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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이두씨 Jun 21. 2022

#11. 운명(運命)의 운명(殞命): 죽음의 카운트다운

2022년 5월 6-7일

저녁에 이르자 슬픔이 잦아들고 졸음이 찾아온다.


간단하게 양치와 세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 다시 그 '환자 감시 모니터'를 반복적으로 쳐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뒤로도 아버지는 두세 번에 걸쳐 베넷 똥을 보셨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팔을 걷어붙이셨다. 세 번째 베넷 똥을 치우는 때쯤 되니 나도 이 순번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버지의 몸이 깨끗하길 바라셨던 거 같다. 그 당시도, 그 이후도...


...(중략)...


'아... 이제 끝이 다가오는 것 같다.'


마음속에서 내가 이야기했다. 노란색 'Resp'(호흡)에 적힌 숫자가 점점 낮아졌다. 이제 시끄럽게 "삐! 삐! 삐! 삐!..." 울려대는 소리는 배경 소리에 불과했다. 호흡수가 '20'에서 '10'으로 낮아졌다가, 다시 '15'로 올랐다가 다시 '10'으로 낮아지는 '롤러코스터'가 반복되었다. 마치 '죽음의 카운트다운'이라도 하듯 숫자의 진폭은 점점 천천히 낮아져 들어갔고, 아버지의 들숨과 날숨의 높낮이도 천천히 낮아졌다. 마치 평온하게 숨을 쉬는 것처럼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로, 아버지의 숨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5... 3... 5... 3... 그렇게 반복되는 노란색 호흡수는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멈추지 않던 'Resp'가 드디어 천천히 0에 가까워졌다. 그 힘겨운 마지막 숫자의 움직임은 아버지가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마지막 인사'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두들 안녕...'


이미 다른 수치들은 모두 멈추었고, '스타카토'처럼 들리던 소리는 어느덧 연속된 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삐------------------------------------"


호흡수가 드디어 '0'을 가리켰다. 아버지의 들숨날숨도 어느새 멈추어 있었다. 살며시 벌린 입에서는 어떤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그대로 1~2분가량이 지났다. 우리 모두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갑자기 다시 모니터의  'Resp'가 벌떡 일어나 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곧이어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모르는 남자분이 정체 모를 '하얀 기계'를 수레에 담아 끌고 들어오셨다. 그 남자분은 아버지와 환자 감시 모니터를 연결하고 있던 수많은 선을 제거하고, 곧이어 그 '하얀 기계'에 주렁주렁 달린 전선을 아버지의 팔목, 발목 가슴 등 몇 군데에 부착했다. 그러자 그 기계에서 '다시' 생체신호가 잡히기 시작했다. '아... 아직 살아계시는구나.' 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누워계셨지만, 그 기계는 마치 아버지의 몸에 붙은 영혼과 '교감'이라도 하듯이 마지막 신호를 쫓고 있었다. 그 남자분은 1분여의 짧은 간격으로 그 생체신호를 종이로 출력해 살펴보았다.  


내가 이 와중에 시계를 흘깃 바라보았더니, 1시 59분에서 2시로 변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 하얀 기계의 생체신호마저 천천히 잔잔한 수평선과 같은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일직선으로 표기된 종이를 출력한 뒤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병실의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뒤 의사 가운을 입은 여자분이 들어오셔서, 그 종이를 건네받고, 어머니께 보여드리며 나지막하지만 절제된 감정으로 말씀하셨다.


"저희가 혹시 모를 생체신호를 살펴보기 위해 별도로 정밀검사를 진행한 차트이고요. 보시는 것처럼 신호가 더 이상 잡히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알아들었다는 듯 조용하게 "예..."라고 대꾸하셨다. 이윽고, 그 여자 의사분은 그 병실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아까보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


"2022년 5월 7일 오후 2시 2분. 000 씨 사망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이 흐른 뒤에, 지금에서야 이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립니다.

https://bookk.co.kr/bookStore/66332918fc0d5301c78a2e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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