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진씨 Dec 18. 2022

명문대 학생들도 못 참는 바로 그 책!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어 보니

명상록. 철학자 냄새가 솔솔 풍기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작품이다. 하버드, 옥스퍼드, 시카고대학 등 세계의 명문대 학생이 선정한 필수 도서! 일 년에 두 번을 읽지 않으면 몸이 배긴단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가지도 못할 명문대, 만 원짜리 책 한 권으로 어깨동무라도 나란히 해보자.



작가이자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최고 전성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소위 ‘5현제 시대(Five Good Emperors)’를 이끈 5명 중 1명이다. 여기서 ‘현제’는 현명한 황제를 말한다. 보통은 지도자를 칭찬하지 않는다. 욕하기 바쁘다. 도대체 얼마나 현명했길래 황제를 칭송하는걸까. 책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진다.


명상록은 전쟁터에서 마음을 가다듬으려 쓴 일기 형식에 가깝다. 황제는 50대 후반에 노구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갔다. 지병도 있었다. 진통제 없이는 버티기 힘든 정도였다. 고통으로 온전치 않은 정신을 붙잡으려 글을 썼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자신에게 충고하는 말로 자신을 채찍질한다. 순양의 진양철 회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제는 명상 장사해야 먹고 산다!


총 12부다. 한 부는 40~50개 글을 포함한다. 한 줄짜리도 있고, 다섯문단 수준의 긴 글도 있다. 천차만별이다. 겹치는 내용도 꽤 많다.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 아니라서 그렇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노인의 굳은 의지가 돋보인다. ‘다짐은 몇 번이고 반복해야 머릿속에 각인된다’며 자신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이는 철학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600여 개 글의 주제를 굳이 나눠보려 한다. 여기서 ‘굳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 통하는 말이라서 그렇다. 아무튼, 크게 세 가지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라, 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라, 본인에게 집중하라.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모두 하나하나 곱씹을만한 글이다.


이성과 섭리(순리) 그리고 자신. 세 단어를 관통하는 것은 죽음이다. 황제는 전쟁터와 지병, 외부에 존재하는 두 고통 속에서 갇혀있다. 그 죽음의 늪 속에서 황제는 누구보다 편안한 상태다. 모든 것을 초월한듯한 모습이다.


죽음을 멸시하지 말고 환영하라. 죽음도 자연의 뜻 가운데 하나다. 왜냐하면, 죽음은 자연의 모든 과정 중 하나인 해체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담담하게 기다리는 것이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이 취해야 할 합당한 태도다. 네 아내의 태에서 아기가 나오는 순간을 기다리듯이 너의 혼이 육신이라는 이 거푸집에서 빠져나갈 때를 기다려라.
손과 발이 자기에게 정해진 일을 하는 동안, 손과 발이 느끼는 고통은 자연이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에게 정해진 일을 하는 동안, 인간이 느끼는 고통은 자연과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에 자연이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악도 아니다.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말들이다.


"초월하라! 내 마음이 아픈 이유는 직장 상사의 질책과 잔소리가 아니다. 고통의 원인은 너의 생각이다. 이성으로 뭉개버려라.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런 생각도 버려라. 판단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


독자들께 매우 송구하다. 예시 하나로 책 내용을 모두 스포해버렸다.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사실 본인에게 집중하면 스포도 잊을 수 있다. 만 원 굳었다고 생각하시길.. 어쨌든 이게 바로 ‘마르쿠스적 생각’이다. 로마 황제가 쓴 ‘고급진’ 자기계발서 느낌이다.


물론 모든 말이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주는 변화를 좋아한다는데, 순리대로 살란다. “개혁 보수”만큼 이해하기 힘들다. 변화와 순리가 양립한 덕에 황제가 세상을 떠난 후, 로마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황제가 순리대로 살았다면, 전성기는 조금이나마 수명을 연장했을지도 모른다. 오현제는 모두 양자 입적으로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과감히 변화를 택했다. 친아들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삼았다. 폭군의 대명사 네로도 양반으로 만들어버린 콤모두스. 현명한 황제의 가장 큰 실책이다. 황제가 유학을 배웠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주변부터 차근차근 정리할 줄 알아야 대의도 달성하는 법이다.


종합평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총 별점은 4/5. 정신 승리의 세계로 한층 깊이 이끌어 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향한 감사와 존경이다. 특별히 필자가 감동한 구절을 하나 소개해본다.


그 어떤 행위도 아무 목적없이 행하지 말고, 그 행위를 만들어 주는 참된 원리들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하지 말라.


무한 감동 그 자체인 이 책이지만, 만점을 주지 않았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별 한 개를 깎았다. 번역 과정에서 문장을 깔끔하게 정돈하지 않은 탓이다. 한 문장이 다섯 줄을 넘어가기도 한다. 쉽지 않다. 의지로 가득찬 황제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가독성도 문제다. 긴 문장을 읽다보면, 독자든 한 순간 집중의 궤도를 이탈한다. 통탄할 일이다. 영문 번역체가 다 그렇다지만, 독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짧게 끊었다면 어땠을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황제의 가르침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아쉬운 감정도 다 덧없다.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완독했으니, 필자는 이제 하버드대학교 학생들과 어깨동무를 나란히 해보려 한다. 독자들께서도 입학 열차에 올라타시길 기원한다. 이 글을 읽으셨으니 플랫폼까지는 도착하신 셈이다. 물론 기차가 도착하는 건 우주의 섭리이니, 초연하게 기다려보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별 거 없었던’ 금단의 땅 기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