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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Sep 24. 2017

어쩌면 슬리데린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해리포터에서 처음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들은 마법의 배정모자의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기숙사를 배정받게 된다.


하루는 포터모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조앤 K. 롤링이 직접 검수한 해리포터의 공식 웹사이트라고 했다. 거기서 테스트를 통해 자기 페트로누스(해리포터에 나오는 소환수이자 수호신)도 알 수 있고, 기숙사도 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회원 가입을 했다. 기숙사는 모자의 질문에 객관식 선택지로 대답하면 알 수 있었다. 모든 질문과 답변 선택지가 영어라 좀 힘들긴 했지만 아무튼 모자의 모든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사실 뭐가 나올지 이미 알고 있었다.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고,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으며,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용기도 있는 내가 그리핀도르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리핀도그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영화를 볼 때마다 삼총사에게 감정 이입해 왔는데..


내가 기대한 결과


슬리데린이 나왔다. ㅠㅠ


나의 상심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나무위키에서 슬리데린 항목을 찾아봤다. "야심가들과 목적 달성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재간꾼들을 위한 기숙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어떻게 봐도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 다음 단락에서 "슬리데린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별로 위로는 되지 않았다. 물론 스네이프가 슬리데린이긴 하지만 그의 장점은 최후의 최후에서야 밝혀지고, 그전까지는 해리의 미움을 사지 않나. 스네이프는 내게 그저 불쌍하고 안타까운 인물일 뿐이다. 나와 루피(내게 포터모어를 소개해 준 직장 동료다. 그녀도 슬리데린이 나왔다.)는 다소 우울해져서 기숙사 환영 편지에 나와있듯이 위대한 마법사 머린이 슬리데린 출신인 것을 위로 삼기로 했다..




하우스 테스트가 다시 생각난 건 그 몇 주 후였다. 단체 카톡방에서 대화를 하다가 "나 지금 퇴근하고 집 가는 중인데 맥주라도 할래?" "콜!" 이렇게 되어 나랑 H양, J군은 예정에 없던 만남을 가지게 됐다.


우리는 평소에도 종종 만나고, 만나지 않더라도 늘 카톡방에서 대화하는 절친한 사이인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이상한 애들이라고 생각할 만큼 별별 얘기를 다 한다. 나는 문득 생각나 그들에게 슬리데린이 나왔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내가 당연히 그리핀도르인 줄 알았는데. 뭐, 슬리데린이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해야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왠지 슬리데린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H랑 J의 하우스도 궁금해져 테스트를 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레번클로일까, 그리핀도르일까, 하며 했는데 왠지 둘 다 자신이 없어 보였다. "사실 나도 슬리데린일 것 같아." 그리고 우리는 깔깔 웃었다. 우리 어쩔 수 없는 슬리데린인가 보다 하고.  왜냐하면 이 얘기를 하기 전에 굉장히 많은 언피씨(정치적 올바름을 의미하는 Politically Correct의 약자인 PC의 앞에 un을 붙여 탄생한 말)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술을 마실 땐 어김없이 다른 데 가서 말하면 큰일 날 법한 (?)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원래 친한 친구들끼리 다 그런 거 아닌가?


그러다가 내가 한때 봤던 유머 게시글이 떠올랐다. 해리포터 슬리데린 학생들이 성격이 꼬인 이유라는 글인데 볼 때마다 너무 웃겨서 해리포터 유머글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글이다. 이 글을 보면 나름 아늑하고 쾌적한 그리핀도르, 레번클로, 후플푸프의 기숙사와는 다르게 슬리데린 기숙사는 지하감옥을 개조한 데다가 햇볕도 안 들어 굉장히 음침하다. 강 아래라 눅눅하기까지 하다. 게시물에 쓰여있는 대로, 저런 곳에서 7년 이상 있으면 네빌도 볼드모트가 될 판이다.



