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공간-제도] 석촌호수에 생긴 미술관의 시도들

[리뷰] 2025 송파공립미술관 더갤러리 호수 전시 넷

by 문성 Moon song Kim

감각과 사유의 기록

감각이 아직 판단이 되기 전의 상태를 기록한다.

이 글은 이해보다 먼저 도착하는 질문들의 기록.



석촌호수 근처를 자주 가는지라 가면 종종 산책하곤 한다. 2025년 작년 초, 오랫동안 공사 중이었던 곳이 가림막을 벗고 개관전시를 하고 있었다. 가림막에 태권브이가 그려져 있어서 어쩐지 미심쩍어하며 지나가곤 했었는데 알고 보니 송파구의 구립미술관의 갤러리였다.

공간에 아마도 수장고 없이 전시실을 최대한으로 확보한지라 갤러리라는 이름을 붙인 듯했다. 석촌호수의 지형을 따라 경사에 자리 잡고 있어 지하 1층, 지상 1층, 데크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지하는 말만 지하일 뿐 호수와 같은 지면에 위치한 호수전경과 호수를 따라 지나는 가로수산책길이 보이는 높이에 전시공간이 있었다. 1층은 그 위를 두르는 도보와 가로수가 보이는 옥상데크와 이어져 어디로든 출입해 관람이 가능한 구조였다.


⟪ 더 갤러리 호수 개관 전 ⟫ 2024.11.22.- 2025.02.28

◈ 1 전시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 전]

◈ 2 전시실 [Into the colors]: 이경, 제이미리, 하태임

◈야외 [예술정원 전]: 강재원, 박안식, 조영철, 남다현, 황혜선


Review

개관전시는 두 가지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하 1층은 색을 주제로, 지상 1층은 잠실 일대 전경 등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공원을 산책하다 들어간 터라 자연스레 지하 1층의 색 주제 전시부터 관람하게 되었는데, 시립미술관에서 소장품 전과 기획전 도슨트를 하며 만났던 작품들도 다시 만나 반갑기도 했고, 통창으로 들어오는 호수의 햇살이 작품들과 어우러지며 공간을 다채롭게 빛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이어진 작품들 역시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주목받아온 작가들의 작업들이었다. 공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듯, 혹은 하나라도 더 많은 작품을 보여주려는 듯 빽빽하게 놓인 작품들을 하나씩 감상하다 보니, 크지 않은 공간을 돌아보는 데에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선을 붙든 것은 황선태의 작품이었다. 석촌호수에 드리워진 햇살이 길어진 오후, 통창으로 전시실 내부까지 길게 뻗은 빛을 그대로 담아낸 듯, 혹은 갤러리 호수라는 바로 이 공간의 모습을 은유하듯 작업 역시 빛이 스며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고 화려한 작업들 사이에서도 그 작품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멈췄다. 공간을 이미지로 묘사하는 동시에, 공간이 주는 감각과 의미에 질문을 던지는 듯했고, 동시에 이 갤러리 호수라는 장소 자체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미술은행이 소장하는 작품들인 만큼 근현대사의 스타일들을 아우르는 동시에 각각이 충분히 음미할만하기도 했지만, 좋은 작품들을 나열하는 방식보다는 지하 1층의 색 주제 전시를 1층까지 확장해 이어가거나, 갤러리 호수라는 공간적 특성과 송파구의 구립미술관으로서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기획이 더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실이라는 위치, 호수의 정취, 그리고 미술전문공간으로서 최소한의 여백을 갖춘 공간에서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장점이었다. 산책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들어와 머물 수 있는 전시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곳은 분명 가능성을 가진 출발점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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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산책을 하면 자연스레 공간을 지나쳤고 시간이 맞을 때면 새로운 전시가 열렸는지 확인하고 들리는 코스가 되었다.


쥬세뻬 비탈레 특별展 [레가미 더 호수] 2025.5.24.-6.25.

