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공간, 한 사람을 만나는 전시

2025 전시/박물관 기획: 남양주시립박물관 인트로 전시 기획·설계

by 문성 Moon song Kim

기획과 실행의 현장 기록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기획·실행·조정 과정을 현장 기록으로 남긴다. 문화예술 실천이 어떻게 판단과 지식을 만들어내는지, 아이디어가 현실과 만나 기획이 되고 실행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배운 것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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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작되지 않은 공간에서 출발하다

2025년 전시/박물관 기획의 세 번째는 남양주시립박물관 인트로홀 전시 프로젝트. 남양주시립박물관의 공간을 돌아보게 된 것은 전시기획 제안을 받고 방문했을 때가 처음이었다. 상설전시를 담당하는 학예사님은 입구의 인트로 미디어 공간이 오랫동안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어 상설전시 개편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고민하고 계셨다. 그 공간을 개편의 첫 장소로 삼기로 마음먹고 기획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개관 당시 설치된 오래된 미디어 장치가 그대로 유지된 채 남아 있었고, 바닥에는 조선시대 지리지를 바탕으로 한 남양주 지도가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지역 문화유적지를 소개하는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공간은 비어 있지 않았지만, 전시는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관람객에게 이곳은 머무는 장소라기보다 자연스럽게 통과하는 구간에 가까웠다.

전시실의 흐름과 시립박물관의 소장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가장 최근에 들어온 소장품이야기가 나왔다. 정약용 선생의 새로운 영정이었다. 그 순간, 박물관의 입구가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양주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존재로서, 정약용이라는 인물이 인트로 공간에서 박물관의 얼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로 공감하게 되었다.


1. 출발 조건: 공간, 소장품, 한 인물이 만나는 지점

이 프로젝트는 완전히 새로운 전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공간과 소장품, 그리고 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대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존재하는 공간과 소장품을 기반으로 박물관의 시작 경험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었다.

타원형 구조의 인트로 공간은 박물관 정면이 아닌 측면을 비껴 타원형, 정확히는 달걀형의 둥근 공간으로 인상설전시실로 연결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단독실로 보면 규모가 작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전시를 구성하기에는 쉽지 않은 형태였다. 동시에 상설전시의 입구라는 상징적 위치를 갖고 있었기에 이 공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박물관 경험 전체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었다. 이미 지역 역사 상설전시는 구성되어 있었고, 인트로 공간은 그것을 반복하거나 요약하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관람객을 맞이할 필요가 있었다. 인트로 공간은 전시실로 들어가기 전 잠시 머무는 장소였지만, 동시에 박물관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상설전시실의 내용과 연결되면서도 독립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했고, 특정 시대나 사건이 아니라 박물관 전체를 상징하는 장면이 필요했다.

그때 다시 정약용 선생의 새로운 영정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존재가 정약용이었다.
남양주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지역의 기억 속에서 계속 호명되어 온 존재.
남양주의 자연과 역사 속에 새겨진 인물이면서 오늘의 삶과도 연결될 수 있는 존재.

공간을 함께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감이 형성되고 있었다. 정약용이라는 인물이 남양주역사박물관의 얼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새롭게 소장된 영정이라는 분명한 시각적 중심이 있으니. 그것이 정약용 선생의 초상을 중심으로 인트로 공간 전시를 구성하기로 결정한 순간이었다. 전시는 이미 그곳에 있는 것들로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2. 핵심질문: 박물관의 시작점에서 한 인물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

인트로 공간은 정보를 제공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전시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물관 경험의 첫 장면이라면, 관람객이 자신의 속도를 낮추고 시간을 건너 다른 시대의 인물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인트로 공간은 정보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사색의 밀도를 만드는 공간이 되어야 했다. 따라서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박물관의 인트로이자 하나의 전시로서, 한 인물을 만나는 경험을 어떻게 가장 밀도 높게 만들 수 있을까.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관람객이 단순히 초상을 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대의 인물을 마주하고 잠시 멈추어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현재의 번잡한 공간에서 벗어나 과거와 현재가 조용히 만나는 감각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을까. 고요한 가운데 인물을 통해 자신의 시간과 생각을 되돌아보는 경험을 누리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들은 이후 공간 구성과 전시 방식의 기준이 되었다.


3. 취사선택: 초상 하나로 시작되는 감상

여러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선택은 점점 단순해졌다. 모든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정약용 선생의 초상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영정 봉안식 문화예술행사를 기획하며 영정제작 프로젝트를 비롯해서 선생의 삶을 한 차례 따라간 경험이 있었지만, 전시를 준비하며 다시 자료를 읽고 남양주에서 나고 자란 삶과 유배 이후 다시 돌아온 남양주에서의 시간을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기록을 따라가다 보니 역사적 인물이라는 거리감보다 한 개인이 살아낸 시간의 결을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시대를 통과하며 사유하고 기록하고 실천했던 한 인간의 삶이, 긴 귀양의 시간을 지나 다시 고향의 강가로 돌아와 여유당에서 노년을 보내던 사람의 삶으로 점차 구체적인 온도를 가지기 시작했다.

