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최종회): 사랑하는 여인을 지옥에서 구해내다.
7월 초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던 날.
그날따라 불현듯 지우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쳤다. 유진의 발길이 저절로 팔달산으로 향했다.
적호왕으로부터 지우가 유황불 지옥으로 보내진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날부터 유진은 하루도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없었다. 제석천의 군대가 출동한다는 소리에 겁을 먹고 끝까지 지우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지우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끊임없이 자신을 자책하며 간이매점 쪽으로 향하던 그는 금잔디 광장 앞에 낯선 청동 동상 하나가 세워진 것을 발견했다. 그 동상은 특이하게도 여우였는데 하늘을 향해 울부짖다가 문득 옆을 돌아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뜬금없이 웬 여우상이지?”
호기심이 당긴 그는 여우 동상으로 다가가 동상의 생김새를 이모저모 뜯어보던 그는 문득 여우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
왠지 매우 낯익은 눈빛이었다.
유진이 혹시나 하며 여우의 눈을 다시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뒤돌아보니 황호 부부가 초췌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황호 어르신?”
유진이 반색을 하자 그를 알아본 황호도 성큼 다가와 그의 손을 덥석 붙잡고는 눈물을 글썽이었다.
“긴가민가했는데……그런데 자네가 여기는 웬일인가?”
“저는 바람 좀 쐬러 왔어요. 어르신은요?”
“지우가 사랑에 눈이 멀어 한때 우리 제국에 큰 죄를 지었지만 그래도 자식인 것을 어쩌겠나? 우리 불쌍한 지우를 괴롭히는 더위를 좀 식혀주려고 왔지.”
황호는 그에게 그렇게 대답하고 등에 지고 있던 아이스박스를 땅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지우가 여기 있어요?”
지우라는 말에 유진은 깜짝 놀라며 얼른 주위부터 두리번거렸다.
“여기야,”
황호는 여우 동상을 가리키더니 아이스박스에서 성에가 하얗게 달라붙은 수건 두 개를 꺼냈다. 그러고는 주위를 재빨리 살펴보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신속하게 수건으로 여우상의 등허리를 덮었다. 얼음에 얼린 딱딱한 수건이 걸쳐지자 뜨거운 청동상에서 칙! 하며 하얀 수증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 왔다.
그것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던 황호가 유진을 돌아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이 여우상이 바로 우리 딸 지우야.”
“넷? 이 동상이요?”
뜻밖의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 유진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때 지우의 어미 청파는 아이스박스에서 수건 두 개를 더 꺼내어 여우상의 등허리까지 마저 덮어주면서 탄식하듯 말했다.
“그 무자비한 적호왕이 지우를 청동상으로 만들어 버렸어. 이 뜨거운 불볕 아래서 지옥을 맛보라고 말이야. 사랑을 한 것도 죄인가? 후,”
복받치는 감정에 말끝을 흐리던 청파는 한숨을 내쉬며 유진을 돌아본다. 한이 서린 그녀의 시선에 유진은 뭐라고 해야 할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지우를 팔열지옥에 놔둘 수 없어요.”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여우의 시선에 유진의 가슴은 강한 죄책감으로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7월 7일
“……!”
지우를 지옥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온갖 궁리를 짜내던 유진은 밤이 깊어지자, 마침내 붓과 두루마리를 챙겨 들고 적호왕이 머무는 화성행궁의 침전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유진은 천호신검을 뽑아 침실 문을 벌컥 열고는 넓은 방 안에서 홀로 잠자고 있는 적호왕의 앞에 거침없이 다가가더니 우뚝 섰다. 유진의 인기척에 잠이 깬 적호왕은 낯선 침입자에게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누, 누구냐?”
그는 본능적으로 검을 걸어두는 머리맡의 거치대에 손을 쭉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유진은 재빠르게 검으로 그의 손을 밀쳐내고는 적호왕을 쏘아보았다.
“움직이면 네 목이 달아난다!”
“유진 네가 이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이냐?”
겨우 그를 알아본 적호왕은 화들짝 놀랐다. 유진은 험악한 표정을 짓고 적호왕을 다그쳤다.
“적호왕, 당장 지우를 석방하라!”
“안돼! 지우는 반란을 도모한 중죄인이야!”
적호왕이 단호하게 나오자, 유진은 그에게 눈을 부릅떴다.