"우리 호그와트 가면 빛도 안 들어오는 지하 감옥에서 지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다가, 문득 그것도 나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맥주를 마시기에는 오히려 최적의 조건 아닌가. 마치 이 펍처럼 어둡고 음침하니 말이다. (술을 좋아하는 J군이 특히 환영했다.) 그리고 가끔씩 우리끼리 파티를 열면 미러볼을 달고 H양이 좋아하는 디스코를 틀면 되겠다. 정말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 어떤 친구들과 함께라면, 슬리데린이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작년 가을학기, 수업의 과제 때문에 청년허브에서 진행하는 청년활동 포럼을 갔다 왔다. '작당 없는 시대에 작당하기'라는 이름의 포럼이었다. 포럼은 '청년활동, 지금'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빅데이터 분석이나 전문가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2부의 청년활동 팀들의 사례를 공유하는 순서가 인상 깊었다. 각양각색의 6팀이 나와 발표를 하며 그들의 작당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중에서도 'CODA KOREA'와 '나는'이라는 팀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전자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인 CODA, 즉 청각장애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모인 팀이었고, 후자는 정신장애를 가진 형제나 자매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팀이었다. 발표를 통해 그들이 살면서 겪었을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청각장애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부모님이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화를 말로 하는 언어 이전에 배웠고 그것 때문에 언어를 배우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신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둔 사람들은, 늘 가족 내에서 배려하고 희생을 강요받으며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라야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리라고 단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심지어 꽤 많고, 그들이 남몰래 겪었을 어려움이 크리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들이 결국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끼리 팀을 꾸리고, 더 나아가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준비 중이라는 것은 들었을 때 무척 감동적이었다. 소외된 개개인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공동체를 꾸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자신과 나아가 타인의 아픔을 치유해나가는 과정이 감동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게 감동적으로 와 닿은 건 나도 그 과정에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포럼에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이 함께 갔는데, 나와 사회과학대학 교지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H와 J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다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함에도 같은 교지 활동을 하기 때문인지 공유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남들에게 쉽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들을 말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동료들)이 있다는 것이 참 행운이구나 하고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한창 헬조선, 탈조선 같은 얘기가 오갈 때였는데, 자칫하면 비관이나 염세주의에 빠지기 쉬울 때에도 함께 고민하면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구나!'라던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희망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 대한 우울함과 분노를 극복할 수 있었다.


엄기호와 조한혜정의 책 <노오력의 배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연구진 이영롱은 어려울 때 '여기가 절벽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옆에서 붙들어줄 사람, 뭔가 같이 해 볼 사람, 서로 기대면서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사람들인데, 이 세대는 그런 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함께 비는 것, 그래서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더라도 이들은 친구와 동료를 갖고 있고 경험과 기억을 공유한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함께 비는 관계를 생각하면 뉴질랜드로 교환학생을 갔던 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온 교환학생 초반에는 혼자가 되었다는 게 너무 두렵고 불안했지만, 일 년간 만난 친구와 동료들이 나를 옆에서 붙들어주었다. 그들 덕분에 가장 우울한 시기에도 '여기가 절벽은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창 우울하고 난 뒤 점차적으로 예전과 같은 유쾌함을 되찾았고, 그때 친구와 동료들의 도움으로 우울함을 극복한 기억은 내 영혼 깊숙이 새겨져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것이 책에서 말하는 카타르시스적 학습의 시공간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 시공간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는 교지 활동으로 이어졌고, 그때 만난 함께 고민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과 이렇게 종종 만나 브런치를 먹거나 맥주를 마신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시공간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당장 내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20대 중반이다 보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사회로 나가거나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생각 이상으로 힘들어한다. 그런 친구들이 절벽을 마주하면 희망을 찾지 못하고 분노하고 우울해하며 비관의 늪에 빠지는 것을 보면 참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일부는 한국을 버릴 결심도 하지만(책에서는 '심정적 난민'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을 벗어나서의 삶도 그리 녹록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책 <노오력의 배신>


고민과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 급격한 경제적 성장 때문에 그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라면 특히 그렇다. 그런 좌절을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 한국을 벗어나는 것만이 답일까? 거기서 부딪히는 또 다른 좌절은? 그게 어디든, 함께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고 주위에서도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오프라인으로 끼리끼리 만나 그 포럼 이름처럼 뭔가 작당을 시작하면 좋겠다. (인터넷에서는 너무 쉽게 타인이 조롱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분노의 언어가 아닌 이해와 공감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옆에서 붙들어줄 사람, 뭔가 같이 해 볼 사람,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커뮤니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외로운 청년들에게는 더더욱!


어떤 끼리끼리라도 좋을 것 같다. 일례로 그때 교지 활동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의 mbti가 모두 ENFP 혹은 INFP라는 사실을 알고 신기했던 적 있다. ENFP(스파크형)의 성격적 특성이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 타인과 사회적,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음으로써 행복을 느낀다'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그들과 있을 땐 (평소엔 종종 허무맹랑하다고 제지당하고 했던) 내 창의적인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고, 동시에 깊은 정서적 유대를 맺을 수 있어 편하고 즐거웠다. '비슷한 mbti끼리의 모임', '인싸였다 아싸가 된 복학생 모임', '세월호 사건 이후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의 모임' 같은 것은 어떨까? '노브라 지지하는 사람들' 모임도 괜찮겠다. 만나서 노브라를 한국에 널리 전파시킨 설리를 찬양하는 거다.



아니면 슬리데린끼리 모이는 것도 좋다. 슬리데린끼리 파티를 열면, 그리핀도르 안 부럽게 끝내주게 재밌게 놀 자신 있으니까. 정말이다.


Malfoy's gang - 말포이 패거리. 이렇게 귀엽게도 논다.



p.s. 이 글의 뒷부분 일부는 2016년 가을학기 조한혜정 교수의 수업 '문화 기획 실습'에서 쓴 쪽글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그 글에 조한혜정 선생님은 "자신의 아픔과 결핍이 축복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 가진 자는 아주 불행한 사람!"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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