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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Nov 27. 2022

나를 열심히 일하게 하려거든

생각하는 톱니바퀴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본다. 검은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동자에 생기라곤 없다. 썩은 동태 눈깔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아, 일하기 싫다.

 예전이라고 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그 빈도가 정말 많이 늘었다. 옆에서 듣는 사람의 의욕도 빼앗아 버리는 말이기 때문에 가급적 혼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는 내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보지만 무릎을 두드리면 다리가 튀어 오르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순간 툭툭 튀어나오고 만다. 나는 어쩌다가 이 말을 이토록 많이 하게 되었을까. 이대로 가다간 무기력증에 빠지고 말 것 같아 이유라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일이 너무 많다.

 나는 올해 2가지 업무를 맡아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A 업무에 관한 얘기다. A 업무는 작년 말에 기획을 시작해 올해 론칭한 신규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없던 서비스를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일이었고 0부터 100까지 모든 것을 정의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서비스가 출시된 후에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버그를 고치고 고도화도 해야 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일이 참 많다. 소속 팀원들의 퇴사로 인한 유관부서 담당자의 업무 과부하, 그로 인한 업무 공백 및 누락, 검토 및 개발 일정 지연, 그리고 시장환경의 변화까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다 보니 아무리 해도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처럼 통제할 수 없는 문제가 쏟아질 때면 나는 무기력감을 느낀다. 학습된 무기력이 코앞까지 다가온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지금까지야 주어진 업무를 주어진 리소스 안에서 어찌어찌 해왔지만 어느 순간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일이 줄어들질 않는구나. 어차피 이럴 거라면...' 같은 생각이 든다면? 어린 시절부터 말뚝에 메여 살아온 코끼리가 다 자란 뒤에도 말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일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매번 허덕이며 살지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 비전을 모르겠다.

 올해 담당하고 있는 두 업무 중 B 업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B 업무는 작년부터 해오던, 매출을 발생시키는 운영성 업무다. 나는 이 서비스에서 오로지 매출만을 요구받는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 그러면서도 전월보다는 조금이라도 우상향 하는 그래프. 이 서비스의 목표는 오직 그것뿐이다.

 어떤 서비스도 완벽할 수는 없다. 문제가 있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 서비스의 비전에 맞춰 방향을 잡고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하나 보완해나가야 하지만 비전 없이 매출만을 요구받는 상황에서는 이런 절차가 모두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물론 매출을 생각하지 않는 서비스는 오래가지 못하고 망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출이 목표의 전부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 없이 지금 이 상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만, 변하고 있는 시장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매출을 높일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하며 결국 꼼수를 찾게 된다. 서비스 개선을 위한 투자 없이 직원을 갈아 넣는 것으로 상황을 넘기고, 그저 어떻게든 올 한 해 문제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운이 좋아 매출 목표는 달성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보이는 것은 숫자일 뿐 그를 달성하기 위한 직원의 노력은 제대로 보이지 않고, 서비스는 문제없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직원의 마음엔 문제가 생기고 말 것이다. '이 매출이 늘어난다고 내 월급을 높여주는 것도 아닌데. 매출이 늘어봐야 내게 무슨 도움이 되나. 그렇게 매출을 늘려가면 그 끝에는 무엇이 있나.'


 아무리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라지만 직원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일이 많아지면 그것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비전이 없는 것은 훨씬 크고 심각한 문제다. 일이 많아도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이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비전이 없다면 일이 많지 않아도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 요즘 부쩍 화두가 되고 있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그러니까 직장에서 주어진 것 이상을 하려는 생각을 중단하고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태도도 어쩌면 비전의 부재 때문일지 모른다.

 일이, 회사에서의 성과가 내 삶의 전부가 아님이 당연해진 시대에 직원들에게 열정을 바라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필요하다. 막대한 보상, 혹은 마음속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 회사는 내게 막대한 보상을 주고 있는가. 리더들은 내게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둘 다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일이 너무 하기 싫고 출근하기도 전에 퇴근부터 하고 싶은 내 마음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나는 회사로부터 열정을 요구받으므로 당당히 저 둘을 회사에게 요구하겠다. 나를 열심히 일하게 만들고 싶거든 막대한 보상이나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달라. 허울뿐인 약속과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체감할 수 있고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달라. 기왕이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를 달라. 그러면 꺼져버린 내 맘속의 열정도 다시 타오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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