 작업은 그날 밤늦게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행거와 책장 사이를 분할하는 가벽으로 코너가 시작되는 벽면부터 3미터에 가까운 길이였다. 원래는 엄마 아빠가 두 분의 안방으로 쓰시던 곳으로 창이 많지만 남향이고 다른 방 두 개를 합친 것보다도 큰 사이즈라 내가 주로 생활하기에도 적당했다. 사실은 엄마 아빠가 생활하던 공간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떠나야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엄마아빠와의 기억을 갈무리하고 정리할 수 있는 공간에서 머물고 싶었다.
실제로 침실로, 파우더룸이자 드레스룸, 서재이자 작업실로 쓰는 것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넓었지만 문제는 수납할 곳이 없어서 산만해진다는 것이었다. 첫 자취를 할 때, 이미 옷을 수납할 공간이 작으면 계절마다 고생을 해야 하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옷을 활용하기도 어렵다는 것도 옷이 먼지를 가장 많이 품고 또 뿜어낸다는 걸 걸 경험했기에 침대와 멀고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 가진 옷을 모두 걸고 골라 입을 수 있도록 행거를 설치하고 가벽을 세워 워크인클로짓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원래는 엄마아빠의 반짝이는 자개장이 육중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뒤로 십 년이 넘는 동안 방치된 천장과 벽면이 곰팡이와 썩은 자재로 수리를 해야만 했던 자리였다. 천장을 교체하고 곰팡이방지제를 추가해 도배를 하긴 했지만, 통풍이 잘 되는 건조한 상태로 유지해야 문제없이 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행거와 가벽을 차선책으로 택한 것도 있었다.
공간을 분리해 주는 것 외에는 빈 벽으로 시선에 여유를 주는 정도로 남겨둘 생각이었기에 각재를 세우고 합판으로 마감하는 것 외에 큰 보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위치를 잡아 표시를 해두고 곧바로 각재를 세우고 앞뒤를 합판으로 덮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면에 합판 두 개로 모자라 결국 구입한 합판을 모두 다 쓰고 모자란 부분은 치수에 맞게 나누어 보강하는 것까지 마치고 나자 한밤중이었다. 친구와 늦은 저녁을 먹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집에 돌아왔는데 새롭게 바뀐 공간이 아직은 낯설기만 했다.
3. 익숙함을 넘어 새롭게, 공간에 역할 부여하기
첫 번째 가벽에 익숙해질 즈음, 두 번째 가벽을 만들기로 했다. 두 번째 작업 역시 목재소에 다녀오는 것으로 시작이었다. 첫 번째 가벽을 작업해 본 경험 때문에, 친구와 나는 서둘러 목재소에 다녀와 작업을 시작했고 시간이 남더라도 한 번에 하나의 작업만 하기로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역시 위치를 잡고 그에 맞게 각재로 프레임을 세운 뒤 합판으로 앞뒤로 마감을 해나갔다. 두 번째 가벽은 2미터도 안 되는 길이에 첫 번째 가벽작업을 해본 경험 덕분에 더욱 빨리 마무리되었다.
신발장을 구분점으로 가벽을 세운 건 현관문을 열면 현관부터 거실, 부엌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 때문이었다. 계단이 외부에 있는 데다 동쪽과 남쪽 모두 오전부터 오후까지 햇살을 받는 구조라 현관문으로 여름의 열기와 겨울의 한기가 그대로 거실로 이어졌다. 덧붙여 우편이나 택배 때문에 누군가 잠깐 방문해도 집안이 훤히 노출되고 가족들이나 손님이 방문해도 신발이나 짐이 현관을 넘어 거실을 잡아먹어 지저분해 보이기 일쑤였다. 가벽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되 현관과 거실을 확실히 구분해 주는 역할을 해줄 터였다. 구분을 하고 나면 현관은 의자를 두고 신발을 신거나 택배를 정리할 때에도 편안하게 그리고 거실은 거실대로 쾌적하게 머물 고 싶었다. 재미있는 건, 많은 생각과 디자인 끝에 작업을 했음에도 두 번째 가벽도 마주했을 때에는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낯설기만 했다는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새로운 환경을 마주했을 때에는 반드시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두 번째 가벽에도 익숙해질 무렵, 세 번째 가벽작업을 시작했다. 계단 아래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두 개의 가벽을 세우고 문을 다는 것이었다. 계단 아래의 경사진 공간 옆에는 이 집이 지어졌을 때부터 냉장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콘센트 역시 냉장고를 위해 할애되어 있었기에, 나 역시 그걸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둔 상태였다. 냉장고 옆의 세모꼴로 구석진 공간은 높이도 폭도 애매해서 잡동사니가 쌓이기 쉬운 공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구획을 하고 문을 달아 숨기는 수납을 하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었다.
