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저녁에 그 착한 청년은 다음날 오전 8시 30분경에 아버지를 '입관'하겠다고 알렸다. 나에게는 입관을 위해서 필요한 서류인 '사망진단서'를 발부받아 제출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망진단서. 그 이름만큼이나, 부담스러운 서류. 첫째 날 저녁 11시쯤이 되자, 조문객의 방문도 뜸해진 것 같아. 나는 아내와 함께 그 '사망진단서'를 발부받으러 병원 1층의 원무과로 향했다.
저녁시간이었기 때문에 1층의 원무과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이미 모두 퇴근하셨었고, 우리는 저녁시간에 서류를 요청할 수 있는 응급실의 원무과로 향했다. 당시 B대학병원의 응급실 원무과는 2평 남짓한 공간에 남성 두 분이 근무 중이었다. 먼저 오신 분들의 서류처리가 완료되길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대략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응급실 직원을 마주했다. 그분은 대뜸 나에게 물어왔다.
"무슨 일로 왔어요?"
그 당시의 분위기를 글로 표현하는데 적잖은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분은 상당히 신경질적인 말투로 검은 양복에 상주 완장을 찬 나를 마치 하대하듯 물어왔다. 순간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아버지의 상중(喪中). 내 손으로 발부받고 싶지 않은 '사망진단서'를 받으러 간 그 자리에서 그 지겹다는 듯한 말투는 내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했다.
"사. 망. 진. 단. 서. 받으러 왔습니다."
나는 '사망진단서'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것으로, 나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표현했다. 이 정도에서 알아들어주셨으면 참 좋겠다는 무언의 대꾸였다. 나의 이런 소심한 대꾸에도 불구하고, 그 불친절한 아저씨의 태도는 변화가 없었다. 나에게 종이와 펜을 툭 내밀고는 이어 말했다.
"이름하고 번호 적어요."
나는 그 아저씨가 내민 종이에, 아버지의 성함과 입원 번호를 기재한 뒤 다시 내밀었다. 그러자 그분은 컴퓨터로 잠시 검색을 하시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어왔다.
"관계가 어떻게 돼요?"
"제가 아들입니다."
입원해있던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발부받기 위해서는 입원기간 동안의 병원비 지불 처리를 완료해야 했는데, 입원 번호로 검색하면 이미 등록되어 있는 어머니의 계좌에서 돈이 알아서 빠져나가는 시스템이었다. 몇백만 원의 병원비를 결제하고 나서 나에게 느릿느릿 영수증을 뽑아주며말했다.
"사망진단서 몇 부 필요해요?"
"10부 주세요..."
10부의 사망진단서가 뒤편에 놓인 프린터에서 천천히 출력되어 나왔다. 그 출력된 사망진단서를 내게 건네는 것으로 그곳에서의 행정처리는 마무리되었다. 그곳을 나오며 아내도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놀랄 정도로 불친절하네..."
나는 그분이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진 않는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아픈 사람을 상대하고 돌아가신 분의 사망진단서를 얼마나 많이 출력하겠는가. 그래도 부모 잃은 슬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인의 가족에게 불쾌감을 심어줄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게 들었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사망진단서 10부를 뽑아 들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고, 돌아오는 길에 사무실에 들러 사망진단서 1부를 내일 있을 입관용으로 제출하였다. 나머지 사망진단서는 동생과, 이모, 아내의 회사에 부친의 사망을 증빙해야 하는 용도나, 추후 아버지의 재산과 관련한 상속 등에 활용될 예정이었으므로 각자 필요한 만큼의 진단서를 나누어 가졌다.
그날의 모든 행사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그 길었던 하루를 정리해야 했다. B대학병원의 장례식장은 가족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조문실과 객실로 나누어 잠자리를 정했다. 나와 아내는 조문실에서, 나머지 가족은 객실에 누워 잠을 청했다. 베개나 이불 따위는 없었다. 객실에 있는 분들은 식탁과 식탁 사이에 빈 공간에 방석을 반으로 접어 베개를 대신하였다. 객실은 그나마 소등은 가능했다. 조문실에서 잠을 청하는 나와 아내는 불을 켜 둔 채 조문실 바닥에 누워 그대로 잠을 청했다. 평소 딱딱한 바닥에서 취침을 하지 못했던 아내도 그날은 별수 없이 방석을 침대 삼아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중략)...
부의금을 정리하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혹자는 '누군가는 했고', '누구는 안 했어'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모든 분들에게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사했다. 평소에 잘 알던 친구나 지인뿐 아니라, 잘 모르는 분들까지도 적잖은 성의를 보내오신 것을 보면서,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내가 헛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동시에 몰려왔다. 그래도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부의를 보내주신 분들을 생각하니 헛살지 않았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만약 나라면 이렇게 신경 쓸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에 내가 헛살았다는 생각이 겹쳐 일었다. 사실 전자보다 후자의 느낌이 더 크고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