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유학생, 어윈
이 중국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두 달 전에 와이프는 한국에 있고 빈방이 하나 있어서 셰어 메이트(share mate)를 구했는데 어윈이 우리 집에 와서 살게 된 것이다. 처음 방 보러 와서 이것저것 대충 둘러보더니 깨끗하고 경치도 좋다며 흥분하며 하이톤의 큰 목소리로 바로 보증금을 보내겠다더니 그날 밤 돈을 부쳤고 곧 두 남자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중국 북쪽의 내몽골자치구 출신이고 그 지역의 대학을 졸업하고 파이낸스 (Fiance) 석사과정을 하기 위해 시드니로 유학을 온 지 3년 차이고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나이는 94년생이니 26살이고 나랑은 17년 차이가 나니 조카 벌인데 고박꼬박 나를 찰리~ 찰리~라며 친구처럼 하이톤으로 부른다.
나의 유학생활을 돌이켜 짐작컨대 호주 온 지 3년 된 유학생이면 대충 짐작 가는 바가 있다. 일단 돈 많은 집 자식들이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비싼 학비를 부모님에게 받아써야 되니 용돈까지 넉넉하기 챙기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어서 항상 돈이 없다. 그리고 영어 잘 못한다. 아무리 대학원 과정을 공부한다고 해도 학교에서야 교과서도 참조할 수 있고 선생님들이 유학생을 위해 쉽게 분명히 얘기하는 편이라서 학업을 위한 독해하고 쓰는 영어는 가능하지만 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지 않는 이상 캐주얼한 영어 친구들이랑 편안히 얘기하고 농담하는 정도가 잘 안된다.
내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항상 나를 보면 하이톤으로 찰리라고 부르며 대화를 더하고 싶어 하기고 내가 요리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슬슬 대화 중간중간 잘 못 알아들어서 여러 번 설명을 해줘야 되고 사전을 찾아가며 하다 보니 대화도 끊기고 나의 사적인 영역에 너무 가까이 온다는 생각으로 약간 피로감이 들기도 했었다. 더구나 아침부터 저녁 수영 수업까지 일하다가 녹초가 되어서 집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에게 하이톤으로 말을 걸면 짜증이 나기도 하기도 해서 점점 무시하고 거리를 두었다.
내가 덜 피곤한 날에는 같이 앉아서 술 한잔하며 가라오케로 노래도 부르고 마라탕을 끓여 먹고 한국스타일 삼겹살을 구워서 다른 문화 경험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그 녀석도 마지막 시험 준비를 한다 또 졸업사진을 찍고 또 마지막 1-2주는 코로나 백신 맞고 또 감기로 골골하다가 곧 중국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고, 출국 며칠 전부턴 마침 스쿨 홀리데이에는 블루 마운틴(Mt. Blue)이라도 한번 데리고 갈려고 했는데 시드니 락다운(Sydney Lock Down)으로 집에서만 있다가 오늘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정서적 거리를 두면 지내다가 최근에는 동네에서 드론도 띄우고 카페서 커피 마시며 진솔한 애기도 하고 좋았는데 가기 바로 전날에 일이 터져버렸다. 마지막 날이라고 깨끗이 짐 정리하고 청소를 하라고 했더니 최선을 다했다고 한 것이 변기에 가 녀석 똥이 그대로 묻은 채로 있었다. 변기솔 손잡이가 부러져 짧아서 할 수가 없었다고 변명을 하는 녀석 앞에서 짧은 솔로 몇 번 슥슥 문질러 변기 청소를 하고 브러시를 던져버렸다. 니 똥은 네가 치워라면서 소리를 질렀다.
부화가 치밀었다. 얼마 전에는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보통 이사 나가는 날 파손된 것은 없는지 열쇠는 제대로 반납되었는지를 확인하고 돌려주는 보증금을 전액 돌려줬다. 중국 가는 애가 호주 돈 가는 날 받으면 뭐할 거며 미리 그 돈으로 부모님 선물이라도 사가라고 배려를 해준 것이다. 또 마지막 방세는 자기 맘대로 일주일이 아니라 3일 치만 입금을 했는데 그것도 5일이 아니라 뭔 생각으로 3일인지 그것도 그냥 아무 말 없이 내버려 두었다. 그 당시 읽던 100년 뒤에는 우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라는 책을 읽은 후유증으로 사소한 일은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고 나도 돈 없을 때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나 싶어서 친절을 베풀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친절을 베풀어야겠다. 그리고 어제 훈계하듯 꾸짖은 것도 맘에 걸리긴 하다. 내가 괜히 누구 앞에 꼰대가 되고 싶지도 않고 상대방을 지적하며 불편한 상황을 구태어 만들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난 속 시원히 내뱉어 버렸고 내가 유학생 때 그랬듯이 어윈은 영어가 짧아서인지 고개를 힘 없이 끄덕이며 듣고 있기만 했었다. 유학시절 이방인으로 원주민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예스하며 받아들이고 나의 불만을 속을 삼켜야 했던 또 억울할 때는 영어도 목구멍에 걸려서 나오지 않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침에 어윈이 집을 나갈 때는 난 일하러 나가고 집에 없었기에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제의 분풀이로 귀중품이라도 가지고 간 것은 아닌지 열쇠는 제대로 두고 갔는지 미리 보증금을 내준 것을 후회하면서 집에 와서 확인할 때까지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었다.
텅 빈 방을 보니 그 녀석이 그래도 좋은 애였는데 싶기도 하고 며칠을 설사하며 고생하던데 잘 가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다. 애쉬필드(Ashfield)에 있는 북경오리 전문점에 데려가서 없는 유학생이 120불을 계산하던 그 녀석인데, 또 자기 고향에 귀한 술이 있는데 꼭 나한테 보내주겠다고 하던 약속을 지킬런지. 이 글에 힘이 있다면 발전하고 있는 중국에 헌신하고 싶다던 젊은 중국 청년 어윈의 앞날이 찬란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