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동 May 19. 2018

미스터동의 베트남 여행기 4편

호치민

[지난 3편 이야기]


무작정 걸으며 여행하던 미스터동.


그러다 호치민 역사 박물관에서 조금 특별하게 배치된 불상(佛)과 마주한다.



호치민 역사 박물관 맞은 편



소소한 행복


호치민 역사 박물관은 조용했다. 작은 개미조차 발 뒤꿈치를 들고 다니듯.


그 적막을 깨고 들어선 박물관 입구 넘어 커다란 불상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나는 볼 수가 없었다. 부처 특유의 인자한 미소. 그리고 감은 듯 감지 않은 눈동자. 그리고 커다란 귓불을 볼 수 없었다.


부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불상은 뒤돌아 앉아있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매번 앞모습만 보던 그가 낯설어서였다.


한참을 바라보니, 불상의 색은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한 채 색이 바랗 게 돼 있었다. 세월의 흔적은 불상을 한껏 고풍스럽게 했다.


나는 생각했다. '불상은 어디를  보고 있을까' 그의 시선이 문득 궁금해졌다.


불상 앞으로 가봤다. 그리곤 부처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 내 시야를 맞췄다.


불상과 나는 평행선을 이뤘다.


람과 햇살이 조용히 쉬어가는 연못. 그리고 자신의 꽃말답게 신성하고 아름다운 연꽃이 보였다.


나는 이 풍경을 더 오랜 시간 느끼고 싶었다. 나는 하얀색 돌로 만들어진 벤치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 바람이 만들고 있는 연못의 물결을 바라봤다.


참 평화로웠다.


처마 끝에 달린 작은 종만이 바람의 흔적을 뒤늦게 알려줬을 뿐이었다.


일상에선 느끼기 힘든 여유는 여행을 통해 겨우 붙잡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였다. 인간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적어도 나라는 피조물운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 번뿐인 인생을  속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평범한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간은 끊임없는 자유를 원하지만 한편으론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이상한 존재 아니던가.


문득 어느 책에 이런 구절이 떠올랐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 드려야 한다.
_데미안 中


호치민 역사 박물관은 쉼표를 안겨주는 곳이다.


나는 30분 정도 벤치를 지켰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꼭 이유를 만들기 싫었다.


작년에 나는 일본 기타큐슈를 갔었다. 그때 비 오는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나는 우산을 쓴 채 가만히 서 있어봤다. 보통 때였다면 서둘러 비를 피했겠지만.


가만히 서 있다가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처럼 온전히 빗소리에만 집중했었을 때가 언제였을까'


평소 바쁘다며 자초한 내 일상이 소소한 행복을 가리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돌이켜 생각해보시라.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적이 언제였는지, 하염없이 내리는 빗소리가 어땠는지 말이다.


호치민 역사 박물관 전시품
안녕! 호치민 역사 박물관

호치민 한 바퀴 끝


굳이 고개를 쳐올리지 않아도 해를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렬한 한낮의 태양 빛은 따스한 햇살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호치민 역사 박물관에 나온 직후였다.


나는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반대로 거슬러 갔다.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오는 동안 눈에 익혀뒀던 길이라 발걸음은 조금 빨라졌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내 시선은 비교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날,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호치민 볼거리를 거의 모두 들렸다. 딱 하나 빼고.


이 도시에 온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린다는 '호치민 중앙 우체국'엔 아직 가지 않았다. 아직 5일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으니 급할 건 없었다. 나는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다 지나가는 길에 호치민 중앙 우체국을 만났다. '다음을 기약했건만 이렇게 마주치다니...' 내가 되뇌었다. 누가 나를 위해 중앙 우체국을 재빨리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중앙 우체국엔 들어갈 수 없었다. 내 발목엔 모래주머니라도 찬 듯 발걸음이 무거웠다. 주먹을 꽉 쥐어보니 평소보다 단단하게 힘이 들어갔다.


호치민 중앙 우체국이 보인다.


오늘 너무 많이 걸었고, 체력 방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한 시라도 빨리 까슬까슬한 하얀 이불속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었다.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호치민 한 바퀴가 끝이 나고 있음을...


