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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Aug 30. 2024

바람 부는 언덕 위

나무 세 그루

건너온 밤바다를 뒤돌아 볼 때면 생각나는 이들은 언제나 같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

그들이 비춰준 등대와 같은 빛 덕에 나는 길을 잃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들이 내게 빛을 비추어 주기 시작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하염없이 비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먼 길을 지나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밤이고 낮이고 그들의 응원은 나를 바다 저 너머로 향하게 해 줬다. 


당신의 듬직한 아들, 마음 편한 친구, 믿음직스러운 오빠. 나는 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길을 나섰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속 검은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내가 기준인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특히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과 마주하면 극복을 핑계로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든다. 사실 나 좋자고 하는 행동인데, 그들이 기적을 맞이해 행복해할 것을 일방적으로 보고 싶어서 말이다. 이런 동기부여는 오롯이 언덕 위의 나무들로 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동은 알게 모르게 작은 구설의 불씨를 불러일으켰다. 내가 행위를 반복하면 수록 산불처럼 번진 상황진화조차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제는 겨우 꺼진 자리 한 포기도 자라나기 힘겹게 되었다. 남의 인생에 관여한다는 건 그만큼의 짐을 안고 가는 일이었다. 애초에 당신의 아들이, 오빠는 이런 것도 극복할 수 있다며 자랑하듯 뽐내고 싶었던 것이 본심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 아프게도, 나는 내가 치장하고 싶은 나무들을 베어버릴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나를 비춰주는 빛은 그들이 생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죽을 수가 없다. 이 바람 부는 언덕 너머 저 멀리 떠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언제나 이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내가 이들과 멀리 떨어질수록 이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 가끔 이들에게 찾아올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들의 언덕 아래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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