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라
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시드니에 구름도 낮아서 음산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였다. 갑자기 지인들이 전화가 오고 통화하는 사이에 카톡에는 몇십 개의 글이 기다리고 있다. 설마, 뭔가 착오가 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믿기지도 않는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사장님이 돌아가셨다. 이제 57세밖에 안되고 골프, 축구 운동도 잘하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분이다. 락다운(Lockdown) 전에 만나서 관광업계가 특히 힘든 시기이지만 각자 살아남아서 좋은 날이 오면 누구보다 더 잘할수 있다고 자신하던 리더이셨다. 항상 유머로 따뜻했으며 정확한 입금으로 신뢰할 수 있었다.
멜버른 자택에서 심정지로 갑자기 돌아가신 거라 시드니, 골드코스트, 오클랜드, 서울에 있는 직원들은 황망하여 울음으로 며칠을 보냈고 이제 네이버에 온라인 추모공간을 만들어 그분을 기억하며 서서히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지나가셨던 곳마다 향기로운 인품이 남아서인지 그리워하고 고마워하는 분들의 글들이 빼곡히 쌓여갔다.
며칠이 지나자 리더를 잃어버린 슬픔과 나의 밥벌이의 걱정이 겹치기 시작한다.
2021년 4월 2일 한국 뉴스를 통해 채현국 이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배는 대통령도 추모할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셨지만 그의 삶은 검소하고 정직한 청년이셨다.
처음 채현국 이사장님을 뵌 것이 2015년 봄, 내가 호주 10년 생활을 잠시 접고 양산으로 가서 <주식회사 미스터 채>라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동네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학생들에게 영어수업을 하다가 개운중학교, 효암 고등학교와 인연이 닿았다.
박종현 교장선생님이 호주에서 온 젊은 사업가가 고향에 와서 좋은 일한다고 나를 이쁘게 봐주셨다. 그래서 이사장님을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개운중학교를 방문했다. 교장실에서 이사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침에 운동장에서 쓰레기 줍고 있던 할아버지가 딱 내 앞에 앉는 게 아닌가? "어 저 할아버지가 이사장?"
차 한잔 하고 이사장님이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밖으로 나가잔다. 으레 검은색 각 잡힌 차를 기사가 몰고 오겠거니 했는데 걸어가면 된다고 한다. 얼마나 비싼 거를 사주실까 기대하고 있는데 학교 정문 앞에 <개운분식>으로 들어간다. 이 집 너무 맛있다고 주인아줌마 대신 홍보를 하시고 킵해둔 도라지주를 한잔 하고 왔다.
내가 다시 한국 돌아가면 이사장님 후원하에 교장선생님이랑 지리산에 약초학교도 만들고 영어교육도 하려 했는데 이사장님은 올해 교장선생님은 더 일찍 작년에 돌아가셨다.
박종현 교장선생님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교직을 하셨지만 전교조 활동을 가열차게 하셨다. 낙동강 이남에서는 <양산박>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참 교육을 위한 싸움꾼이셨나 보다. 해직이 되고 효암 학교의 채현국 이사장님과 연이 닿아 개운중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하시게 되었다.
나는 개운중학교에서 1년 동안 영어수업도 하고, 일본의 조선적 학교 학생들 수학여행 왔을 때는 우리 집에서 학생들 홈스테이도 시켜줬고, 교장선생님이 앞치마 메고 고기 굽고 선생님들과 술도 마시고 했다. 또 개운중학교, 효암고등학교 학생들과 방학 때 영어 특별수업도 하고 벽화도 그리고 컨테이너 도서관을 아프리카에 보내기도 했다.
내가 3년 전에 호주에서 한국 놀러 갔을 때 고덕우 도자기를 선물로 주셨다. 그때만 해도 제주도에서 한 달 동안 보양하고 공항에 내려서 바로 나를 만나러 울산으로 오셨더랬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고덕우 도자기를 만지며 돌아가신 선생님을 기억한다.
지난 일 년 동안 내가 좋아하는 분이 많이 돌아가셨다.
아버지
박종현 교장선생님
채현국 이사장님
친구 재우 아버지
그리고 곽용민 사장님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기억한다.
밝게 빛났던 순간을 말이다.
죽음을 기록하고 죽은 자를 기억한다.
오늘 밤에도 슬픔에 젖은 별들이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