오전에 들렀던 통일궁을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통일궁을 막 스칠 때, 한국인 관광객 무리가 보였다. 여성들로만 구성된 그들은 한껏 들떠있었다.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은 여성을 주축으로 그들의 웃음소리가 호치민 거리에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나도 신났다. 다만, 아슬아슬했다. 셀카봉에 매달린 휴대전화가 말이다.


'호치민에선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는데...' 나는 걱정했다.


손에 쥐고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불안한데 쭉 펴진 셀카봉에서 휴대전화가 대롱대롱 춤을 추고 있으니,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행은 가벼운 마음을 안고 하지만,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으면 좋다. 한국에서도 어두운 골목에 들어설 땐 주위를 둘러보는 게 우리 아니던가.


작은 방심으로 여행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놓친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가.




베트남 경찰이 있는 곳에선 맘놓고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호치민에 퇴근시간이 찾아왔다.


어느덧 가게의 간판 불빛에 의지해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이 찾아온 것이다.


내 숙소가 있는 여행자 거리엔 향락의 지옥이자 천국의 문이 이미 열려있었다. 양쪽 가게에서 뿜어대는 스피커의 소리는 내 심장을 불규칙하게 뛰게 했다. 번쩍번쩍하는 네온사인 간판과 레이저가 거리를 향해 쏘우고 있었다.


좌판에 깔린 테이블 사이마다 사내와 여인의 입에선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고, 이미 벗어도 한참 전에 벗어야 할 선글라스를 하고 있는 사내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래 여기가 축제다!



아침 찾아 삼만리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전날 먹었던 치킨 튀김을 치웠다.


오늘부터 나는 관광은 잠시 접어두고 휴식을 취하기로 계획했었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나는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책 한 권만을 챙겼다. 오늘 하루는 분위기 좋은 노상카페에서 책만 읽을 것이었다.


호텔 방문 손잡이를 힘껏 당겼다. '철컥'


방문을 열었더니 금세 내 안경엔 습기로 가득 찼다. 그야말로 안습이었다. 호텔 방과 바깥공기는 극명했다.


오늘 정말 덥겠구나!


호치민 거리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등교하는 학생과 출근하는 직장인.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었다.


부모님과 등교하는 학생의 모습이 정겹다.
수많은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베트남의 아침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아침을 먹고자 했다.


아침 먹을 적당한 장소를 찾아 헤매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전날의 피곤이 섞여 다리가 아파왔다. 벌써 1시간째 걸었다. 아침 먹을 장소를 찾지 못해서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먹으려고...'


한국 성형 수출(?)이 신기해 찍어봤다.


이제는 아무 가게라도 들어가겠노라고 마음을 다 잡았다.


그리곤 어느 골목에 자리 잡은 호치민의 김밥천국 같은 곳에 들렸다. 메뉴가 무지하게 많았다(보통 메뉴가 많으면 맛이 떨어진다).


나는 쌀국수와 베트남식 만두튀김인 넴 그리고 음료수를 주문했다.


평범한 맛이다.


여기까지 걸어온 거리에 비하면 맛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라고 노력했다.)


잠깐! 여기서 내가 알게 된 게 있다. 음식값을 지불하고, 계산을 해보니 내가 먹은 것보다 더 많이 돈을 낸 것.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인가?'라고 나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물티슈 사용료가 따로 책정되었던 것이었다. 베트남 호치민의 많은 음식점에선 음식이 나오기 전 물티슈를 제공하는데, 한국처럼 무료가 아니다.


어쩐지, 물티슈를 그냥 내게 툭툭 던져놓지 않았고, 예쁜 그릇에 받쳐 줬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돈으로 얼마 하지 않은 물티슈 가격인데 나는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그래 맞다. 어찌 보면 우린 참 비합리적일 때가 많다. 바닥에 떨어진 100원짜리는 줍지도 않는 요즘이지만 마트 카트에 100원은 무조건 챙겨야 직성이 풀린다.  다이소 1000원짜리 물건에 몇 번을 고뇌하며 구매하지만 2만 원에 가까운 치킨은 고민도 없이 단번에 주문해버린다.


