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이두씨 Jun 20. 2022

#10. 운명(運命)의 운명(殞命): 베넷똥과 간병인

2022년 5월 1~6일

5월이 되었다.


서울에서 돌아온 뒤, 나는 본인의 묫자리를 확인해달라고 하신 아버지의 부탁이 떠올랐다. 나는 그 부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언제가 될지 모를 아버지와의 이별을 나도 천천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촌 형]에게 전화를 걸어 5월 첫째 주의 일요일인 8일, '어버이날'에 묫자리 확인을 위한 동행 일정을 계획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배에 차오르는 복수로 인한 고통을 지속적으로 호소하셨다. 병원 측에서는 아버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배에 복수를 항시 빨아낼 수 있도록 복부 두 군데에 구멍을 내고 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5월 4일에 시행했다.


그리고 그 5월 4일에 나는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중략)...


그렇게 또 한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아버지의 몸을 주무르시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아버지가 변을 보신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변?' 이건 또 뭐지 싶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지를 가만히 들춰 살펴보셨다. 아버지는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성인용 종이기저귀를 차고 계셨다. 기저귀를 젖히니 검붉은 액체가 아버지의 하반신을 뒤덮고 있었는데, 단순한 대변하고는 좀 달랐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어머니는 이것을 '베넷 똥'이라고 표현하셨다. 내가 '간호사를 불러야 하나?' 망설이는 동안, 어머니는 태연하게 비닐장갑과 물휴지, 일회용 비닐과 깨끗한 새 기저귀 하나를 준비하셨다. 준비하시는 와중에도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어제저녁에 4인실에서 지금처럼 베넷 똥을 보셨는데, 혼자서 아빠를 들고 치우는데 같이 있는 사람들한테 어찌나 미안하던지... 여긴 그래도 혼자 있으니까 좀 낫네... 너도... 장갑을 껴."


어머니는 전날 아버지의 뒤처리를 혼자 하는 데 있어서의 고충과, 같은 병실을 쓰시는 분들께 전하는 미안함을 이야기하셨다. 아버지가 그 '베넷 똥'을 보신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간 아버지의 뒤처리를 하고 계셨을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지 못했다. '내가 진짜 불효자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누워있는 아버지의 오른편에 서시고, 내게 왼편에 서달라고 부탁하셨다.


"뭐... 뭘 어떻게 해야 돼요?"


나는 조금 복잡했다. 그게 생전 처음 맡아보는 베넷 똥의 이상한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야 하는 내 손길 때문인지 계속 헷갈렸다. 나는 어머니의 지휘 하에 아버지의 오른 어깨를 잡고 몸을 90도로 들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하반신에 뭍은 '베넷 똥'을 정성스럽게 닦아 주셨다. 다소 조심스러웠던 내 손길과는 다르게 어머니의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익숙했다. 중간중간 아버지는 본인의 몸에 힘을 주어 어머니의 손길이 보다 용이하게 닿을 수 있도록 '협조'하셨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신 걸까? 어머니의 손길이 익숙하고 태연할수록 내 마음은 죄스러웠다. 이 정도의 상황을 마주할지는 솔직히 몰랐다. 


...(하략)...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이 흐른 뒤에, 지금에서야 이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립니다.

https://bookk.co.kr/bookStore/66332918fc0d5301c78a2ed7


매거진의 이전글 #9. 마지막 인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