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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Feb 03. 2024

최애가 되어줘

암살하듯 사랑하는 사람들







나는 누군가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끼는 사람만으로는 부족했다. 애정하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애정하는 단 한 명의 특별한 존재,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2021년에는 <최애>라는 이름의 일본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드라마의 캐치카피는 다음과 같았다. "모든 것은 사랑하고 있기에. 진상은, 사랑으로 사라진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여자 주인공(제약 회사 대표), 그녀를 쫓는 경시청 형사부 수사 1과의 형사, 그녀를 지키는 제약 회사의 법무부 변호사.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한 여자와 두 남자 간의 삼각관계와 살인사건의 진범 문제가 얽힌 러브 서스펜스 드라마였다.



러브 서스펜스라는 장르는 묘한 데가 있다. "사랑은 암살이 아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문장이다. 상대방이 전혀 알지 못하게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침을 주려는 말이었겠지만, 어쨌든 암살하듯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문장도 탄생했을 것이다. 마치 범죄를 저지르듯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 애틋하고 처연한 마음을 상상해 본다. 사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꽤 흥미로워한다. 심플하지 않고 복잡한 것들은 흥미로우니까.



진실이 무엇이냐가 문제다. 허술한 나는 항상 마음을 들켜버리고 만다. 암살을 하기에는 너무 서투르다. 그렇지만 그런 나도 범죄처럼 사랑에 접근하는 습관이 있다. 사랑을 대하려고 하면 언제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 것이 그 증거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짜일까.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짜일까. 어쩌면 이 모든 건 그냥 호르몬의 작용인 건 아닐까. 어쩌면 네가(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인 게 아닐까. 이런저런 계획을 하고, 대화를 하며 마음을 떠보고, 끊임없는 의심을 하고. 이건 모두 진실이 궁금하기 때문에. 진범이 궁금하기 때문에.



2023년 12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만큼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의심을 했는데 사실 그건 욕심과 자존심의 문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날 밤 나는 분명하게 들었다. "너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야." 나에게 너는 특별한 사람인데.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구나, 이런 마음의 불균형이 존재할 수 있구나. 받아들이고 나니까 맥이 풀리며 그동안 그렇게 궁금했던 진실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게 됐다. 나의 감정을 거짓이라고 믿고 싶었던 건 거절당하면 "나도 너 안 좋아해"라며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감정은 진짜였다. 그게 아니면 마음이 이렇게 아프지 않을 테니까. 마음의 불균형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다면 걱정이나 의심 같은 걸 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20대의 나는 순진하게도 상대방이 나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연말이라 지인이 운영하는 캐주얼 바에 방문했다. 그 술집에는 LP판 레코드가 있었는데, 사연을 써서 내면 지인이 사연을 읽어주고 사연과 어울리는 노래를 자신에 보유한 LP판으로 틀어줬다. 5개 테이블 정도 되는 작은 캐주얼 바가 아늑했다. 나는 사연에 이렇게 썼다. "친구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패했어요.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만큼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청승 부려서 죄송해요." 지인은 정원영의 '다시 시작해'를 틀어줬다. 나의 사연을 읽어주는 그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약 20분 뒤 다음 사연이 도착했다. "옆 테이블의 축하할 그대에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사연은 이렇게 이어졌다. "특별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소개팅을 100번쯤 했을 때 특별한 한 명을 만났어요. 많이 만나보세요.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기회 많은 그대를 응원합니다." 옆 테이블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스타일리시하고 멋진 커플이 앉아 있었다. 그들에게 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남녀 중 여자는 34살에 남자를 소개팅에서 만났다고 했고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다며, 내게 아직 어리니까 100번의 소개팅을 해보라고 말하며 웃었다. 낯선 사람에게 건네는 다정한 마음을 담아, 잊지 못할 말투와 미소로. 



모든 것은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게 끝나버린 마당에, 진실이나 거짓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유 같은 것도 굳이 궁금하지 않다. 내가 졸라서 너의 집에 간 날 밤에, 너는 고집을 부리며 끝까지 스킨십은 안 했지만,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네가 나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꿈이었을까. 영영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제 네 맘이 궁금하지도 않다. 수줍게 범죄를 고백하자면 내게 넌 내게 특별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가장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너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아마도 너는 너만의 특별한 사람을 찾겠지.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다.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덕분에 내 감정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감정은 진짜다. 감정은 변할 수는 있어도, 거짓말은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사랑을 서스펜스처럼 대할 이유는 없다. 진실은 항상 내가 알고 있다.



어젯밤에는 꿈을 꿨다. 그 꿈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보고 웃었고, 배경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 주위에 꽃잎이 흩날렸다. 어딘가에 있을 나의 사람에게. 내가 너의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해줘. 아끼는 사람으로는 부족하니까, 애정하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애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줘. 언젠가 오는 슬프지 않은 새해에는 그렇게 나의 최애가 되어줘.



나를 위한 메시지를 보내준 옆 테이블의 아름다운 커플




이 글에 등장하는 장소와 사람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2023년 12월 29일, 방배의 내추럴와인바 '브브브'에서

'찬빈네집'이 보유한 국내 솔로 가수의 LP 음악과

내추럴 와인을 연말 분위기와 함께 즐기는 기획이 있었습니다.

연말에 들렀다가 잊지 못할 경험을 했어요.

고맙습니다.


따스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방배 내추럴 와인바 브브브

@bbbseoul

커뮤니티 기획자 박찬빈님

@dripcopyrider

행잉스터프 창업자 김수연,임상완님

@sooyon.sinchon

@nicholas.sin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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