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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이두씨 Jun 22. 2022

#12. 장례식: 안치

2022년 5월 7일

'사망선고' 후 병실 안은 적막 했다.


여느 드라마처럼 통곡을 한다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뭇 조용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내 마음속의 무언가는 다르게 움직였다. 내 몸의 일부가 뜯겨 나간 듯이.. 엄청나게 괴로운 감정이 휘몰아쳤다. 아버지의 영면.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순식간에 나를 지탱하던 커다란 무언가가 무너진 느낌이 들었다. 누가 편안한 죽음을 이야기했던가? 세상에 편안한 죽음은 없다. 모두가 괴로웠다.  


나는 우선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아내사촌 형에게 전화를 걸어 전했다.  


"아빠가... 2시 2분에... 돌아... 가셨어..."


분명 의사에게 들었던 그 '사망선고'를 똑같이 전달했을 뿐인데도, 나는 그 '문장'을 입에 올리기 힘들었다. 반쯤 울음 섞인 나의 목소리에 그들도 내게 아무런 위로의 말조차 남기기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졌다.


간호사의 적막을 깨는 목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몇 분을 더 아버지의 움직이지 않는 육신을 어루만지며 그 아쉬움을 달랬다.


"이제 저희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호자분들은 잠시 밖에서 대기해 주시면, 저희가 정리 후 다시 말씀드릴게요."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우리는 떠밀려 나오듯이 병실에서 나와 10층 병동의 유리 출입구 바깥으로 내몰려졌다. 그래도 눈앞에서 멀어지니, 감정을 추스르는 데는 도움이 됐다. 저마다 슬픔을 유지한 채, 차분히 유리창 너머의 간호사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잠시 뒤 간호사의 재호출이 있었다.


"정리가 다 되었습니다. 잠시 들어와서 인사 나누세요."


간호사의 호출 이후 다시 병실에 들어가니, 아버지의 몸에 치렁치렁 달려있던 수 많던 링거줄이 제거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메마른 얼굴과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메 만지며, 다시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복수 때문에 마지막까지 힘들어하셨는데, 복부 양쪽을 뚫어서 연결해 놓은 두 가닥 호스의 끄트머리는 마지막까지도 제거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여쭤보셨다.


"이 호스는 안 빼시나 보죠?"
"예..."


간호사들은 별다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복부 깊이 박혀있는 관을 제거했을 때 생기는 또 다른 문제를 우려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가급적 아버지의 몸을 깨끗하게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홀쭉해진 배와, 그렇지 못한 퉁퉁해진 발을 어루만지며, 아버지의 배에 여전히 박혀있는 1~2센티가량 되는 두 가닥의 호스를 제거해드리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셨다.


...(중략)...


잠시 뒤에 처음 보는 통통한 아저씨가 찾아왔다. 통통한 아저씨는 상복을 대여 및 판매하는 분이셨는데, 나에게는 검은색 양복 상의 및 하의와 넥타이, 하얀색 와이셔츠와 '하얀 바탕에 검은 두줄이 들어간 완장', '상주'라는 한자로 적혀있는 리본을 주셨다. 나 이외의 네 분의 여성분들에게는 투피스로 구성된 여자 상복을 건네주고 가셨다. 와이셔츠, 넥타이, 완장은 구매였고, 나머지 상복은 모든 절차가 끝난 뒤 반납해야 할 물품이었다. 이 상복 등의 물품은 이전 '사무실'에서 일괄 결제할 물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 별도의 계산이 필요하였다. 빈소에 앉아 은행 어플에 접속해 계좌이체를 했다. 이후에도 많은 계좌이체가 필요한 사항이 발생할 것 같아. 우리 집 '기재부 장관'인 아내에게 향후 건건이 발생될 계좌이체 및 결재를 부탁했다.


...


옷을 갖춰 입고, 아무것도 없는 빈소에서 또 멍한 시간을 보냈다. 사진도 없고, 꽃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차가운 안치실에 놓여 계신데, 빈소에 앉아 있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이 흐른 뒤에, 지금에서야 이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립니다.

https://bookk.co.kr/bookStore/66332918fc0d5301c78a2e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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