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kimkim Feb 24. 2023

개발자가 되기까지 16년 (1)

세상일의 9할은 운이고 기껏해야 1할이 노력이라고 본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타자를 배우는게 좀 느렸다. 피아노 학원처럼 맨 처음에는 어린이 훈민정음인가 하는 걸 배웠다. 몇 달이 지나고나서는 자격증반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워드, 컴활, 정보처리 기능사 같은 자격증들을 하나씩 땄다. 지금 어린 학생들이 파이썬을 배우는 것처럼 일상 생활에서 쓸모는 크게 없지만 유용할 때가 가끔 있는 것들이다.


중학교 때 잠시 정보올림피아드를 했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한 건 중학교에 올라간 이후부터다. 그때 학원에서 영재교육원으로 막 전환해보려던 참이라 학원을 오래다닌 나도 그 반에 들어갔다. 그때는 몰랐지만 올림피아드를 시작하기엔 매우 늦은 나이긴했다. 1년 정도 준비해서 어떻게 전국대회까지는 진출했지만, 입상은 하지 못했다.


영재 캠프를 다녀왔다.

중3 여름 때, 다니던 학원이 영재교육원 체인에 가입하면서 방학 때 합숙 캠프를 다녀왔다. 거기서 처음 대치동 아이들도 보고, 초등학교 애들과 같이 고등학교 수학을 배웠다. 그때 올림피아드를 하기엔 나는 시작부터 너무 늦었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우리 학원에서는 입상권 수준의 강의를 할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올림피아드를 관두기로 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할 걸 그랬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 알았지만, 민사고나 전교생이 적은 특목고의 경우에는 아예 1학년때 자퇴를 해버리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가는 경우가 꽤 있었다. 수능 성적이 내신으로 대체되는 비교내신이었다. 그걸 알았으면, 나도 바로 자퇴를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수능 수학과 과학을 모두 한 번은 다 훑고 들어갔는데, 영어만 제외하면 모두 쉬웠다.


그냥 자퇴를 하고 수능을 쳤으면 3년은 절약할 수 있었다. 학교 수업은 참 지루했다. 나는 그냥 다른 책을 펴놓고 공부를 했고, 선생님들도 당연히 나를 싫어했고 내신도 좋지 못했다. 면학 분위기도 개판이라 이어폰 소리를 크게 해놓고 공부를 했는데, 그 때문에 청력이 망한 것 같다.


쓸데없는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수학, 과학을 다 끝냈다고 생각을 한 나는 대학 물리와 수학을 공부했는데, 1학년 과정은 당연히 쉬우니 재미있었다. 마침 AP를 일반고에도 개방하는 제도가 생겨 성균관대에 방학마다 다니면서 일반물리, 화학을 수강했다. 물론 전부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 시간에 자퇴를 하고 수능을 했으면 성공했을 일이다. 계속해서 뻘짓을 해오다가 정작 수능은 공부하지 않아서 현역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하게 되었다.


집에서 재수를 했다.

어디 학원을 다닐 형편도 안되고, 강남대성 같은 곳에 갈 수 있는 성적도 아니라 집에서 그냥 재수를 했다. 인강이 잘되어 있어 참 다행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프리패스가 더 저렴했다. 거의 1년 가까이 열심히 운동하고, 공부해서 원하는 만큼까지는 아니지만 괜찮은 성적을 받았다.


서울대는 정시 논술고사가 따로 있었다. 수능, 내신, 논술 세 가지를 보는데 나는 내신이 망한 수준이라 논술로 뭔가를 보여줘야만 했다. 대학에서 AP를 들어놓은게 이 때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학원은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도 집에서 했다.


엉뚱한 대학을 갔다.

재수를 하면서 혹시 모르니 가나다군 외의 특수 대학들도 몇 개 지원을 했었다. 가나다군은 모두 서울이었는데 서울대를 제외하면 사립이라 집안 형편이 좀 안됐다. 나군 결과를 기다리던 중에 경찰대학이 먼저 발표가 나서 가입교 교육을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뭐하는 곳인지 하나도 모르고 들어갔다.


가입교 교육 기간에는 핸드폰을 쓸 수 없고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된다. 공교롭게도 서울대 추가 합격 발표가 났고 나는 합격을 하고도 알지 못했다. 누가 항상 비전공자인데 어떻게 개발자가 되었냐고 물어보면 이 이야기를 한다. 붙고 몰라서 못갔다.


정보가 있으면 더 쉽다.

21살까지를 돌아볼 때 실패에 있어 공통적인 부분들이 있다. 정보의 부재.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정보가 공유되는 사회에 내가 들어있지 못했다. 만약에 누군가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정해진 길을 그냥 똑바로 달려올 수 있었다면 훨씬 쉽고 빠르고 편했을텐데. 어쩔 수 없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정보는 가만히 앉아서 얻어지진 않는다.


여기까지가 앞의 14살부터 20살까지의 7년이다.

작가의 이전글 개발자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