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 다시 읽기> 옛 신문 속 비행접시에 관한 이야기
우울할 때는 가끔 하늘을 본다. 하늘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다. 태양, 구름, 날아다니는 새, 항공기 등등 불변하는 것과 자유로운 물체가 공존한다. 그런데 가끔 놀랍도록 자유로운 것이 목격되기도 한다. 미확인 비행물체,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가 그것이다. 그 정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사실 물체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을 포함해서 최근에는 미확인 공중 현상, UAP(Unidentified Aerial Phenomena) 용어를 쓰기도 한다.
사진 속 물체가 UFO든 UAP든 '저게 뭘까?' 하는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진보했다는 2020년대가 되었어도 말이다. 필자는 이 궁금증을 반대로 돌려보았다.
옛날에는 UFO/UAP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글은 바로 위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현상을 대하는 태도가 현재와 어떻게 다를까? 어디서 관련 정보를 얻었을까? 무섭다고 생각했을까? 다양한 꼬리 질문이 나왔다. 기대감과 궁금증을 안고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로 들어가니 꽤 많은 양의 관련 기사가 쏟아졌고, 기사 하나하나가 걸작(?)이었다. 그리고 기사가 작성된 배경을 고려하면서 UFO 이야기에도 시대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 이 걸작들을 시간 순서대로 해제를 시작한다.
한국 신문에서 발견되는 UFO에 관한 언급은 1950년 4월 8일 조선일보 기사 <비행접시 3제>에서 시작한다.
최근 세계의 화제로 되어있는 비행접시의 뉴스 3가지
1. 윈나(오스트리아 빈)의 자동차 운전수도 상공을 급속도로 비행접시가 날르는 것을 발견하였다는데, 그 색채는 홍색이며 구름과 구름 사이를 기체의 약 3배나 되는 비행운을 남기면서 날아갔다.
2. 리스본에서도 발견했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3. 브라질의 상인 2명은 비행접시를 구하고 있는 사람에 실물을 10만 달러에 매도한다는 계약을 하였는데, 기일이 지나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사기 혐의로 체포되어 취조를 받고 있다 한다.
이 기사는 해외에서 비행접시와 관련된 일화 세 가지를 소개한 BBC의 보도를 인용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도 미확인 비행 물체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긴다. 일제강점기 1920년부터 1940년까지 신문이 발행되었음에도 관련 언급이 왜 없었을까. 일제강점기에는 이러한 현상에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기사가 가십(Gossip)으로 분류된 점을 미루어 보아 이전까지는 아예 관심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라고 하지만, 비행접시 이야기는 매우 큰 궁금증을 남긴 것 같다. 며칠 후 4월 13일에 조선일보는 <비행접시의 정체>라는 가십 기사를 통해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기사에서는 미국의 한 평론가의 말을 빌렸는데, 그 정체를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라디오 평론가 헨리 케라 씨는 10일 소위 비행접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설을 방송했다. 미국에는 기묘한 모양의 항공기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는 플라스틱제의 우주선 측정용 기구가 있다. (중략) 이러한 과학용 측정기구가 항간에서 화젯거리가 된 비행접시다.
기사를 보도한 당시인 1950년에는 관련 정보가 없었으므로 미국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웬만한 정보를 알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읽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만하다. 물론 이 당시 사람들도 이러한 미국의 엉터리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1951년 2월, 미 해군 우주선 조사위원회가 비행접시를 연구한 결과를 내놓았다. 조선일보는 2월 15일 <비행접시의 정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내용을 소개했다. 이제는 가십 기사가 아니라 무려 1면으로 이동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미 해군이 밝힌 비행접시의 정체는 위의 라디오 평론가가 한 말과 일치했는데, 여기에 한 가지 충격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해군 핵 시험소 원자기분국장인 어너리 돌 박사는 비행접시가 초고공에서 우주선을 조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합성수지 기구였다고 발표하였다. (중략) 그런데 이 기구는 이 계획이 원자력 연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극비에 부치고 있었다.
우주선 측정 기구도 모자라 이제는 원자력 연구와 관련이 있다는 충격적인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이러한 미 해군의 설명은 의문을 더 확대시켰고,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당시 원자력 연구는 곧 핵폭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1945년 8월 일본에서 벌어진 광경을 목격한 것은 물론이고, 1951년 당시 한국은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1952년 8월에는 이러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8월 5일, 미군 신문 기자 피츠제럴드 상사가 서울 상공에서 5개의 비행접시를 목격했다고 진술했으나, 공군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며칠 후인 11일, 조선일보는 <비행접시가 소련제?>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당시 노르웨이 공군이 비행접시 하나를 노획했는데, 여기에 소련 마크가 붙은 우라늄 핵의 원자 폭발기가 탑재되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진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기사로 인해 전쟁 중인 한반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핵폭탄 비행접시'로 인해 더 큰 혼란에 휩싸였다.
이후 17일, 동아일보는 1952년의 비행접시 논란에 대한 논설을 상/하편으로 나누어 두 차례 연재했다. 특히 상편의 논설은 매우 날카로운 단어 선택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분석했다.
