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공간-시간] 성북에서 마주한 세 개의 시간

[리뷰] 2024 성북구립미술관: <유근택>, <조덕환>, <흰: 원형>

by 문성 Moon song Kim

감각과 사유의 기록

감각이 아직 판단이 되기 전의 상태를 기록한다.

이 글은 이해보다 먼저 도착하는 질문들의 기록.



*2024년 관람한 전시를 떠올리며, 그때의 감각을 옮겨 적는다. 성북이라는 지역에 살면서 마주하게 된 일상 속 전시들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멀지 않은 거리에서, 이어지는 전시들을 보는 일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지역에서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축적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천천히 지켜보는 일이기도 하다. **성북구립미술관, 성북구립최만린미술관은 성북구 성북문화재단의 공립미술관이다.


<유근택: 오직 한 사람> 2024.04.25.-07.21.

1980년대 후반에 제작된 초기 작품부터 2024년 최신작 포함하여 회화, 목판, 드로잉 등 160여 점 소개

1 전시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성북동 일대 풍경을 그린 대형 신작과 미공개 회화
2 전시실: 유근택의 목판에 관한 작업관과 그 세계를 조명하는 첫 전시로 수십 년간 작업해 온 140여 점 이상의 주요 목판 작품


review:

유근택은 전시서문에서도 언급하듯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아름다운 작업들을 선보여왔고 나 역시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에서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성북구립미술관에서 기획전시로 선보이는 유근택의 개인전은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폭넓게 살펴보고 또 감상할 수 있는 전시였다. 16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 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작업을 해왔는지 가늠할 수 있는 동시에 다양한 매체와 방법들을 시도하며 실험 속에서 발전해 온 그의 작업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전시는 특히 2 전시실에서 그의 목판 작업을 중요히 다루고 있는데, 나는 1 전시실 그의 풍경에 매료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1층에서 보냈다.

가장 마음을 끌었던 것은 내가 나고 자란 성북에서 그 역시 일상을 보내며 자신의 삶과 일상을 녹여내 완성한 풍경, 자연이었다. 그리고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 코로나로 거리 두기를 해야 했던 기간 동안 아버지에게 보냈던 안부인사이자 매일의 드로잉이 마음을 두드렸다. 한지에 묵으로 적힌 '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 평범하고도 담백한 인사가 어찌나 다정하게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리뷰를 적으며 갑작스레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이제는 다 산 것 같다고 뇌까리던 아빠, 귀가 잘 들리지 않던 아빠에게 적어서 건네던 나의 인사를 떠올렸다. '아빠, 사느라 고생했어요. 그래도 일어나 아침 먹어요.'

작가의 한 문장을 보고 난 이후 전시를 다시 거꾸로 천천히 걸어 보았다. 이미 보고 지나간 풍경들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누군가의 일상이 겹쳐진 풍경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그 안에서 어떤 시간들이 흘러갔을지를 자꾸만 상상하게 되었다.

큐레이터의 말대로 '풍경에서부터 가족과 사람들, 그리고 인간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세대와 세대를 가로질러 존재하는 ‘한 사람’의 생애와 이를 둘러싼 장면들' 속에서 나는 느꼈다. 그의 풍경, 그의 장면들은 우리 모두가 겪는 삶 속의 순간들을 떠올리고 그 아래 보편적인 정서를 깨우고 가만히 어깨를 내미는 듯하다. 당신도 그랬군요, 나도 그랬답니다. 하고 가만히 그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조덕환: 구상의 길을 걷다> 2024.10.15-2024.12.8.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는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도 서양화가의 길을 걸어온 1세대 서양화가이자 성북동에서 일생을 지낸 조덕환 작가를 돌아보는 전시.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르는 구상회화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60여 점의 작품과 1940년대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린 데생과 연구작품들, 사진등의 아카이브자료들 30여 점까지 전시되어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현대사와 함께 훑어볼 수 있는 자리.


Review

성북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성북동에는 유독 많은 예술가들이 살았고 개인적으로도 그 때문에라도 더더욱 성북동을 좋아하고 종종 산책할 때마다 그들을 생각하곤 한다. 서울성곽의 동북자락으로 능선을 넘어가면 금세 서울시내에 진입할 수 있는 지리적인 위치이기도 하고 산자락의 뒤쪽이라 이전에는 북악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이 있던 자리 좌우로 음악가 윤이상, 김환기, 김용준, 변종화, 서세옥, 김기창… 뿐만 아니라 심우장을 지었던 한용운, 1세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한국미술사가였던 최순우,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를 지켜왔던 전형필의 간송미술관까지, 열거하기만 해도 벅찬데, 이번 전시를 보고 조덕환을 또 추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들만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살았던 격동의 한국사의 흔적들을 함께 길어 올려 작가가 서양화를 공부하게 된 일본유학,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나가게 된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의 존재까지도 사진자료와 신문기사 등을 통해서 확인하는 등 한국미술사의 귀중한 사료들까지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전시였다.

