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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인 Oct 22. 2023

열두 살

- 김연심 씨 생애에 부쳐




by양경인Oct 28. 2022


                 열두 살                                                   



그때 나는 열두 살,

열다섯 만 되었다면

덜 무서울 텐데

아아, 그때 나는 열두 살



‘동박 굴 트멍’*으로

어멍 시체 찾으러 갈 때

가마니 짚에 말아

얼기설기 토롱**해서

남의 밭에 묻고


불타는 집

고팡(광) 가득한 곡식 보며

저건 꺼내서 무엇하나

어멍도 죽고

나도 오늘 낼 죽을 목숨

빈 집 무서워

외숙모 집 구석방에

밥 먹을 때면

어멍 숟가락, 언니 숟가락 걸쳐놓고

밥숟가락 놀리다가

아이고, 우리 도새기(돼지) 굶겠구나

통시***로 달려가면

꿀꿀꿀 반기며 엉겨오는 도새기

너는 어떵(어떻게) 살래?

나는 어떵 살코?

도새기랑 말하면 덜 외로워

빈집도 빈 마당도

덜 무서워



바다같이 넓은 밭

목청 좋은 어머니

보리 검질 맬 때면

남보다 앞서 나가

어랑어랑 사대 소리

보리타작 끝나면

외삼촌들 부르는

얼럴러 좁씨 밟는 소리

물 좋은 도두리

얼음 같은 물

대바지 허벅에 길어와

마당에 보리낭 넉넉히 깔고

톳 냉국에 보리밥 펼쳐 놓으면

아이구 착허다 내 딸 착허다

어머니 칭찬 소리

팔십 년 사는 밑천이 되어



세상천지 다 돌면서 봐도

나만큼 전생궃은 이 있을까

좋은 전생 가리던 날에

어머닌 어디 갔다 왔나요

어멍에게 날 가라고 하면

가시덤불도 맨발로 새 날듯 가련만



어멍, 나 시집 못 살쿠다게(못 살겠어요)

아기 업고 혼잣말하면

어디선가 어머니 음성

‘설운**** 내 작은 년아....’

밑에서 샘이 올라오듯

탁탁 의견이 올라오고

귀인을 보내주고

열두 해 부모 인연

여든두 해, 오늘까지 살아뵈고



그때 나는 열두 살

열다섯 만 되었으면

어멍 가는 길 고운 옷 입게 하고

삼촌들 성가시게 안 하고

집 탈 때 세간도 꺼내고

물 그리듯 그리운 어머니 옷가지

삼단 같은 머리채 담은 고리짝

타는 집 뛰어들어

바리바리 꺼냈을 걸



무자년 추운 겨울

1948년 음력 12월

그때 나는 열두 살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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