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따라비 오름

- 사진 김수오

by 양경인

따라비오름은 20년 전, 내가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 오른 오름이다. 오름은 제주도 한라산이 폭발할 때 생긴 기생화산을 말한다. 고대 제주사람들은 오름의 탄생을 상상력으로 구전하였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얘기는 화자의 취향에 따라 여러 버전으로 나타난다. 일반화된 버전 하나를 소개한다.


설문대할망이 망망한 바다 가운데 섬만 달랑 만들어 놓으니 심심해서 치마에 흙을 담아 한라산을 만들었다. 치마폭에 흙을 담아 한라산을 쌓던 중 낡은 무명치마가 해어져 구멍으로 흙이 흘러내렸다. 그 흙이 한라산을 둘러싼 360여 개의 오름이 되었다.


제주에서도 특히 이 구좌읍 일대는 오름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오름의 왕국’으로 불린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 62번지, 남영목장의 광활한 목초지 억새 벌판을 세 개나 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던 곳. 조선시대에는 갑마장이 있어 조정에 바치는 일등품 말을 키우던 곳이다. 따라비오름은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기로 입소문 난 곳이다.

가을의 따라비오름에는 섬잔대 군락지가 있다. 기슭에서 봉우리까지 보랏빛 잔대가 가을볕에 졸고 있었다. 섬잔대는 이름이 주는 고운 어감과 작은 초롱 같은 꽃 모양이 잘 어울린다. 봄의 제비꽃과 비슷한 이질풀은 이질에 효험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꽃, 꿀이 많은 꽃향유는 다른 오름에서 군락지로 만났을 때는 화려했는데 가을 오름 둔덕에 드물게 피니 애잔하고 추레해 보였다. 자목련 봉우리처럼 생긴 용담은 뿌리 맛이 쓰다고 용의 쓸개, 용담이란 이름을 받은 꽃이다. 오름 정상 가까이에서 발견한 씀바귀꽃의 은은한 금빛은 고려불화에서나 보았던 귀한 색감으로 눈을 오래 붙들었다.

이런 가을 오름의 처연함을 아랑곳 않고 핀 구름체꽃과 꽃 보라색의 한라부추. 두 꽃의 빼어난 자태는 가을 하늘을 떠받들 듯 당당하였다. 한라산에 피었다 하여 한라부추, 구름을 모두락 지게 받친 모양이라 구름체꽃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렇게 들꽃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을 때, 존재의 의미가 배가되는 것을 느낀다.

오름의 귀부인 물매화 (사진 이재정)

들꽃이 많아 발걸음이 더디어지던 중 오름 정상 보랏빛 꽃무리 사이에서 함초롬히 피어난 물매화를 발견했다. 순간 가슴이 설레었다. 오름의 꽃들이 지친 보랏빛이나 마른 줄기로 가을의 처연함에 기울어져가고 있을 때, 촉촉이 물오른 줄기와 작은 연잎 같은 초록 잎사귀 위로 하얀 꽃을 피워내던 물매화. 무심한 듯, 초연한 듯 고고한 그 모습은 ‘오름의 귀부인’이라 불릴 만했다.

마른풀 사이로 피어나는 물매화 (사진 이재정)


내가 가을에 따라비오름을 꼭 가고 싶었던 것도 ‘거기 가면 물매화를 볼 수 있다’ 던 선배의 귀띔이 있어서였다.

제주시 전농로에 있는 제주아트 갤러리에서 강요배 화가의 그림 <달과 물매화>를 본 적이 있었다. 싸한 기운이 느껴지는 오름 둔덕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떠오르고 물매화가 달의 마음을 따라 다투듯 피어나고 있는 그림. 그 앞에서 나는 줄곳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달이 뜨고 이지러지는 그 단순 진리를 따라, 나도 모르게 물매화의 마음을 따라가고 있었다. 달빛에 더욱 생생하던 물매화는 그동안 내 시선이 지나치게 햇빛 쪽으로만 기울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했던 것이다.


3개의 분화구를 품고 있는 따라비 오름 (사진 김수오)


정상에 올랐을 때는 주위의 오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모로 누워서 굼부리(분화구)의 유연한 선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오름이 하나의 굼부리를 갖는데 따라비오름은 이름처럼 세 개의 굼부리가 이웃해 있어 능선의 유연성이 더 실감 났다. 이 세상의 모든 고운 선과 여체의 부드러움이 총망라된 듯, 상당히 관능적이다. 그 품에 안겨 알몸으로 뒹굴고 싶을 만큼. 내 몸은 한껏 달아올랐고 문득 로댕의 조각 < 신의 손> 이 떠올랐다. 로댕의 신 또한 자연이 아닐까.


로댕의 조각 <신의 손>


342미터에 불과한 따라비오름을 한라산 정상만큼 어렵게 오른 것은 무심한 발길에 들꽃이 밟힐까 조심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오름 자체가 주는 감촉이 너무 좋아서였다.


산에서 내려오니 오름은 일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산의 윤곽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어둠이 서서히 내리며 산의 음영이 짙어지는 것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간은 내가 원시의 공간에 서서 영겁의 시간과 조우하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랄까, 태어나서 죽고 하는 일들이 한 날 한 시의 일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그 후 여러 오름을 오르면서도 따라비오름을 다시 오르지 않았던 것은 그 가을, 내게 주던 정취를 오롯이 간직하고 싶어서이다. 6살, 4살 두 아이를 동생에게 맡기고 엄마의 신분을 잠깐 망각하게 한 오름, 어느 만큼 변했을까. 입구를 찾아 헤매며 허리 높이까지 자란 억새를 휘저으며 허이허이 올라가던 따라비오름에도 이제는 관광객을 위한 푯말과 안전판들이 꽂혀있을 것이다. 오름 가는 길 만이라도 야생의 상태로 두었으면. 오름은 오르는 과정의 불편함을 겪어야 더 잘 볼 수 있는 제주의 풍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