더불어 작가의 작품들을 시간순 대로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게 전시를 구성했는데, 그중에서도 자신의 가족들 특히 아내와 딸을 모델로 그린 인물화, 당시의 성북동, 그가 떠나 마주한 시골의 풍경들을 상상하게 하는 풍경화, 집안에서의 풍경을 통해서 짐작케 하는 당시의 생활상 등은 가족들과 삶에 애정을 갖고 꾸준히 그리고 아름답게 화폭에 담아내려 애쓰던 작가의 마음이 잔잔히 전해지는 듯했다. 어쩌면 조금은 단조로워 보이기도 혹은 심심해 보이기도 하는 소재들은 사실은 그가 하루하루 화가로서 마주하는 화폭과의 대면에서 충실하게 담아낸 치열한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거창한 역사화나 상징이 가득한 추상화가 아닌 일상의 대상들을 화폭에 담고자 결심하고 그것들을 섬세하게 포착해서 그 순간의 날씨와 햇살, 공기의 밀도까지도 표현해내려고 한 그 과정 자체를 주목하게 된다. 더불어 가까운 이들 특히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의 매일을 보내는 일상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것들의 중요함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흰: 원형> 2024.03.28-11.2

최만린의 석고원형조각만 선보이는 최초의 전시로 1958년부터 마지막 시기인 2010년대까지 60여 년의 그의 작업을 아우르는 전시, 대표 석고원형 54점과 드로잉 11점 등 총 65점 작품 소개

작가가 1988년부터 2018년까지 30여 년간 삶의 터전이자 작업실로 삼았던 공간이 성북구립미술관 분관으로 단장하여 한국 현대추상조각의 대표작가로서 그의 삶과 작품을 돌아보는 동시에 그의 작품 대부분이 탄생한 공간으로서 '근원적 장소로의 회귀'로서 전시


Review:

개인의 삶과 시대의 시간이 겹쳐지는 지점을 마주한 성북구립미술관 본관 전시들과 비교하면, 최만린 미술관의 전시는 시간이 물질로 남아 있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부연하면, 한국 초창기 추상조각을 올림픽공원이나 대형 빌딩 앞의 지루한 장식품으로 생각했던 이들이라면, 작품으로 오롯이 감상하고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그 작품이 만들어지던 시기의 시대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맥락까지 돌아볼 수 있는 전시였다. 특히 1층의 대형 석고원형 작품들은 주로 개방공간에 전시되는 청동작품들이 주물을 위한 틀로 찰흙으로 빚은 형태를 바탕으로 제작한 석고원형을 바탕으로 완성된 것임을 상기하게 했다. 최만린은 석고원형을 폐기하지 않고 섬세하게 다듬고 그 자체를 작품으로 보존하고 있었기에 작품들을 만나고 나면 전시의 제목을 '흰: 원형'으로 붙인 이유를 납득하게 했다.

석고가 갖는 특유의 빛깔과 질감 그리고 빛과 만나며 만들어내는 입체감은 그 자체로 시각적으로 집중하게 하는 힘과 조형적인 구성미를 즐기게 한다. 더불어 작가가 생활하고 작품에 몰두했을 공간과 어우러져 시간이 창작을 위해 멈춰있는 듯 적막하고도 고요한 침묵으로 사색하게 만들었다.

그 공간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을 보고 있다기보다 그 공간 안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해진다. 시간이 흐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자리에서, 그 시간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2층의 아카이브실에서는 그의 책상과 책장 그 곁으로 놓인 도구와 활동과 관련한 자료들, 작업과정을 안내하는 영상으로 조각을 만들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작가로서의 그의 활동상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준다. 창가에 드리워진 나무그늘을 깨닫고 정원을 내려다보니 그의 작품들이 어우러진 공간의 구성에 그가 조각 특유의 입체감을 건축공간과 함께 고민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그의 작품들, 아카이브실을 둘러보고 내려와 정원도 구석구석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나라 6,70년대의 건축도 감상하다 보니 그의 청동조각과 석고원형을 비교해 보는 맛도 그리고 그의 손길이 분주하게 닿았을 정원과 적별돌 건축의 구석구석까지도 아름다웠다.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장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의 별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혹여나 길이 없다고 망설이면 안 됩니다.
있는 길을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들며 달려가야 합니다.

최만린미술관 야외전시공간에 있었던 최만린의 문장


세 전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다루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묘하게 이어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개인의 삶과 기억을 통해, 다른 한쪽에서는 현대사 속에서 축적된 시간을 통해,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물질과 공간을 통해. 같은 지역 안에서 비슷한 시기에 마주하게 된 이 전시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지역이라는 특성 안에서 겹쳐지며 하나의 층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세 전시가 전하는 공통의 감각이 무엇인지는 판단하기 전에,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는다는 것을 느낀다. 세 작가가 지나온 그 시간들이, 성북이라는 지역에서 쌓여왔음을 그리고 전시를 통해서 다시 그 시간들을 감각하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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