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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진씨 Jan 06. 2023

안경에 대한 짧은 소고(小考)

실패의 가치를 알려준 나의 선생님, 안경

안경을 쓰는 이유

안경잡이로 지낸지도 어언 14년이 흘렀다. 눈앞의 물체가 두 개가 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뒤로 쓰기 시작해 이제는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없으면 불편하고 불안하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콧대로 향한다. 중지가 아니라 다행이다. 습관이 이렇게나 무섭다.

요새는 주변에 시력교정 수술을 받은 사람이 참 많다. 의느님이 창조하신 맑은 신세계를 맛 본 그들은 필자를 볼 때마다 수술을 권한다.

얼마나 좋은 지 몰라!


이제는 ‘수술’이라는 단어만 들어면 파블로프의 개마냥 침이.. 아닌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내가 다 행복하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필자가 행복에 중독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밝은 미래를 포기하고 수술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안경을 좋아하기도 하고, 없으면 이상하다. 안경을 벗은 모습이 영 좋지 않다. 마치 경찰서 앞 유리창에 붙은 초록색 전단지에서 구경할 법한 몰골이다.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안경을 꼭 얹어야 한다.

둘째, 안과 의사와 삼성 이재용 회장 때문이다. 어느 안과를 가도 자기 각막을 깎았다는 의사 선생님을 보지 못했다. 다 안경 쓰고 계신다. ‘수술 받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그들이 왜 안 할까?’ 항상 의문이다.

이재용 회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천문학적으로 돈을 쓸어 모으는 사람이 안경을 고집하는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신뢰일 수도 있고, 무서워서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재용이 하면 해볼 의향이 있다. 삼성병원이 이 회장을 수술대에 앉혀서 홍보 사진을 찍으면 그 즉시 달려가겠다.

실패를 알려준 나의 ‘안버지’

사실 이 글의 진짜 주제는 안경을 구매하면서 느낀 교훈이다. 10년 넘게 착용하면서 여러 안경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필자를 거쳐간 친구들이 아마 10~20개일 것이다. 이 돈이면 시력 교정 시술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STUPID!

수많은 이유로 갈아치웠다. 술 쳐 마시고 잃어버리고, 너무 트렌디한 제품을 사서 얼마 못 쓰고, 헤비급 궁둥이로 깔아 뭉개고,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바꾸고.. 안경들이 참 고생 많았다. 애 많이 쓰셨다.

필자의 눈 3인방(위에서부터 린드버그, 가네코옵티컬, 모스콧)

그렇게 다들 못난 주인을 떠났고, 이제 3개만이 필자의 눈을 책임진다. 모두 가볍고, 클래식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비싼 친구들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완벽한 것이라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이 떠오른다.

한편 세 안경은 그동안 안경에 수십에서 수백만원을 태워 자행한 실패이자 동시에 이로서 얻은 교훈이다.

1.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은 고급으로 오래 써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더 가치있다. 그걸 명품이라고 하던가.

2. 트렌디한 아이템은 싼 걸 사서 짧게 쓰자. 어차피 오래 못 쓴다.​​


안경 덕분에 이제는 실패가 두렵지 않다. 오히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내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동반자다. 실패해서 더 배우고 싶다.

실패를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열리는 신세계가 시력 교정 시술로 얻는 그것보다 훨씬 더 좋다.

필자가 안경을 고집하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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