悢解 [ 슬플 랑, 풀 해 ]
나는 책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책을 즐겨 읽지는 않았는데 난 스스로 그 사실을 부끄러워했고, 내가 겉 멋이 든 여유로운 인간 군상처럼 보이고 싶은 것이라 오해했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도 랑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그 오해가 정말 '오해'가 맞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사히.
책은 아름답고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담는다. 수많은 목소리를 담는다. 한 권의 책이 한 가지의 이야기만 담을 수 있기만 하지도, 한 단어가 하나의 의미를 품을 수 있기만 하지도 않다.
난 또 나의 이야기를 믿는다.
우리 일상들 사이에 켜켜이 끼워진 낱말들은 힘이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라 했고 아끼는 존재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고 싶어 했다.
대견하게도 몇 차례 꽤나 괜찮은 글과 그림으로 보는 이에게 소소한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어릴 때 나의 집 벽장엔 엄마의 책과 나와 동생을 위한 책이 가득히 차 있다 못해 시간이 감에 따라 더욱 늘어났다. 그 안엔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진실된 아이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진심이, 소원이 담겨있었으리라. 나의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책들은 늘 그 나와 우리를 기다리며 그 자리에 있었으며, 언제 펼쳐도 늘 그 사랑과 진심을, 세상을 이길 지혜를, 하루를 살아낼 힘을, 사랑에 대한 책임을 알려줄 준비가 되어있었으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결국 기어코 나는 책을 지어 올리기 시작했다. 종종 그 안에 글을 읽으며 자주 책의 겉과 속을 들여다보며 남겨진 이야기의 작은 흔적이라도 놓칠세라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때의 기억이 나를 살아가게 하고 나를 꿈꾸게 하는 처음 시작점이 되어준다.
사랑으로 신뢰로 책임으로 나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아껴주고 싶은 난 내가 고른 방식대로 그 가치를 쫓아 우리를 지켜갈 것이다.
정말 난, 난독증 비스무레 한 것으로 두 행이 넘어가는 문장들을 이해하기도 버거워하는 사람이면서도, 정말이지 책이라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래도 이따금씩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훔치고 싶은 충동이 울컥울컥 숨 쉬었다. 그때마다 나 자신이 읽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 말해주는 소리들이 문장의 끄트머리를 붙잡아주었다. 운이 좋았다.
책이 나에게 주는 경험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마치 다신 맛볼 수 없음에 그리워지면서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주었음에 고마워지는 - 기억 속에 남은 어린 시절 동네 음식점의 만두같이 맛있고, 그립고, 벅차오르는 맛 - 같았다.
이야기와 향기를 담은 책은 늘 그 자리에 있고 몇 번을 건드려서 말을 걸어도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인데, 누가 언제 왜 그 문장 앞에 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그런 역할을 하는 매체로써의 책을 너무 사랑한다.
책을 만드는 일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할 줄은 몰랐다. 랑해는 앞으로 이야기를 담는 책을 만들어 나갈 것이고 이 시간이 그 여정의 출발선이 된다.
그러나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서툴고 엉성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여정을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