세기말적인 신경과민증과 전쟁적 공포권에서 호흡하고 사는 이 시대는 분명히 정신 교란의 세대라 하겠다. (중략) 지금 때가 때인 만큼 그것이 자연현상의 일종이 아니라 인위적인 어떤 현상, 즉 특수무기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또한 이 글은 비행접시를 '실존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신기루의 일종'이라고 주장한 하버드대 천체물리학과 멘젤 교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논설위원은 비행접시가 지구상의 빛이 움직여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 멘젤 교수를 소피스트, 즉 궤변론자로 치부했다. 여기에 "그가 연구한 시간이 아깝다고 하겠다."라며 매우 고급스러운 필력으로 전문가의 주장을 일축했다.
1952년 한 차례의 소동 이후에 비행접시에 관한 이야기는 수그러들었는데, 이후 1954년에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다시 출현했다. 다음은 1954년 8월 29일 조선일보 기사 <비행접시와 조종사를 봤다>의 일부다.
비행접시를 가까이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조종사까지 만났다는 그 여자들의 말을 게재했다. (중략) “언니와 함께 딸기를 따고 있을 때 갑자기 검은 살빛의 머리가 긴 사나이가 숲 속에서 뛰어나왔다. 빛은 검으나 보통 사람과 흡사했다. (중략) 불란서어와 독일어, 노르웨이어를 써서 그에게 말을 걸었으나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는 종이조각에 그림을 그려서 의사를 표시하려고 애썼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15피트 떨어진 곳에 있는 그의 승용기에 우리를 데려갔는데, 그 비행기는 깊고 큰 접시를 겹쳐 놓은 것 같았다. 이후 무섭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버렸다.
이제 나름 현대의 시각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외계인'이 등장한 것이다. 오징어(?)와 비슷한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비슷한 형상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소통을 하려고 애썼다는 등 아직까지는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존재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1956년 9월 10일에는 외계인이 인간을 공격하러 온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경향신문은 이 날 기사 <화성인의 내습 우려, 비행접시 등도 출현한다고>에서 영국의 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는 수소탄이나 원자탄을 실험하면서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영국의 비행접시 전문가 중 한 사람인 레지날드 덧타 씨에 의하면 11월 7일 오전 10시 30분 LA 상공에 비행접시가 출현할 증거를 몇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지구에 내착한 화성인들은 이질적인 것들을 멸살하려는 것이 지구인의 성격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극히 심중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 한다.
전문가가 말한 11월 7일은 공전 주기를 계산했을 때 화성과 지구가 가장 가까워지는 날이었다고 한다. 화성의 관점에서는 지구를 공략하기 가장 좋은 때이므로 화성인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전문가 집단이 가지고 있었던 나머지 증거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다. 이 와중에 지구인에 대한 화성인의 '심심한 배려'를 분석한 점도 인상적이다. 비행접시에 관한 분석 정보를 항공 강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이 독점한 탓에 발생한 해프닝이 아닌가 싶다.
특히 미국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비행접시의 정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제기하는 의문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1957년 11월 18일 조선일보는 미 공군이 발표한 10년간 비행접시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여기서도 미국은 지금까지 항간에 떠도는 추측들은 모두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1950년부터 줄기차게 주장한 '과학용 관측기구'라는 점을 내세웠고, 날아가는 야생 조류를 잘못 본 것, 심지어 불꽃놀이라고도 말했다.
이러한 미국의 주장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과 같았다. UFO 강국 영국에서는 실제로 미국이 주장한 것처럼 비행접시를 만들어 띄웠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도 않았고 갑자기 사라지지도 않았다. 또한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미 정보 당국의 주장으로 일축하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모든 주장이 믿기지 않았다.
이에 민간에서는 UFO 연구에 무려 심리학자(!)까지 뛰어들었다. 1958년 7월 31일 경향신문은 미국의 한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UFO는 실존하는 존재이며, 비행접시가 사람과 비슷한 파일럿(Pilot)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비행접시 연구에 뛰어들며 상상력이 발전하는 순간이었다.
연구를 넘어 이제는 하나님의 권위를 빌려 UFO 존재를 고증하려는 시도까지 벌어졌다. 1976년 10월 8일 조선일보 칼럼 <우주의 신비 상식의 허실>에서 이러한 내용이 확인된다.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12장에는 미카엘과 그의 사도들이 ‘하늘에 나타난 용’과 용의 종자들과 싸움하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중략) 근거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요한은 거짓말을 기록했다 말인가? 또 하나의 불가사의한 것은 공룡의 절멸 후에 돌연히 각종 유태반류의 포유동물이 출현한 것이다. 이것도 진화론의 견지로 보면 이상한 일이다. (중략) 각종 꽃과 나무가 나타나 지구는 아름다운 녹색의 낙원으로 만들어졌다. 혹시 우주인이 지구에 이주하려고 공룡을 소탕하고 정원을 꾸민 것이 아닐까?
요한계시록과 공룡 절멸 이야기. 일반인이 상상하려고 해도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글을 무려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조경철 씨가 작성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만큼 조경철 씨 역시 UFO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어 답답한 심정을 글에 녹여냈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