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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Feb 28. 2017

당신의 여행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너와 나의 바래지 않는 마지막 이야기를 쓰는 날 

바야흐로 여행의 시대이다.

일 년에도, 아니 한 달 사이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온다.


그 사실은 떠나보면 더욱 선명히 다가온다.

낯선 땅덩어리를 사랑하는, 그곳에 열망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무수히 많다는 걸 말이다.

여전히 그들은 새로운 여행지, 색다른 여행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겠다고?


이제는 세계여행이라는 단어가 좀처럼 낯설지 않다.

게다가 더 이상 이루기 어려운 꿈으로만 보이던 현실의 장벽도 꽤나 낮아진 덕에

세계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는

이 시간을 위해 준비한 내 노력과 그곳에서의 받은 감동을 모두 포괄하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이 시간 동안 남들과 똑같지 않은

특별한 나만의 여행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야심 찬 고민에 사로잡혔다.


모든 여행은 절대적으로 같을 수 없지만

조금 더 명확하게 그 사실을 보여내고 싶었다.

실은 누구에게 보다 나 자신에게 말이다.


나는 이런 여행을 위해 떠나온 거라고.

다녀와서의 내 여행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시간을 보냈다고

스스로에게 좀 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 오래도록 바래지 않는 이야기가 되어주길 바랬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더없이 많았다.

온갖 이름조차 낯선 장비들을 가지고 찍어온 영상으로 번듯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쭙잖게 따라 그린 그림이 무색하게 펜 하나로 여행지의 공기와 감동을 담아내는 일러스트 여행자들도 많았다.


철저하게 평범한 나에겐 그 무엇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여행이었다.

결국은 돌고 돌아 내가 고민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잔가지들을 치고 나니 단 하나의 사실만이 남았다.

내 여행이 오로지 나만의 이야기로 엮어지는 것.

내가 바라는 건 단지 그 이야기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난 앞으로의 마주할 날들을 이야기로 남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글에 욕심은 없다.
아니 사실은 욕심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욕심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하기 전엔

여행을 하면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므로 내 하루를, 내 인생에서 벌어지는 작고 커다란 사건들을

글로써 엮어내리라곤, 그리고 그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써본 글이라곤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 밤새 최종본의 최종본이라는 끝없는 꼬리를 달며 늘어나던 레포트와

쏟아지는 업무들 사이에서 끝내도 줄지 않는 보고서가 전부였으므로.    

 

나에게 글이란

내가 원해서 적는 것이라기보다는

적어야만 하는 무언가 일 뿐이었으니.     


그러다 문득 세계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때였다.

복잡한 머릿속과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럽게 바뀌는 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 노트북을 열었다.



다짜고짜 당시의 나의 생각과 복잡미묘하게 변해가는 감정에 대해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가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고,

어떤 것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던 것인지,

무엇이 무서워서 선뜻 마음을 펼쳐 보이지 못했는지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림이 무엇인지도 점점 뚜렷해져 갔다.     


그때부터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곧장 책상 앞으로 다가가 글을 적었다.

딱히 적어야 할 게 없는 날들도 이런저런 작은 이야기들을 찾아 적었다.


그렇게 맥락 없이 적은 글들이 어느 정도 쌓여갈 때쯤,

나 스스로에게 글이라는 힘이 주는 에너지를 알게 되었을 때쯤,

오랜 시간 꿈꾸고 준비한 세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글이 보여진다는 것은

무언가 굉장히 부끄럽고 창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보여 줄만한 실력도 되지 않을뿐더러

지극히 내 이야기이고 내 감정이고 내 생각들뿐이었기에

나의 아주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부분까지도 열게 되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 글을 하나 둘,  

모르는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도록 용기를 내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는 한국에서 오매불망 연락이 닿기만을 하루가 멀다 하고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에게

나는 오늘을 이렇게 살았고, 무엇을 먹었고, 이런 하루를 보내고 있고,

어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함이었다.

일종의 생존신고랄까.     



처음으로 몇 편의 글이 올라가고 가족들에게로부터 연락이 왔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치 그곳에서 함께 여행을 하는 것만 같다며

이토록 멋진 곳을 멀리서나마, 글과 사진으로나마 함께 여행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나긴 여행의 시간들을 빠짐없이 공유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더불어 나에게 일러두기 위함이기도 했다.

어쩌면 가장 커다란 이유일지도 모를 여행의 한 조각조각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1년간의 세계여행을 위해 생각보다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으므로

이 시간을 단순히 아름다웠던 곳, 맛있었던 음식, 재밌었던 추억 몇 가지로만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또다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똑같은 하루가 쉼 없이 반복되다 보면,

이토록 황홀하고 찬란한 시간들 마저도

어느새 무덤덤하게 잊혀버릴 거란 걸 알기에

그럴 때면 다시금 이 글을 꺼내 읽으며

그때 내가 부딪히고 깨지고 오랜 시간 고민을 하며 찾아낸 소중한 해답들을 두고두고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때의 떨림과 감동, 때론 잊을 수 없는 실망과 고통이기도 했던 날들을

고스란히 남길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날에 적었던 글 뿐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 생긴 여행에서의 습관이 하나 있다.

