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존중하는 향기로운 인생
지연 씨
주말 부산에서 지연의 가족들도 만나고 또 부산의 이우환 공간과 이중섭 특별전을 보게 되어 또 즐거웠어.
2주 전엔 내 생일이어서 울산바위가 보이는 호텔서 권금성에서 설악의 웅장함을 느낄 수가 있어서 너무 좋았었고 야간 온천도 아주 잊을 수가 없고...
이렇게 지연과 함께 하는 시간들은 행복하고 즐겁고 또 앞으로 함께 헤쳐갈 인생길이 기대가 돼.
내일이면 난 다시 4년 반 만에 호주로 돌아가서 일하면서 우리의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준비해보겠어.
만나고 연애하고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더욱 서로를 사랑하며 존중하는 향기로운 인생이 되도록 항상 나의 곁에 있어주오
2016년 11월 8일 출국 하루 전
최근 한국에서 부인(이 엽서의 수신자) 지연이 아파트 짐을 정리하면서 엽서를 발견하고 5년이 지나도 나의 맘이 변함없는지 물어본다. 그래서 그때의 맘과 지금의 나의 맘을 비교해 보고자 아이폰의 5년 전 사진을 뒤적여보며 생각해본다. 우리가 만난 지도 5년 되었다는 것은 못 느끼겠는데 사진 속에 모습을 보니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7월에 나는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 운영하던 것을 정리(폐업이 아니라 휴무라고 하자)하고 호주로 갈 작정이었고 한국을 제대로 느껴보자는 생각에 <K 컬처 가이드 교육과정>이라는 교육을 빙자해 제대로 놀 수 있을 것 같아서 5주 정도 연남동에서 지내게 되었다. 교육의 목적이 한류의 바람을 타고 온 관광객들에게 철 지난 여행안내서의 장소가 아니라 홍대, 북촌, 청계천 등 트렌디한 서울을 알리자는 것이라 자연스럽게 맛집, 데이트 코스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특히 연남동, 종로 5가, 인사동, 삼청동의 재발견은 큰 수확이다.
나도 모르게 자꾸 한 여자에게 눈이 따라간다. 의식은 동공만 움직이려 했으나 무의식이 주책없이 허리 꼬아 목까지 회전시키며 시선을 그녀에게 머무르게 한다. 하지만 같은 팀도 아니고 쌀쌀맞은 서울 여자처럼 보여서 말 몇 마디 안 하고 교육이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교육이 진행될수록 프로그램 진행 업체, 강사 그리고 교육생들 간에 분쟁이 생기고 교육생들 중에서도 강사 편과 반대 편으로 갈라져서 신경전을 펼치게 되었다.
나야 한국에 있을 사람도 아니고 놀다가 호주로 가면 된다는 생각에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반대파의 중심에 있었다. 여하튼 지연 씨도 같은 편이라 우리는 공동의 적들을 향해 험담을 하며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뒷담화 하던중에 펜션을 하는 동생이 초대해서 밤 늦게 까지 술도 한잔하고 나중엔 단둘이 커피 마시고 양꼬치에 칭다오 마시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나는 교육이 끝나면 베트남 10일 정도 비즈니스 통역 겸 여행을 갔다가 호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어느덧 재미있게 5주가 끝나고 수료식 날 다 같이 점심을 먹고 울산 집으로 내려오려고 일찍 헤어졌다. 터미널로 가다가 아무래도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 생각하니 많이 아쉬웠다. 발길을 돌려 다시 지연씨와 험담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나의 맘을 살짝 전했다.
"베트남 다녀오면 울산으로 한번 오라."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인연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지연 씨가 울산에 왔고 이것으로 그녀의 맘도 확인하게 되어 그때부터 내가 호주로 출국하기 전까지 적그적으로 서로를 알아가기로 했다.
경주도 갔다. 오토바이에 지연 씨를 태우고 비를 맞으며 대릉원과 첨성대를 달렸다. 추위에 떨며 한옥의 사랑방에 앉아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니 몸도 풀리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뭔가 슬슬 풀려가는듯했다. 제주도 골프장에서 풍등도 날리고 산방산도 갔다. 그리고 내 생일에는 설악산에 가서 권금성도 올라가고 밤에 온천도 하였다.
그리고 이 엽서를 남기도 난 호주로 들어왔고 지연도 두 달 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러 시드니로 따라왔다. 한창 뜨거운 여름이라 바다에 가서 수영도 하고 오페라 하우스도 가고 나의 시드니 친구들과도 인사하였다. 그리고 나는 시드니에 지연은 한국으로 돌아간후 우린 결혼을 약속하였다.
몇 달 후 봄이 되어서 내가 한국에 나와서 울산 가족과 산청의 가족이 만나서 큰 가족이 되었다. 결혼식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5월에는 혼인신고(기억하자. 5월 2일)하고 나 먼저 호주로 돌아왔다. 또 몇 달 뒤 지연도 시드니로 와서 검은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같이 살기로 하였다.
그 사이에 지연은 영어학교서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영주권도 받았다. 또 시드니에서 캐언즈까지 왕복 6,000킬로, 멜버른 왕복 2,000킬로 로드트립도 했고 조카들, 처갓집 조카와 형님도 다녀갔다. 한국도 두어번 다녀갔고 신혼여행을 핑계삼아 스페인, 프랑스, 아탈리아도 다녀왔다.
작년 2월에 같이 한국 갔다가 난 한 달 만에 돌아오고, 지연이는 코로나로 지연되고 처리할 일들이 있어 1년 반 만에 다음 달에 돌아온다. 우리 만난 지 5년이 되었고 결혼한 지는 4년인데, 코로나로 1년 반을 떨여저 있었으니 실제로 같이 지낸 거는 2년정도이다.
시드니에 도착해서 2주 호텔격리후 8월 다시 만나면 다시 신혼이 시작된다. 2016년 그때보다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깊어졌고 함께 한 추억도 많아졌다. 그리고 주책없이 그녀만 보던 5년 전의 맘이 변하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