두 번째로 관람하게 된 전시는 기획전으로, 이탈리아의 예술교육자이자 동화작가, 화가인 쥬세뻬 비탈레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화적으로 그린 동물들 그중에서도 강렬한 컬러의 새였다.

대담하면서도 소박한 필치로 그린 새 이미지는 단순한 재료로 입체로 만든 새 조각들로 이야기가 이어지듯 전시실을 채우고 있었다. 석촌호수의 풍경이 드리워진 공간에 선과 색, 입체로 완성한 새는 그 어떤 군더더기 없이 석촌호수의 자연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이미지에 어떤 과잉의 의미나 역할을 부여하지 않고 이미지를 그 자체로 즐기게 하는 단순함과 소박함이 인상적이었다.

예술교육에 몰두하며 그림을 통한 의사소통을 추구하는 작가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작업들이 무언가를 설명하기보다 바라보게 하고, 의미를 덧붙이기보다 이미지를 그 자체로 두는 방식으로 이 공간 안에서 가볍게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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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슷한 동선으로 다시 석촌호수를 거닐던 가을날, 전시는 또 달라져 있었다.


《김흥수: 하모니즘 Kim Sou: Harmonism》2025. 10. 4. - 11. 21.

원숙한 경지에 오른 우리나라의 2세대 서양화가로 저명한 작가, 김흥수의 대표적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작품들 중에서 그리고 전시의 동선구성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였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표현한 평면회화로 원래는 하나였던 공간을 레일을 달아 암막커튼으로 분리하고 작품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드리워 작품에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해 두었다.

유일하게 조명을 받은 작품 앞에 마주 앉으면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리며 함께 음미할 수 있도록 여운을 더했다. 그의 대작들을 둘러보고 앉아 조용히 짚어볼 수 있게 하는 시간성을 더해서 작품을 더욱 깊게 그리고 찬찬히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의 역할. 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게 하는 방식으로 전시 관람의 강약을 부여하고 감상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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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시작되고, 다시 방문했을 때는 조금 더 지역색을 띤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2025 송파 청년아티스트 특별 전시회》2025. 12. 06. ~ 2026. 01. 11.

전시에서 단연 인상적이었던 작업은 남정근 작가의 ‘거리의 사람들’ 연작이었다.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의 사람들, 흔히 보았을 법한 자세와 태도, 표정을 등신대 조각으로 구현하고 그 위에 연필선을 입혀 작품 앞에 서자 마치 바로 앞에서 그들에게 말을 건네기 직전의 순간을 마주한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그들의 감정과 사연을 짐작하게 만들고, 그 너머로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일상에 지친, 찌든, 무심한, 당황스러운 표정과 제스처 속에서 유머러스하면서도 씁쓸하고 애잔한, 일종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작업이었다. 페이소스로 탁월했던 구본주 작가의 작업들, 그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더불어 전시실에 작가의 작업실과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작업과정을 작가의 방으로 구현해서, 작가의 작업을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으로 이해하게 하는 재미도 있었다. 작업들과 작가의 작업실을 엿보고 나니 이 젊은 작가의 앞날을 응원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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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몇 번의 전시를 보게 된 갤러리 호수는, 석촌호수라는 명소이자 지역주민들의 휴식공간에 자리 잡은 터라 산책을 하다 들르고 다시 지나가다 들어가게 되는 공간이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기보다 일상의 동선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전시들은 때로 기획의 밀도가 아쉬웠고 때론 공간과 작품이 자연스레 맞물려 감흥을 더욱 강렬하게 더해주기도 했다. 완결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여러 시도들이 병렬적으로 펼쳐지는 상태에 가깝다고 여겨졌다.

다만 그 시도들이 이 공간의 성격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좋은 작품들은 이미 충분히 들어오고 있고, 공간이 갖는 잠재력도 분명했다. 이 공간이 무엇을 중심으로 공간의 정체성을 쌓아갈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찾는 이들과 그리고 공간이 위치한 지역과 연결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을 뿐. 호수 옆에 생긴 이 작은 미술관이, 단순히 들르는 공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시 찾게 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그 방향을 계속해서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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