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by 양경인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
파보나마나 하얀감자

감자밭

산책길에 만난 감꽃

집 근처 논길을 걸으며 감자밭을 지나려니 감자꽃이 나를 살살 유혹했다
특히 자주빛 감자꽃이 ~
어릴 적 이 시를 읽을 때는 자주감자를 본 일이 없어 거짓말이라 생각했드랬다
오늘에야 권태웅 시인이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했다
농부께서 왈,
자주감자는 쪄먹기는 좋으나 반찬은 맛이 안된다고 ~

하얀감자꽃



자주감자꽃


황석영의 아름다운 소설 “오래된 정원”에는 시국사건으로 도피한 주인공이 애인 방에 누워서 봄비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읊조린 시는,


봄비가 내린다
그러나 감자밭을 적시기에는
아직 멀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런 시였다.

<감자 바구니> , 1884, 45*60.5, 반 고흐 미술관

문득 고흐의 감자바구니가 생각났다.

목사의 꿈은 좌절되고 탄광촌 전도사도 재임용에 탈락한 후 고흐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 누에넨에서 농부들의 삶과 초상을 많이 그렸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보면 특히 농부들의 손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감자먹는 사람들>은 고흐의 의도대로 우리가 일용하는 양식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밀레 그림을 수없이 모사한 고흐는 이 그림으로 밀레를 넘어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 시대 감자는 하층민들의 식량이었다.


<감자먹는 사람들>, 1884, 82*114, 반고흐 미술관


제주에서는 감자를 '지슬'이라고 한다. 지실, 땅의 열매라는 뜻인데 중세어인지 모르겠다. 고구마는 '감저'라고 한 걸 보면. 어릴 때 감자껍질은 놋숟가락으로 박박 긁어서 쪘다. 왜 그렇게 맛나던지.

. 제주4.3항쟁 때도 '지슬'은 이웃과 섭섭찮게 나눠먹던 음식이었다. 당시 제주사람들은 토벌대를 피해 굴 속에 숨어서 누가 집에서 한 부대 가져오면 구워 하나씩 고루 먹으며 험난한 시기를 숨죽여 살았다. 그들 중 산 사람보다는 죽은 이들이 훨씬 많았다.

이 <지슬> 영화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오멸 감독이 선텐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제주4.3항쟁의 엄혹한 겨울이 영상미학적으로도 빛났던 작품이다.


늦은 오후 산책길에서 만난 감자꽃을 보며 제주에서 살 때, 화북마을 시아주버님 댁 제사집을 다녀오는 길에 보았던 하얀감자꽃이 떠올랐다. 주변은 자정을 넘긴 칠흙 밤인데 검은 밭담이 에둘러진 안에서 하얀 꽃무더기가 달빛아래 등불처럼 화~안 했다. 파보나마나 하얀감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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