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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Jul 12. 2022

이게 다 재택근무 때문이야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땀을 흘리고 나서는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잠깐의 명상으로 숨을 고른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살피고 난 뒤 과일과 샐러드로 아침 식사를 하고 업무 시작. 업무가 종료된 후에는 책도 한 시간 읽고 글도 한 시간 쓰고,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면서 또 한 시간을 보낸 뒤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취침. 출퇴근하는 시간이 없어지니까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그렸던 스스로의 모습이다. 실제로는? 굳이 말할 거리도 없다. 출근 준비하던 때와 똑같이 일어나야 가능한 일들이지만 근무 시작 직전까지 잠을 자기 바쁘니까. 어쩌다 일찍 깨는 날에도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거실로 나와 소파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핸드폰을 좀 보다가, 딱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으면 무기력하게 책상 앞으로 가서 컴퓨터를 켠다.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뭐. 일이나 하자.’라면서.     


“일이나 하자”니, 세상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재택근무를 하기 전의 나는 지금보다 시간을 더 알차게 썼던 것 같다. 출근을 해야 하니 일찍 일어나야 했고, 그만큼 정신도 빨리 차려야 했다. 아주 가끔은 새벽에서 아침으로 바뀔 무렵에 회사에 도착해서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자기의 근무시간을 자기가 조정할 수 있던 때도 아니니까 이 모든 것들이 다 출근 시간인 9시 전에 이뤄져야만 했다. 퇴근 후에도 지금보다 약속도 많았고 더 알차게 보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리 무기력하게 일만 하며 지내게 된 걸까. 어째서인지 나는 이 모든 문제가 재택근무와 자율 근무제, 그리고 초과수당을 착실히 지급해주는 시스템 때문인 것만 같다.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야근을 하면 돈을 주는 게 문제라고?

  세상에 x 2


 생각해보면 나 같은 사람을 부려먹기에는 정말 최고의 시스템이다. 천성이 쫄보여서 땡땡이도 치지 못하고, 무엇보다 일이 많아 땡땡이를 칠 여유가 없다. 일이란 것은 하려고 하면 언제나 쌓여 있으므로 – 할 일을 다 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 적당히 하고 적당히 끊는 방법뿐인데 퇴근하고 나서 딱히 뭔가를 할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말 그대로 ‘그냥’ 일이나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무엇보다 에전에는 야근을 하건 주말 근무를 하건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가 다였는데,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모두 시스템으로 관리하게 되면서 시간 단위로 초과근무 수당이 착실하게 지급되니 야근에 대한 거부감도 훨씬 줄어들었다. “일은 항상 많고, 일을 하면 어쨌든 돈을 벌고, 어차피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까 그냥, 일이나 하자.”가 되는 것이다.

     

 사무실로 출근을 하면 어쨌든 집에는 돌아가야 하므로, 그리고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오래 있고 싶지 않으므로 어느 정도가 되면 일을 끊게 된다. 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가야지. 옆에서 누가 “맥주라도 한잔 하고 갈까?”라고 하면 결심의 시간은 조금 더 빨라진다. 오늘의 일을 내일의 내게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 근무를 하면 어디 갈 일도 없으니 하염없이, 누가 불러내는 사람도 없으니 또 하염없이 책상 앞에만 앉아있게 된다. 학생일 때 이 정도로 책상 앞에 앉아있었으면 어디 훨씬 더 좋은 학교에 갔겠다 싶을 정도다.

     

 재택근무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업무공간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간이 명확히 나뉘지 않으니 일과 삶의 밸런스도 함께 무너지기 쉽다. 하루는 거의 열두 시간 넘게 같은 자리에서 근무를 하는데 문득 공허함이 밀려왔다. 모니터 너머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분명 파랬는데 노을이 지고, 결국 밤이 되었는데도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모니터만 보고 있구나. “돈이고 뭐고 워라밸이 최고야!”를 부르짖던 나는 어디로 가고 스스로 그 밸런스를 이렇게나 무너뜨리고 있었구나. 이게 다 뭐라고. 보통 때 같으면 쓰던 메일은 마무리 짓고 업무를 종료했겠지만, 그날은 왠지 화가 나서 마무리도 하지 않고 컴퓨터를 종료해 버렸다.

     

 눈앞에 바로 떨어지는 보상, 외부 방해요인 없는 평온함. 이것들이 겹치면 나같이 의지 약한 자들은 자신을 위한 목표를 세우는 법을 잊는 모양이다. 눈을 뜨면 일을 하고, 일을 하다가 지치면 잠을 자고, 그 중간중간 밥 먹고 TV 보는 정도. 나를 채우는 일을 한 것이 언제던가. 계좌 잔고라도 채워서 다행인가.

    

 내가 요즘 이렇게 무기력한 이유를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아니, 사실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꼭꼭 숨기고 살았는데, 마침내 핑곗거리를 찾아내고 말았다. 그래, 이게 다 재택근무랑 초과수당 지급 때문이야.     


- 그럼 예전처럼 매일 출근하고 초과수당도 안 나오던 때로 돌아갈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핑계 대지 말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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