“지우는 자신의 삶을 소중히 한 죄 밖에 없다. 어쨌든 내 명을 어기면 나는 너를 이 자리에서 죽여버려야겠다.”
그의 위협에도 의외로 적호왕은 유진이 쥔 천호신검을 흘끔 쳐다보며 거만하게 낄낄거렸다.
“그깟 검으로 나를 죽일 수 없어. 난 영원불멸이거든. 후후,”
적호왕이 자신감을 보이자 유진은 피식 웃었다.
“과연 그럴까? 적호, 불을 켜라!”
유진의 지시에 적호왕은 뜬금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빨리 촛불을 켜!”
유진이 다시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치자 그제야 적호왕은 엉거주춤 일어나 촛불을 켰다. 방 안이 밝아졌다. 유진은 왼손에 들고 두루마리를 그의 눈앞에 대고 아래로 쫙 펼쳤다. 대략 1미터 정도 되는 화선지에 미리 그려온 적호왕의 전신 모습이 비슷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니, 그건 내 초상화?”
적호왕은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유진을 올려다본다.
“흠, 적호 당신의 반응을 보니 내가 당신을 제대로 그렸군. 후후,”
유진은 만족한 미소를 짓고는 적호왕에게 다시 지시했다.
“자, 이제 먹물을 준비해.”
적호왕은 유진의 의도가 매우 궁금한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의 위세에 눌려 군말 없이 침대 옆에 있던 작은 원탁에서 벼루를 가져다 먹을 갈기 시작했다.
“다 갈았다.”
잠시 후 적호왕이 유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유진은 오른손을 들어 입에다 갖다 댔다. 그리고 아랫배에 약간 힘을 준 후 손을 떼어 펴 보이자, 그의 손바닥에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다이아몬드 하나가 얹혀 있었다. 그는 그 다이아몬드로 검은 먹물을 살짝 찍었다. 유진은 적호왕을 흘끔 쳐다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난 지금 너를 영원히 죽여버릴 작정이다.”
“나를 죽인다고? 영원불멸인 나를 무슨 수로?”
적호왕은 여전히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다 방법이 있지. 잘 봐라.”
유진은 왼손으로 검을 바꾸어 잡고 오른손으로 다이아몬드로 초상화 밑에 한자(漢字)로 ’神位’(신위)라고 썼다. 그제야 그것을 한가롭게 바라보던 적호왕의 얼굴빛이 갑자기 사색이 되었다.
“설, 설마,”
“맞아, 네가 생각하는 것!”
유진은 씩 웃고는 다시 다이아몬드로 ‘적(赤)’이라는 한자를 다시 휘갈겨 썼다. 그 글자가 완성되는 순간 놀랍게도 적호왕의 머리 부분이 잘린 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앗, 이럴 수가!”
순식간에 머리통을 잃어버린 적호왕의 가슴과 하체가 요란스럽게 버둥거렸다.
“이번에는 너의 몸뚱이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겠다!”
적호왕의 놀라는 모습을 악마적인 미소를 짓던 유진은 다시 다이아몬드로 먹물을 찍어 초상화 위에 지방(紙榜)을 쓰듯이 재빠르게 휘갈겼다.
“안, 안돼!”
극도의 공포심에 쩔은 적호왕의 비명이 온 방안을 울렸다. 그래도 유진은 나머지 ‘神位赤狐王之魂靈’(신위적호왕지혼령)이라는 글자를 단숨에 완성했다. 그 순간 적호왕의 나머지 몸뚱이가 초상화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지방(紙榜)의 마력에 의해 꼼짝없이 초상화 속에 갇혀버린 적호왕의 겁먹은 절규가 그림 속에서 애처롭게 새어 나왔다.
“제발 나 좀 꺼내줘!”
“적호 이놈, 이제야 정신이 번쩍 나나?”
“제발, 살려주시오!”
적호는 거의 울다시피 애원했다.
“살고 싶으면 당장 지우를 석방해!”
“그것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없어!”
위기에 처했으면서도 적호왕의 목소리는 여전히 매우 반항적이었다.
“그래?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없지.”
초상화 속의 적호왕을 노려보며 질타하던 유진은 작심한 듯 초상화를 들었다.
“흥, 너같이 무자비한 자는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자격이 없어!”
“나도 제국의 율법을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거요!”
