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잘못을 한다. 더군다나 나라는 사람은 완벽이라는 경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잘못을 아주 밥먹듯이 한다. 나의 잘못은 주로 부주의함과 미숙함에서 기인하곤 하는데, 무지에 의한 잘못은 스스로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 실제로는 얼마나 잘못투성이의 삶을 살고 있을지 아찔할 때가 있다. 그 수많은 잘못의 역사 중에서도 특히 기억이 남는 것이 있는데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던 짓이다.
같은 동아리의 선배 몇 명이 밥을 사준다고 해서 동기들과 함께 학교 근처의 중국집에 갔다. 선배들과도 아직 데면데면할 때였는데 이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는지 우리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선배가 다들 어느 중학교를 나왔는지 물어보았다. 각자의 출신 중학교를 답했고 그걸 계기로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짓궂은 장난으로 학생들을 괴롭히던 선생님이었는데, 나는 뭐가 그리 신났었는지 그 선생님의 이름을 친구 이름 부르듯 불러가며 온갖 흉을 보았더랬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게 그 선생님의 안부를 물어본 선배부터 같은 중학교를 나온 동기들 모두 표정이 사색이 되어갔다. 분위기가 이상해졌음을 감지하고 말을 멈춘 내게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조용히 속삭였다.
"너 미쳤어? 저 선배가 그 선생님 아들이잖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순간의 아찔함이 생생하다. 그토록 신나게 떠들던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배 보기가 민망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음식 먹는 시늉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숨 막히던 시간이 마침내 끝나고 집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을 때, 나의 민망함을 핑계로 정작 선배에겐 사과하지 못했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타이밍을 놓친 사과는 적시에 하는 것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했고, 결국 나는 그 용기를 내지 못했다. 선배는 따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선배를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도 비슷한 실수를 하게 되었다. 상대가 같이 있는 단체방을 다른 방과 헷갈려서 험담을 하다 걸린 것인데 그때는 대면이었지만 이번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비대면으로, 그때는 한 살 선배였지만 이번엔 띠동갑 선배에게, 그때는 선배의 아버지 흉을 봤지만 이번엔 본인의 험담을 한 것이라 두 잘못 사이에 경중을 가리기 어려웠다. 잘못의 경중뿐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도 경중을 가리기 어려웠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무려 20년이나 더 살았는데! 그랬는데도 이렇게 똑같은 짓을 하고 만 것이다. 선배의 험담을 하다 걸려서 민망하고 죄송한 것은 당연하고, 20년이 지났는데도 스스로가 여전히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자괴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이번엔 지난번처럼 숨다가 사과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바로 전화를 걸어 사과드리고 용서를 구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나아진 것이 아닐까... 위안을 삼아봤지만 마음은 그리 개운하지 못했다. 선배가 괜찮다고 해주었음에도 여전히. 질책이라도 들었으면 구질구질하게 변명도 하고 그랬을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오히려 괜찮다고 하니 마음이 더 불편했던 모양이다.
운전하는 아내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네비를 제대로 보지 못해 길 안내를 잘못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내는 "정신 차려!"라며 바로 나를 질책했다. 목적지와 정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잘못 들어버린 차 속에서, 잘못을 하고 나면 질책을 듣나 안 듣나 기분은 똑같이 별로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냥 애초에 잘못을 하지 않는 것이, 적어도 그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가장 속 편한 일이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