어쨌든 나는 빵빵해진 배를 부여잡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깨끗한 거리를 오랜만에 봤다.
더운 날씨에 반가운 물세례다.


중년 백인 남자 그리고 그의 부인과 딸로 보이는 백인 여성 두 명이 보였다. 그들은 바닥에 뿜어대는 물줄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발 앞에까지 튀어버리는 물줄기에 화들짝 놀랬다. 그러면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치며 웃어댔다. 그야말로 평온한 하루였다.


그리고 나는 주위를 살피곤, 양쪽 팔에 타투로 가득 찬 남자에게 사진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 남잔 대충 한 장만 찍어줄 것 같았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날 찍어줬다.


모든 게 기분 좋은 날이었다. 그런 날이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던 호치민의 한 카페를 찾았다. '콩 카페'라는 곳이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바로 코코넛 커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 새까맣거나 짙은 갈색인 커피.


씁씁한 커피가 목구멍에 타고 가면, 채 소화하기도 전에 각성되는 듯하다.


"여기 Best Of Best 커피를 추천해주세요" 내가 점원에게 말했다. 물론 영어로. 점원에게 추천받은 것은 코코넛 커피였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오래된 나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오래된 카페 인테리어에서 한옥 느낌이 난다.


지금은 활짝 펴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누런 책들이 카페 벽면 빼곡히 쌓여있었다. 살짝 기울어진 오래된 테이블과 적절한 조합이었다.


꽤 유명한 카페였지만 조용했다.


나도 그 흐름에 편승해 내가 가져온 책을 꺼내 들었다. 오늘 온종일 내가 할 일이었다.


책과 커피 그리고 음악은 최고의 하모니다.


카페에 자리가 많이 남아있었지만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혼자 앉기가 미안했다.


창틀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밖을 구경할 수 있어 더 마음에 들었다.


조각난 하늘에선 하얀빛이 새워 나왔다.


그리고 내가 들고 온 책 '기사단장 죽이기'에선 이제 막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그 기사단장이 막 출연했을 때였다.


이제 베트남 호치민에서 소설 속 배경인 일본 어느 산골에 집중할 때였다.





맥주와 책 그리고 사색


문득, 시원한 맥주가 먹고 싶었다.


코코넛 커피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에서 목이 따가울 만큼 시원한 맥 목 넘김을 만끽하고 싶었다.


나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베트남 호치민의 상점 테라스는 서로 마주 보게끔 해놓지 않고 거리를 바라보게끔 해놨다. 그러다 보니, 혼자 오더라도 자신 앞에 빈 의자를 마주할 일은 없다.


시원한 그늘 테라스에 앉았다.
뜨거운 태양이 있는 호치민에선 선글라스가 인기 판매품이다.


하이네킨과 사이공 맥주를 시켰다. 빨대도 함께.


냉장고에서 막 꺼낸 유리잔에 맥주를 붓고는 빨대를 꽂았다.


그리고 내가 빨대로 쭉 빨아 댕기니, 맥주 속에 감춰져 있던 기포까지 딸려와 목젖을 때렸다. 크- 묵었던 갈증이 풀렸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는 맥주병 옆에 놔뒀고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관광지에선 사람구경도 빼놓을 수 없다.


휴대폰의 노래가 한 바퀴 모두를 돌았었다. 이어폰을 벗어재끼고 책을 '탁'하고 접었다.


선글라스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해는 가라앉아 있었다.


이곳에도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홍조가 되었던 내 얼굴도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었다.


이제 저녁 먹자!


맥주를 먹으러 오기 전 봐놓았던 '분짜'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기 전, 나는 동양의 작은 루브르 박물관을 마주했다.


평생을 세계여행하더라도 모두 보기 힘든 그것들.


그것들이 한 가게에 집약돼 있었다.


나는 이끌리듯 그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5편에서 그것들에 대해 얘기하겠다.






COPYRIGHT. 미스터동

YOU CAN CHANGE ANYTHING


매거진의 이전글 미스터동의 베트남 여행기 3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