“그렇다면 나도 인간의 법에 따라 너로 화형 시키겠다.”
“화형?”
“그렇다. 내가 네 초상화를 태우면 적호 너는 이 우주에서 영원히 소멸할 것이다.”
“소멸? 그건 절대 안 돼!”
소멸이라는 말에 적호왕은 자지라 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은 당장 적호왕을 태워 죽이겠다는 듯 초상화의 끝을 활활 타오르는 촛불에 가까이 댔다. 이제 유진이 단순히 위협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완전히 파악한 적호왕은 초상화 속에서 절규했다.
“그만! 알,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할게! 멈추라고! 제발,”
한 줌 재로 사라질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침내 적호왕은 항복하고 말았다.
“정말인가?”
유진은 초상화를 촛불 위에서 거두지 않은 채 적호왕에게 다시 재확인했다.
그 순간 감질나게 붉은 불꽃을 날름거리던 촛불이 화르르 초상화의 끝을 살짝 태우면서 검은 연기가 확 피어났다. 삽시간에 초상화의 아랫부분이 검은 재로 변해 후두두 떨어졌다.
“으악! 제발 살려주십시오!”
초상화를 태우는 뜨거운 불길을 느꼈는지 적호왕의 목소리가 단말마의 비명으로 변해갔다. 그제야 유진은 불붙은 초상화를 방바닥에 내던지고 황급히 발로 비벼 꺼버렸다. 그리고 남은 먹물을 모두 초상화에 끼얹었다.
잠시 후 검은 먹물을 흠뻑 뒤집어쓴 적호왕이 처참한 모습으로 다시 방바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적호왕, 명심해. 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지방(紙榜)으로 불러내 너를 태워 죽일 수 있다. 이제 넌 독 안에 든 쥐야. 알겠나?”
유진이 적호왕에게 으름장을 놓자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방바닥에 고개를 조아렸다.
“명심하겠습니다.”
“자, 빨리 지우를 석방해라.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잠시 후 유진은 적호왕을 청동 여우상 앞으로 끌고 갔다. 그가 눈짓하자 풀이 죽은 적호왕은 여우상의 허리에 손을 얹고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화성(華城) 제국 적호왕의 이름으로 지우를 사면하니 그만 팔열(八熱) 지옥에서 나오너라!”
주문을 다 외우고 적호는 돌아서서 유진 앞에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지우는 방금 지옥에서 풀려나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지우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바심이 난 유진은 험악한 표정으로 적호왕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지우가 안 보이잖아? 지금 거짓말하는 것 아니야?”
“아, 아닙니다. 틀림없이 석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 거야?”
조바심이 난 유진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주변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때 여우 청동상 뒤쪽에서 지우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자기야, 나, 여기 있어.”
지우의 반가운 목소리에 유진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환한 얼굴로 물었다.
“이리로 안 나오고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말을 마친 유진이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지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제지했다.
“유진 씨, 이곳으로 오지 마!”
“왜? 무슨 일이야?”
유진은 지우의 간절한 요청에 일단 급정지했다. 그리고 그가 기웃거리면서 걱정스럽게 묻자 지우는 답답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또다시 나의 실체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제발 여자로서 자존심을 지키게 해 줘.”
“난 이미 다 봤는데 뭐가 문제야?”
“그래도 여자 마음은 그게 아니야. 자기야, 미안하지만 유진 씨의 다이아몬드를 빌려 줄 수 있어?”
“내 다이아몬드를?”
“응. 그것을 사용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하고 나갈게.”
“알았어. 잠깐 기다려.”
말을 마친 유진은 적호왕에게 손을 벌렸다. 적호왕은 자신의 품속에서 아몬드 크기만 한 다이아몬드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에게 주었다. 지난번에 가희가 훔쳤던 그 다이아몬드였다. 그것을 건네받은 유진은 적호왕에게 눈짓했다.
“당신은 그만 가!”
“네, 감사합니다.”
적호왕은 유진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깊게 조아리고는 허겁지겁 행궁 쪽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유진은 다이아몬드를 여우상 뒤쪽에서 내민 지우의 하얀 손바닥에 얹어주었다. 잠시 후 유진의 앞에 지우가 화사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좀 야윈 듯했지만,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는 듯이 보였다.
“지우,”
유진이 환호를 지르며 달려 나가 지우를 와락 껴안았다. 그녀도 유진을 방긋 웃으며 꼭 안아주었다.
