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길래.. 드디어 골프를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엿새를 배웠고 7번 아이언은 잘 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머리 올리게 자카르타로 오라고 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었던 자카르타 출장을 내가 가겠다고 손을 들었다.
출장은 2박 3일 그 뒤에 붙여서 7일 휴가를 내었다. 이로써 왕복 항공권은 공짜. 나는 7일간의 숙식과 골프비를 부담하면 되는 것으로 세팅을.. ㅋㅋ
출장 일정이 끝나고, 드디어 휴가의 첫날이 밝았다. 친구가 머리 올리는 내게 가르쳐 줄 것이 있다고 해서, 전날밤은 그 친구 집에서 잤다.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를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잔디밭으로 데리고 갔다.
먼저, 어프로치 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다음은 퍼터 잡는 법, 퍼터 휘두는 법. 드라이버 칠 때 티 꽂는 법, 어드레스 하는 법, 에이밍 하는 법 등등
나는 7번만 잘(?) 쳤고, 다른 채들은 손에 잡아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골프 클럽도 그 친구가 자기 치던 걸 줘서 처음으로 전체 구성을 봤다. 자카르타에서 처음으로 풀세트 구경을 한 것이다.
한 시간 정도 그 친구에게서 레슨을 받았다. 그 친구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다. 사실 100킬로 넘게 나가는 친구이기도 했지만, 내게 레슨해 주는 그 녀석은 용인 연습장의 티칭 프로보다 훨씬 더 잘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녀석에게서 배운 대로 퍼터 그립을 잡고 있다.
그날 라운딩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내 친구는...
백돌이였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내 친구는 백돌이다.
첫 라운딩은 둘이서만 했었어야 했다.
그런데, 친구는 나만 라운딩에 데리고 간 것이 아니었다. 골프장에 갔더니, 친구 회사의 법인장님(현지법인 사장님)과 부장님 한 분이 계셨다.
자카르타에서는 둘이서도 라운딩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자기네 사장님과 상사가 있는 자리에, 과장 밖에 안 되는 녀석이, 나를 데리고 갔던 것이다. 참고로, 그 친구 회사는 조그만 회사가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대기업 중 하나다.
여하튼,
7번 아이언만 잘(?) 쳤던 내게, 드라이버는 지옥이었다. 당연히 단 1개도 제대로 맞출 수 없었다. 몇 홀이 지나서는 7번으로 티샷을 했다.
엿새 배운 내가 7번인들 잘 쳤겠는가? 실내연습장에서 들었던 뻥! 뻥! 하는 벽치는 소리는 그야말로 뻥이었다.
7번 아이언만 달랑 들고서, 동으로 서로 뛰어다녔다.
그 더운 나라에서..
내 친구가 사장님에게 욕먹을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그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정말 온 힘을 다해 뛰어다녔다.
마지막에 사장님께 칭찬은 한마디 들었다. "그 정신자세로 뛰어다니면 어디 가서 욕은 먹지 않을 겁니다. 허~ 허~"
나는 내 사랑하는 친구에게 여전히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백돌이였다면, 절대!
누군가에게 머리 올려주겠다고 그 먼 나라까지 오라고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가 백돌이였다면, 절대!
머리 올리는 사람에게 레슨을 해 주겠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내가 백돌이였다면, 절대!
또 다른 백돌이 아니 백사오십돌이나 되는 친구를 데리고 내 사장님이 있는 자리에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