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JayPark Oct 14. 2022

부모의 시간


 학창 시절의 아침은 정말이지 곤욕과 시련의 시간들이었는데, 가장 큰 고통은 역시나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지는 않았었고, 고등학교 때가 되어서야 학교 가는 사설 스쿨버스(봉고)를 타기 위해서 6시 10분에 기상해야 하는 것이 다였다. 그럼에도 소년 시절의 아침이 곤욕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잠결에 시작되는 어머니와의 기상 갈등?이라고 해야 할까. 일단 기상시간 10분 전부터 나를 깨우기 시작하신다. 6시 10분 기상이면 6시부터 “6시 10분이야 일어나!”하고 깨우시는 것. 그리고 6시 10분이 지나가자마자 ‘늦었어!’, ’ 지각하겠어!‘,’ 학교 가지 마!‘의 레퍼토리로 이어지는데, 그 3분 남짓이 그렇게 괴롭고 힘들 수가 없었다. 그 시간 이미 부엌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고, 응접실의 아버지는 커피 한잔과 함께 신문을 보고 계신다. 생각해보면 내가 기상에 괴로워하기 훨씬 전부터 두 분은 일어나서 어머니는 도시락을 싸시고, 아버지는 집안 정리를 하신 후에 나를 깨우기 시작하시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알지 못했지.


 학교에서 돌아와 학원을 다녀온 후에는 잠시 TV를 봤다. 그때는 5시가 되면 주로 만화로 오후 방송이 시작되던 때였다. 장을 봐오신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고, 그 사이 아버지는 퇴근하셔서 정사각형의 식탁에 세 식구가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응접실로 가서 다시 TV를 보며 어머니가 내오시는 과일을 먹고는 했다. 나는 보통 8시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내 방으로 공부를 하러 들어가면서 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여유로운 저녁시간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어찌 되었건 부모님은 숙제도, 학원도, 시험도, 무언가 해야 하는 정해진 시간도 없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롯이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뭐가 어찌 되었든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서 공부와 시험이 없는 어른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것 같다.


 이제 천신만고 끝에 학생의 신분을 멀리 벗어나 부모의 위치에 왔고, 그때보다는 훨씬 더 늦은 시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도시락을 싸줄 필요도 없어졌다. 어른이 되면, 그러니까 아빠가 되면 저절로 아침 일찍 눈이 떠지고 여유로운 커피 한잔과 뉴스가 함께 할 줄 알았다. 어른의 저녁은 자유로움의 여유가 넘치고,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위치일 줄 알았다. 더 이상 숙제와 학원과 시험과 무언가를 해야 하는 정해진 시간이 없을 줄 알았다. 

어머니가 일주일에 일곱 번씩 일찍 일어나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아버지의 커피를 타드려야 하고, 나를 깨워 도시락을 쥐어 학교에 보내야 하고, 장을 봐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아들의 학교 일을 신경 써야 하고, 그런 시간들을 쪼개어 겨우겨우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어나 잠시의 여유를 가지고 출근을 하셔서 내가 알 수 없는 치열한 9 to 6를 회사에서 보내시고, 때로는 잦은 해외출장을 다녀오시고, 가정을 지켜나가기 위해, 나의 미래가 좀 더 편안할 수 있게, 또 부모님의 미래가 좀 더 편안할 수 있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셔야만 했던 그 수십 년 간의 행위들을 알지 못했다. 


 부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저녁의 여유와 이른 밤 몸을 뉘이시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어나지 않는 아침과 잠들지 않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