“봐. 남자들은 다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니까. 이래서 여자들이 화장하는 거야.”
“지우는 화장을 안 해도 정말 예뻐!”
유진이 환히 웃으며 지우의 기분을 맞춰주자, 그녀는 새삼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정말이야?”
“응,”
“당신이 딴 여자를 안 쳐다볼 만큼?”
지우가 살짝 웃으면서 묻자, 유진은 큰일 났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 이상으로 아름다워.”
“그 마음 평생 안 변할 거지?”
지우가 다시 묻자 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흠, 아무래도 우리 질투 대장인 지우를 위해서 빨리 결혼해야겠어!”
유진의 말에 지우는 깜빡 잊었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자기도 빨리 다이아몬드를 충전해야지!”
“다이아몬드?”
“응. 충전 안 하면 당신은 며칠 안에 죽잖아!”
지우의 걱정에 유진은 씩 웃었다.
“아, 그것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슈퍼 다이아몬드를 만지고 왔지.”
“휴, 다행이네. 동작 한번 빨라.”
“그럼, 나도 소중하니까. 그건 그렇고 우리 결혼하면 어디로 신혼여행 갈까?”
“신혼여행?”
유진의 제안에 무척 좋아할 줄 알았던 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우리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후후,”
유진이 의미심장하게 웃자 지우가 문득 정색했다.
“자기야, 우리 신혼여행보다 힐링(healing) 여행을 하는 게 어때?”
“힐링 여행를 다시 하자고?”
“응.”
“슈퍼 다이아몬드 없이도 가능해?”
“그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슈퍼 다이아몬드를 능가할 만큼 그동안 수 없이 단련되어 왔어. 그 정도면 충분해.”
“신혼여행 못 갔다고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야?”
“걱정 마. 사람들도 치료해 주고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을 새길 수 있으니까 난 행복해.”
"좋아, 그래도 결혼은 하고 떠나야지. 내일 당장 하자.”
“내일? 준비를 하나도 못 했는데……더구나 하객들은 한 명도 초청 못 했잖아?”
“하객이라? 아, 저기 떼로 몰려오는데!”
“어디?”
걱정하던 지우가 유진이 급히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 푸른빛 반딧불이 한 무리가 그들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지우는 두 팔 벌리고 환한 얼굴로 달려 나가 반딧불이들을 맞이했다.
“아, 예쁜 것들, 좋아! 하객은 너희들로 충분해!”
“축의금은 한 푼도 못 건질 텐데!
“그깟 돈 필요 없어. 당신만 있으면 오케이!”
유쾌하게 외친 지우는 유진을 와락 끌어당겨 왈츠를 신명 나게 추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반딧불이와 하나가 되어 춤을 추었다. 두 사람이 한창 무아지경에 빠져있을 무렵 유진이 갑자기 춤 동작을 멈추더니, 귀를 쫑긋했다.
“어, 산밑에서 웬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는데.”
유진이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우는 싱긋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마 우리 슈퍼 다이아몬드를 노리는 잭팟의 부하이거나 다른 도적들이겠지.”
“지우는 걱정 안 돼?”
“걱정 안 해. 우리 화성(華城) 제국을 위장(僞裝) 모드(mode)로 전환해 놓으면 저들은 영원히 그것을 찾을 수 없어. 물론 영악한 흡혈박쥐들은 가끔 찾아내기는 하지만,”
지우의 명쾌한 설명에 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그런데 난 예전에 어떻게 간이매점을 찾아냈지?”
“어쩌면 그때 자기가 운이 좋았던 거야. 아니면 나를 만나기 위한 운명의 장난이었거나. 호호,”
지우는 그렇게 말을 던져놓고는 겸연쩍었는지 슬쩍 가벼운 웃음으로 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유진을 처음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지우가 종종 그를 만나기 위해서 화성(華城)의 위장(僞裝) 모드(mode)를 일부러 잠시 해제시켜 놓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우는 지금 그 사실을 유진에게 차마 고백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날 밤 지우는 잭팟의 부하들을 다른 곳으로 따돌리기 위해서 오랜만에 화성(華城)을 위장(僞裝) 모드(mode)로 돌려놓았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깊어져 가는 팔달산의 아름다운 푸른 밤을 행복하게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