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이야기와 뻔뻔하지 못한 우리

by 정선생

읽기는 힘들다. 읽고 말하기는 더 힘들다. 읽고 쓰기는 가장 힘들다.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다.

읽기 말고도 즐거운 것이 많다. 그런데도 읽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읽기와 관련한 행사는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책 읽어주는 사람이 많고, 산업 영역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독서라는 행위는 여전히 눈으로 보고 활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행위로 규정하는 듯하다.

오디오북을 듣는 사람도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 활자를 눈으로 본 사람은 저자의 생각을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종종 누군가의 목소리에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읽기도 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일기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따라서 읽기는 단지 책이라는 매체를 읽어서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한정되지 않는다. 읽기는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잊고 다시 기억하는 과정을 거치는 모든 인지 작용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는 참 뻔한 책이 많다. 특히 새로운 발견이나 지식을 전달해 주는 책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문학 관련한 책은 그래서 모두 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지금도 뻔한 책이 쏟아져 나온다. 그 책을 모두 읽을 수 없다. 다행히 그 책을 모두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쓸 수 없었고 읽을 수 없었던 시대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뻔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뻔한 이야기들을 그저 뻔하다는 이유로 읽지 않을 수는 없다. 뻔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보편성과 전형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많은 사람이 말한다. 이 세상에는 여러 관점이 존재할 수 있고, 그 관점 모두 가치를 지닌다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뻔한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평가절하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다니엘 페나크가 말하던 내용도 책을 그냥 읽으라는 것이었다. 자장가 삼아 읽어주었던 것처럼 책을 (문자 그대로) 읽으라고 한다. 줄거리를 기억하고, 인물의 관계를 이해하고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노력은 접어두고 그저 하얀 종이에 가득 채워진 활자를 끝까지 읽으라고 말한다. 물론, 읽고 싶다면 말이다.

그 안에 무언가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책을 건네면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히 읽었던 몇 페이지에서 흥미를 느끼면 그 책을 스스로 읽고 싶어진다. 그 이유는 그 안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그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너무 뻔하다. 그러나 그렇게 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을 읽을 때 그처럼 하는가를 묻고 싶었다. 제목을 보고, 몇 장을 읽다가 내가 기대한 바와 달라서, 어긋난 기대의 이유를 자신의 선입견으로 찾아내면서 그 책을 더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를.


수전 손택이 반대하는 해석은 예술가가 구성해 낸 여러 작품을 그저 주제와 내용만으로 평가하려는 비평 전통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반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을 향한 관심의 필요성. 예술 작품이 존재하는 형태와 방식 자체를 오롯이 느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의 이러한 해석은 틀렸다. 상대방이 맞기 때문에 틀린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내가 맞다는 이유로 틀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해석은 맞고 틀린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해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선택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나의 작품을 둘러싼 해석의 다양성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의 다양성과 사실상 같은 방식에 놓인다.

예술은 기술과 달리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우리 앞에 오지 않으니까. 예술은 실생활에 무용하고, 그것에 빠지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삶이 펼쳐질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한다.


물론 모두 뻔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그 뻔한 이야기를 뻔뻔하게 밀어붙이지는 못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그처럼 허무맹랑한 내용들이 새로운 옷에 싸여 가만히 놓여 있다. 혹시나 하며 펼쳐보기를 기다리면서, 결국 비난당하고 말 것을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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