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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말고 '이거'

하/되/먹/갖 (1)

by Mr text

특별한 계획이나 목적은 없었다. 그냥, 연휴에, 햇살도 너무 좋고. 이런 날에 집에만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딱히 뭘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바깥공기나 좀 쐬야겠다는 정도. 그래서 아내와 함께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


햇살은 좋았지만 생각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강풍에 날리는 모래와 머리칼이 심기를 살살 건드렸지만 기왕 나온 산책이니 좀 더 참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걷다가 도착한 홍대 인근. 홍대는 예전보다도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았다. 우리가 평소에도 사람 많은 곳을 피하는 편이기는 했지만 이 날은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그냥 차 끌고 다른 데 갈걸 그랬나?" 같은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역 인근만 벗어나면 좀 낫겠지 싶어 경의선 숲길을 따라 계속 걸었으나 인파는 줄지 않았다. 사람을 피하다 지친 우리는 어디 들어가 커피라도 한잔 하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네이버 지도에 찍어둔 유명한 곳은 지난번에 가 봤고, 괜찮아 보이는 곳은 웨이팅이 길거나 자리가 없었고, 안 가봤으면서 자리가 있는 곳은 어딘지 애매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들어간 곳은 쿠키가 맛없어 보여서 그냥 나왔다. 두 시간이 넘도록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걷기만 하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좋자고 나간 산책이었는데 어딘지 허무하고 피곤했다. 마치 산책이 아니라 표류를 한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피곤했을까. 그냥 산책이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기분을 처음 느낀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가끔, 퇴근 후에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은 재미있는 영화를 한 편 보고 싶다."거나, "오늘은 진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싶다."같은 것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을 마주하게 되면 뭘 볼지 모르겠고 뭘 먹고 싶은지도 몰라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거나'와 타협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날은 아무런 감흥 없이 하루가 끝나버린다. 무언가를 선택해서 '에이, 재미도 없네.'라던가 '맛이 없었네.' 같은 결론이었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아무거나'로 종착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선택했다가 별로였을 때 생기는 찝찝함, 후회, 괜히 손해 봤다는 느낌. 그런 감정이 싫어서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게 더 편한 것이다.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가족, 친구 등 다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이런 감정이 더하다. 물론 상대의 취향과 의사를 존중해 주기 위한 마음이 가장 크지만, 내가 뭔가를 선택해서 저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느니 상대에게 맞춰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있다. 자기 합리화인 셈이다.


문제는 '아무거나' 끝에 당도한 결과가 나를 더 지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선택하지 않으면 실망은 덜할지 몰라도 만족 또한 없다. '아무거나'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허무함과 탈력감, 그리고 '나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뿐이다. 그냥 일상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기분. 오늘 겪은 표류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바람 때문에? 사람이 많았어서? 아니. 그냥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특별히 뭔가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마실까?" "난 아무거나 좋아."

"걷다가 보이는 데로 갈까?", "그래. 난 다 괜찮아."


나는 평소에도 이렇게 살았다.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는 아무거나. 뭐 할래?라는 질문에는 다 좋아. 겉으로는 유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내 취향을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뭔가를 원해서 선택하기보다는 상대에게 넘기고, 흘러가게 놔두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뭔가를 하려고 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 된다. 그런 날들의 끝에는 이상한 피로가 쌓인다. 마치 오늘의 산책같이.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무력한 패배감마저 들 것 같았다.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뭔가 하나라도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무렵, 아내가 말했다.


"집 옆에 있는 카페에 가서 망고주스 한잔 마시고 들어갈래?"

"오, 나도 거기 생각했는데. 거기 가자. 좋다."


망고 주스는 참 맛있었다. 단지 소소한 한 가지를 스스로 원하고, 찾고, 마침 아내와 생각이 같았고, 결국 마셨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꽤나 정돈됐다. 대단한 큰 성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괜찮았다.





나는 입버릇처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지. 다 그래."라고 공감해 준다. 나만 이런 것은 아닌 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기 마음을 말하는데 서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를 많이 아끼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참 둔감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른 채 '다 괜찮아.'라고 넘기고 만다. 하지만 그 '괜찮아'는 대개 괜찮지 않다. 스스로 정하지 않았고 원하는 것도 말하지 않았으니 만족스러운 결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결정하지 못한 하루, 말하지 못한 욕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마음속에 탈력감을 남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선택하고, 경험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매번 완벽한 정답을 찾아내기를 바라기보다 그 상황에서 내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고 "나는 이걸 해보고 싶어"라고 말해보는 연습.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아무거나."가 아니라 "망고주스."라고 말하는 연습이다. 오늘은 망고주스였지만 다음에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하루가 쌓이면 나도 언젠가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조금은 더 또렷하게 알게 되지 않을까.


"대체 나다운 게 뭔데?"라는, 내게는 너무나 어렵고 난해한 질문. 이 연습의 끝에 저 질문의 해답이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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