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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Nov 13. 2022

사람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욕망

읽고, 쓰다 |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내 머릿속은 때로, 무척이나 쓸데없이 복잡하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느라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지 못할 때도 있고,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느라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먹거나 갖고 싶은 것도 없이 흐릿하다고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은 요즘 뭐가 가장 재미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보았지만 내 것으로 삼을 만한 답을 찾지는 못한 채 답답함을 안고 그냥, 그렇게 지내곤 했다. 내 머릿속이 복잡했던 이유는 결국,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기 떄문이었다.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함을 인지하면서도 행동은 하지 않고 주저앉아 머릿속으로만 답답해하는 몽상가. 독자인 '나'는 소설『그리스인 조르바』속 화자인 '나'에게서 이런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화자인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나'와 정반대의 인물인 조르바에게 단숨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는 종교나 학문, 관습이나 국가, 시대를 지배하는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구속받지 않으며 감정과 욕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게 지독할 정도로 솔직한 인물이다. 넘치는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해 온 몸을 던져 춤을 추고, 불의를 보면 맞서 싸우고, 육욕이 생기면 사랑을 하는, 원시의 욕망을 그대로 의인화한 것 같은 조르바는 무척이나 선명하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사상에 대한 옳고 그름, 당시와 지금의 시대적 가치관 등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람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욕망"이라는, 어디에선가 읽은 글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돈을 열심히 벌고, 운동을 잘 하고 싶은 사람은 연습을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 조르바라는 인물을 그토록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조르바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거나 '이해'한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느끼는'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욕망을 그처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섭도록 지금의 순간순간에 몰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카르페 디엠의 화신인 것만 같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삶의 순간순간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그에 충실하게 살면서 조르바는 자신의 욕망을 자연스레 느낀다. 그리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에 망설임을 두지 않는다. 때로는 도자기를 만드는데 방해가 된다고 도끼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릴 정도로 극단적이게 표출되기도 하지만, 그 덕에 그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면서도 - 욕망의 끝은 보통 집착과 구속인 것과 달리 - 오히려 영혼의 자유를 얻는다. 욕망의 끝이 영혼의 자유라니.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이런데 써도 되는 걸까.


 언제부턴가 나는 무엇을 이뤄내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을 숨기게 되었다. 처음엔 숨기기만 하더니 어느샌가 노력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무엇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적당히, 대충대충 정도가 편해졌다. 기본만 하면 되지. 이런 내게 조르바는 말한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


 그저 사고 없이 평탄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내게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두목, 산다는 게 뭔지 알아요? 허리띠를 풀고 말썽을 만드는 게 바로 삶이지요. 산다는 게 곧 말썽이에요. “


 그는 나와 너무나도 다르다. 그는 너무나도 극단적이다. 나는 절대 그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과 행동은 자꾸만 내 가슴을 울린다. 설령 조르바처럼 살 수는 없을지라도, 내가 스스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깨우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내 욕구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 순간순간에 지독하게 몰입하다 보면 나도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욕망이다.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언젠가 내가 지금의 답답함을 털어버리고 삶을 대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추게 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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