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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인 Oct 25. 2023

어머니 간병일지-1

-사진; 비오는 친정집 뜰

 " 이제는 무서워 혼자 잘 수 없으니 일주일 씩 당번 정해 나를 지켜주라"라고 했을 때 우린 저으기 놀랐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단호히 부탁한 것은 내 기억으로 처음이었으니까. 병원 오르막이 힘들어 쓰러질 지경이 돼도 어머니는 아들이나 사위에게 데려다 달라는 말을 먼저 한 적이 없다.  외지에 사는 내가 어머니 집에 머물다 공항 갈 때도 위층 사는 남동생 알기 전에 조용히 택시 타고 가라고 한다. 그 누구라도 서로 부담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937년생 어머니(김연심)가 86년 동안 받아 본 밥상은 얼마 안 되지만 차린 밥상은 누구 못지않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이웃 친지들은 물론 수시로 찾아드는 손님들에게 숟가락 들기를 권하는 걸 예사로 보면서 자랐다. 기껏해야 고등어자반이 고작인 조촐한 밥상에 손님 수만큼 숟가락을 얹어놓았던 어머니를 보며 자란 우리들도 경쟁하듯 집에 들른 손님을 빈 속으로 보내는 일은 편치 않다. 어머니와 한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조카는 생면부지 낯선 사람에게도 밥 먹고 가시라고 붙들어 올케를 난감하게 했다고. 웃었다.

 사랑은 받는 만큼 주는 것이라고,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나눌 줄 모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훌쩍 뛰어넘는 자리에 어머니는 계셨다. 12살에 고아가 되어 남의 집 밥 먹으며 10대를 보낼 때 부모대신 무한한 사랑을 보내준 것은 이모다. 어머니와 6살 차이가 나는 이모는 4.3이 나기 전에 서둘러 미군정 통역 경찰에게 시집을 갔다. 외할머니가 서두른 일이다.

" 금승(1살 된 망아지) 말갈기가 왼쪽으로 갈지, 노단짝(오른쪽)으로 갈지..."

  말갈기는 노단짝으로 치우쳐 외가식구는 몰살되었지만 경찰에게 시집간 이모는 살아남았다. '발치 높은' 사돈집이 망하자 이모 시집에서는 이모를 멸시했고 이모부 첩을 들여 밥상을 차리게 했다. 이때쯤 어머니는 제주시 큰집에서의 더부살이 생활을 접고 부산 영도 국제시장에서 일할 때였다. 어느 날 이모가 배 타고 어머니를 찾아왔다. 이혼하고 싶다고. 그러나 정작 이모의 마음을 잡게 한 것은 어머니 존재였다.

" 걷다가도 이 동생(어머니)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내가 낳은 자식 보다 동생 생각 하는 것이 죽지 못하더라"

그 친정 부모 같던 이모도 몇 년 전 저 세상으로 가고 어머니는 하루도 그립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한다. 장사하느라 동생에게 부모 제사를 맡기고 며칠에 걸쳐 제숫감을 바리바리 해 오시던 이모. 어머니가 이룬 27명의 가족을 합쳐도 못 미칠  어머니와 이모의 자매애를 보며 우린 자랐다. 이제 텃밭의 먹거리를 공수해 오는 것은 사촌오빠(이모의 아들)다. 고사리 육개장을 해오고 새벽이슬이 달려있는 싱싱한 야채를 내놓는다.    

사촌오빠가 새벽에 가져 온 어린나물과 깻잎


 나는 어머니께 밥상 한 번 제대로 차려본 기억이 없다. 마음이 허할 때마다 찾아가 보신했던 기억뿐이다. 내 딸은 외할머니집을 생각할 때면 현관에 꽉 찬 신발과 부엌에서 끊임없는 요리하는 굽은 등이 우선 떠오르는데, 외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제 어머니는 여동생보다 먼저 퇴직한 사위의 밥상을 받고 계시다. 정년퇴직 후 사위가 요리학원을 다니며 배운 솜씨를 발휘하여 장모님 밥을 차려드리는 것이다.

" 내가 시아버지 간병을 위해 8년 헌신했는데 남편도 이제 그만큼 해야지"

 아직 현직인 동생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직이 읊조린다.

" 이제만이(지금) 나 죽으면 못 죽었다고 할 사람 한 명도 어실 거야(없을 거야)"


요리학원에서 배운 셋째 사위의 짜장면 레시피

 

 제부의 짜장면 맛에 반한 것은 어머니보다 조카들, 식단 메뉴가 짜여지면 조카들이 더 관심갖는다. 한창 절음을 구가하느라 바쁜 손주들이 수시로 할머니 집을 들락거리는 친정집. 어머니께 이보다 더한 선물이 있을까. 





양경인작가 에세이스트


      제주가 고향으로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했고, 제주여성사, 미술 에세이를 씁니다. 4.3 평화문학상 수상. 저서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 4.3과 여성"시리즈(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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