내 손이 닿는 곳은 그 어디에나 적을만한 무언가가 항상 놓여있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문득문득 떠오르는 감상들과 오래 묵힌 고민을 해결해줄 실마리가 번뜩거릴 때면

그 이야기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수첩을 열거나, 핸드폰을 켜거나,

굴러다니는 종이조각에도 그때의 생각을 남겨놓곤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우연히 예전에 적어 둔 짧고 강렬한 문장들을 펼쳐볼 때면

그 날의 감정은 조금의 흐트러짐과 닳아짐도 없이 그대로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때론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이야기가 괜스레 가슴을 마구 짓누르기도 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감정을 간직하고있는 글은 더욱 뜨거운 지도 모른다.



이토록 커다란 이유가 충족되었음에도 여전히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건 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의 따뜻한 공감일 것이다.


부끄러운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너그러이 건네주는 따뜻한 응원과

용기를 내어 풀어놓은 이야기에 위로를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는

실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계속해서 험난한 여정 가운데 글을 놓지 않도록 해주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이 글은 분명 내 여행기, 내 이야기로 시작되었지만

어느 순간 모두의 여행이자 모두의 일상이고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당신의 여행이 되어줄 수 있다면.

이 글이 여행을 하는 누군가에겐 또 다른 여행이
일상을 살고 있는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일상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진정 그럴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거창하고 어려운 것들이 아니어도 충분하다.

맛있는 커피 한잔으로도,

아름다운 사진 한 장으로도,

따뜻한 밥 한 끼만으로도.

진심을 담은 밝은 미소만으로도,

감동이란 것은 진심을 통하면 무엇으로든 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곳을 걷고 있는 나의 생각과 감정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가슴이 떨리기도, 행복에 젖어들기도,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하기도, 달콤한 밤을 보내기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감동적인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지친 일상에서 간절히 떠나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또는 이미 낯선 도시의 골목 어디쯤을 거닐고 있는 누군가에게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부는 바람과 공기와 햇살을 사랑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이 글을 통해 낯선 곳의 향기를 맡고,

그곳의 거리를 걷고, 그곳의 하늘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오래된 향기가 베어 든 어딘가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면,

그렇게 잠시라도 행복한 순간에 잠길 수 있다면,

그건 분명 글을 쓰는 꽤나 행복한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토록 찾아 해메던 내 안의 뜨거운 열정을 점점 되찾아갔다.

글이 하나 둘 내 여행을 담아낼 때마다 나는 진정 나로써 살아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했다.

어쩌면 내 여행은 그 사실 하나를 찾기 위해 이토록 무모하게 시작되었는지도 몰랐다.


여행은 상자 속에 넣어두는 보물이 아닌
꺼내어 놓을 때 비로소 살아 숨쉬는 이야기이다.


이제 나는 내 글에 이런 욕심이 생겼다.

여행을 떠난 사람과 떠나지 않은 사람,

그곳을 가본 사람과 가보지 않은 사람,

여행을 하는 사람과 일상을 사는 사람,

그 누가 되었건, 어떤 상황 앞에 놓여있건

여행도 일상도 모두 똑같은 인생의 한 순간이기에

여행의 한 걸을 걸음이 녹아있는 이 글을 통해

누군가는 지친 하루에 위로를 받고, 무너져가는 일상에 용기를 얻고,

놓쳐버렸던 작은 영감들을 하나 둘 채워갈 수 있기를 말이다.  

여행을 하며 나는 그렇게 욕심을 키워나갔다.


여행에서 찾아낸 이야기들이 여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갈 하루 속으로 옮겨 올 수 있는 방향을 담을 수만 있다면

적어도 내 여행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욕심의 끝이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이어질지, 혹은 그저 거대한 꿈으로 남아버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아직 그 욕심을 꾸고 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지금과 다른 인생의 방향을 찾아내겠다고 여행을 떠났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들이 많고,

정해지지 않은 수많은 방향과,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들이 수두룩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지금의 나는 내가 꿈꿔온 삶의 모습을 향해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낯선 여행지에서 글을 쓴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고

그 위로와 희망은 다시 나에게 돌아올 뜨거움이자

낯선 곳에서의 하루를 살아갈 또 다른 감동이 되어 줄 테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보니따입니다.

그동안 보니따의 여행 에세이 매거진

"여행이 말했다 지금 떠나도 괜찮아"를 사랑해주시고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를 하는 동안 보내주신 응원과 댓글 덕분에

글을 올리는 하루하루가 행복 나날들이었습니다.


유럽여행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남은 여행 이야기는 매거진

"여행이 말했다 조금 겁나도 괜찮아"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bonita1210


두근두근!!
다들 가는 남미인데,
 나는 왜 이렇게 겁이나지?


예상치 못한 사건들, 가슴 벅찬 순간들로 채워진 숨막히는 남미 여행기가 펼쳐집니다!

새로 시작하는 매거진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언제나 독자분들의 일상과 여행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보니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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