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장례식의 '상주'는 대게 맞아들이 맡는다. 아들이 없는 경우는 사위나, 손자가 맡게 된다. 한국 나이 44세,당연하다는 듯이 아버지의 장례에서 나에게는 첫 상주의 역할이 주어졌다. 남성 중심의 장례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변화되어야 할 문화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상주의 역할은 크게 고인에 대한 여러 가지 확인과 결정, 조문객들의 접객과 기타 자잘한 사항에 대한결정을 해야 하는 역할이 따랐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다.텅 빈 빈소에 앉아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안치실에서 그 예전의 착한 청년이 하얀색 옷을 입고 찾아왔다.
"상주님. 아버님 약품 처리하기 전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처음 부여받은 역할에 난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반문했다.
"예? 제가 확인하면 될까요? 아니면 가족들과 같이 가면 되나요?
"아니요. 상주님만 오시면 됩니다."
눈빛으로 어머니께 보낸 'SOS 신호'를 간파당했는지, 고인에 대한 확인은 나만의 역할로 한정됐다. 착한 청년을 따라 들어간 안치실에는 네모난 문이 1, 2층으로 나뉘어 줄지어있었다. 2층의 어느 칸 앞에 선 착한 청년은 내게 물었다.
"고인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0.0.0.입니다."
이름을 확인한 청년은 2층에 있는 한 문을 열었다. 마치 드라마와 같이, 그것도 범죄 스릴러물에서나 보던 기다란 선반 위에 노란색 보자기를 머리에 얹은 아버지의 육신이 보였다. 선반을 잡아당겨 약 1미터 정도 빼낸 착한 청년은 얼굴에 덮여있던 노란색 보자기를 걷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내게 확인시켰다.
"0.0.0. 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중략)...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아버지의 핸드폰을 통해 안타까움을 전해오는 분들도 계셨다. 아버지도 포함된 단체 채팅창에는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시는 분들이 적잖이 계셨다. 직접 걸려오는 몇몇의 수신 전화는 내가 대신 받아 응대했다.
아버지의 핸드폰으로 통화를 마친 뒤 배경화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박사 가운을 입고 한껏 웃고 계신 모습. 내 몸의 물들이 얼굴로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배경화면 구석에 있는 문자 아이콘에는 '미수신' 부호가 가득 있었다. '미수신' 부호가 떠 있는 문자 아이콘을 눌러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로부터 약 일주일 전 문자부터는 옆에 붉은색 '1'의 숫자가 떠 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는 핸드폰의 문자도 확인을 못 하실 만큼 상태가 안 좋아지셨던 것 같다. 미확인 문자를 바라보니 다시금 눈이 붉어졌다. 미확인 문자 중에는 내 둘째 딸이자 아버지의 둘째 손녀가 보낸 문자도 있었다. 문자를 가만히 눌러보았다.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친할아버지 아프지마세용♡
둘째 손녀가 보낸 문자
아이들 엄마가 둘째 딸의 옆구리를 찔러가며 보낸 문자이겠지만, 친 손녀가 보낸 '아프지 말라'는 문자도 확인을 못하셨다.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핸드폰을 접어 빈소 옆에 있는 탁자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
그 이후에도 아버지의 핸드폰은 장례식이 치러지는 삼일 내내 주인 잃은 강아지 마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