배움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 했던 태도, 혼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쓰이기를 바랐던 지식인의 자세, 후대를 향해 남긴 수많은 글들 속에서 시간의 깊이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역사 속 인물이라기보다 조용히 말을 건네는, 의지하고 싶은 따뜻한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 감각을 설명으로 전달하기보다 공간의 경험으로 옮기고 싶었다.


관람객 역시 한 인물을 ‘이해’하기보다 ‘마주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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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현 과정: 깊은 청록의 공간을 지나 한 사람에게 이르다

하여 공간을 현재의 번잡한 감각에서 서서히 벗어나 사색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구성했다. 가벽을 설치해 입구에서 자연스럽게 시선과 함께 측면의 복도를 따라 걸어 돌면, 등신대의 정약용 선생의 초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공간은 남양주의 자연이 추상화된 짙푸른 청록으로 구성해 곡선 동선을 따라 이동하도록 설계했다. 청록색의 깊은 숲과 한강의 물빛을 닮은 짙푸른 색감으로 현재의 전시공간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전이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관람객이 차분히 머물며 한 인물을 마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공간 중간에는 사료에 남은 제자가 증언한 정약용 선생의 외모 묘사 문구와 영정 제작 과정 영상, 후손과 전문가 인터뷰를 배치해서 초상에 대한 기대감을 더하고 초상이 갖는 의미를 정보와 함께 풍부하게 전달하고 인물에게 이르는 시간을 형성하는 장치로 조정되었다.

공간의 색채와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다룬 요소는 조명이었다. 하나의 초상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조명 설계에 특히 많은 비중을 두었다. 별도의 조명 예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 예산 안에서 조명 비중을 의도적으로 높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리움미술관 전시에서 사용하는 수준의 전시 조명을 적용해, 초상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되면서도 공간 전체의 깊이가 유지되도록 조도를 세밀하게 조정했다. 빛이 초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공간의 고요함을 유지하도록 여러 차례 테스트를 반복했다.

관람객이 한 작품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충분한 시간 동안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 단순한 조건을 구현하는 일이 이 공간 설계의 핵심이었다. 초상을 중심으로 구성된 청록색 공간과 절제된 조명 속에서, 인트로 공간은 설명의 장소라기보다 사유의 밀도를 만드는 장면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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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획 회고: 시작의 공간을 설계한다는 것

박물관의 인트로 공간을 기획하는 일은 하나의 전시를 만드는 일과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이 공간은 독립적인 전시이면서도 상설전시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 놓여 있어야 했고, 관람의 시작을 열어주는 장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너무 강하면 이후 전시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고, 너무 약하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인트로 공간의 역할과 밀도를 조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여러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선택한 방법은 오히려 단순했다. 많은 것을 보여주기보다 하나의 작품에 집중해 경험의 톤과 이미지를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정약용 선생의 초상과 그것을 둘러싼 공간의 색채와 빛, 그리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 마주하는 동선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강렬하지만 조용한 시작. 그 리듬이 관람객이 이후 상설전시를 경험하는 방식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전시의 시작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는 관람 동선의 물리적 출발점이자 해석의 정서적 출발점을 형성한다. 이번 인트로 공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도입부의 밀도와 이미지가 이후 전시를 경험하는 감각적 리듬을 설정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동할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6. 남은 이야기: 인트로 전시가 남긴 질문

이 작업은 전시기획이라는 일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전시는 정보를 전달하는 구조일 수도 있고, 감상의 환경을 만드는 장치일 수도 있으며, 질문을 던지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인트로 공간의 전시는 그 세 가지 가능성 사이에 놓여 있었다. 아직 많은 관람객의 반응을 충분히 듣지는 못했지만, 공간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작은 기쁨을 느꼈다. 짧은 순간이지만 한 작품 앞에 머무르는 경험이 관람객에게 남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의미 있게 느껴졌다.

박물관은 과거를 보관하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과거의 인물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비추어 보고, 잠시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 인트로 공간이 그런 경험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랐다. 관람객이 박물관을 단순히 정보를 얻는 장소가 아니라 머물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하고, 다시 찾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작업 안에 담겨 있다.


다음 기록으로

남양주시립박물관 인트로 공간 작업이 한 인물과 하나의 작품을 통해 박물관의 시작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었다면, 다음 기록은 전시의 개념 자체를 다루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다시입다연구소’와 함께한 전시는 환경 실천으로서의 전시이자, 전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프로젝트였다.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삶의 태도를 전시라는 형식으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과정, 그리고 전시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던 경험을 다음 글에서 이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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