그건 엄마 아빠가 수십 년간 그 자리를 어떻게 쓰는지 지켜본 나의 결론이었다. 엄마는 정리나 정돈을 잘하는 편도 즐기는 편도 아니었기에 그곳은 엄마가 어느 정도 신경을 쓰지 못하는지 보여주는 자리와도 같았다. 아빠는 늘 못마땅해했지만 다섯 딸을 키우고 살림을 하는 엄마에게 그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엄마가 더는 정리와 정돈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아빠가 그곳을 아빠 나름대로 정리하긴 했지만 그것도 결국은 버리지 못하는 잡동사니의 무덤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아빠도 배고픈 현대사를 관통해 왔기에 함부로 버리지도 못한 그리고 어디에도 쓰지도 못한 붕대와 약통, 약, 노끈과 봉투, 종이상자와 보자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물건들을 분류해 기부하고 나눔 하고 폐기하고 일부는 기어이 나의 것으로 가져오면서 물건을 무조건 모으기보다는 제대로 쓰고 정리해 가며 건사할 수 있는 만큼 건사해야 한다는, 엄마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얻은 결론인 셈이었다.
4. 시행착오가 남긴 부족함도 셀프인테리어의 즐거움이 되어
마지막 가벽은 위치를 잡고 각재로 프레임을 새우고 마감을 하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문에서 문제가 생겼다. 문으로 달려고 사두었던 원목이 세하게 수축해 뒤틀려 있었다. 경첩을 달아 고정을 시키는 순간까지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가 여닫이로 쓸 자석을 달 자리를 정해 고정시켰지만 금세 벌어지며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첫 집에서도 원목을 재단해 신발장의 문을 달았지만 이 정도까지 뒤틀어지진 않았는데 당황스러워하다가 그때 쓴 집성목과 이번에 쓴 집성목이 다른 나무고 나무마다 뒤틀림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원목이 건조하며 뒤틀릴 수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도 친구도 익숙지 않은 탓에 거기까지 고려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은 그대로 두고 지내보기로 했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문이 벌어지고 휘는 것이 보였다. 점점 더 심하게 휘는 탓에 첫날에는 그래도 자석에 닿던 문이 어느 날부터는 온 힘을 다해 밀어도 닿질 않았다. 나는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다가 외부에 걸쇠를 달아 물리적으로 고정시킬 것인지, 내부에 얇은 각재나 금속판을 덧대 뒤틀리는 걸 최대한 막을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일지를 놓고 고심하다 실제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으니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안쪽에 각재를 대고 휜 것을 반대로 펴보고도 효과가 없어서 금속을 덧대고 펴보고 마지막으로 걸쇠를 다는 것으로 마침내 문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한 달이 넘는 실험의 마무리였다. 뒤틀린 문을 다시 펴지도 못했고 걸쇠는 매번 열고 잠거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나는 해결책을 찾은 것만으로도 기뻤다.
한 달이 넘는 실험을 하는 동안 남은 각재와 합판으로 간이 선반을 만들고 아빠가 남긴 공구와 청소도구, 엄마가 남긴 주방과 욕실 도구들을 정리해 두었다. 세 개의 가벽은 이제 팬트리로, 신발을 신고 벗을 때 앉을 수 있는 여유공간, 옷을 정리하고 갈아입는 드레스룸 공간으로 쓰는 데에 제법 익숙해진 상태였다. 물론 업체와의 인테리어과정에서 목수 작업자분들이 마무리한 천장이나 계단실의 가벽과 문처럼 벽이 매끄럽지도 모서리의 마감이 깔끔하지도 않았다.
합판과 합판을 이어 붙인 자리며 타카못이 박힌 자리도 그대로 드러나있음에도 그것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거슬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을 마주하며 친구와 고심해 가며 보낸 시간들이 떠올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늘어선 옷이나 신발장, 현관문, 잡동사니 대신 나무의 결이 드러나는 부드러운 컬러의 벽면을 마주하는 게 좋았다. 빈 벽면이 공간을 차분하게 만들고 이곳에서 지내는 마음에 여유를 주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 공간에 그리고 이 공간에서의 생활을 관찰하면서 편리함과 쾌적함을 더해줄 것들을 채워나갈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