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신(神)의 질투가 제일 무섭다.
마침내 결혼식 전날
유진은 지우랑 단둘이서 분위기 있는 결혼식 전야제 파티를 하기 위해서 화려한 꽃다발과 포도주 한 병을 들고 그들의 보금자리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던 유진은 문 앞에서 웬 낯선 여자의 하이힐을 발견하고는 흠칫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누가 찾아온 거야 하고 그가 불편한 심기로 방안의 동정을 살피는데 갑자기 방문이 드르륵 열리며 지우가 얼굴을 내밀었다.
“자기야?”
그를 보고 반색하는 지우의 얼굴이 웬일인지 줄곧 무언가에 짓눌려 있었던 사람처럼 매우 굳어 있었다. 그때 지우 옆으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삐죽 튀어나왔다. 가희였다.
“가희?”
“유진 씨, 안녕,”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몹시 놀란 유진의 입에서 달갑지 않아 하는 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흡혈박쥐들이 물러가면서 나도 정상으로 돌아왔어. 자기는 내가 온 것이 반갑지 않나 봐?”
가희는 유진을 입을 삐죽거리며 흘겨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가희는 더 이상 뱀파이어가 아닌 것 같아 유진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는 가희가 자기 집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짜고짜 가희의 손목을 낚아챘다.
“나랑 밖에서 얘기 좀 하지.”
“왜 그래? 여기서 해!”
가희는 유진의 손을 뿌리치며 앙칼지게 저항했지만 결국 그의 억센 힘에 이끌려 밖으로 끌려 나갔다.
한참 후 유진은 미안한 얼굴로 지우에게 돌아왔다.
“겨우 돌려보냈어. 지우, 미안해.”
그런데 지우는 막상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꾸했다.
“가희 씨도 뒤늦게 후회하는 것 같더라고요. 당신같이 멋진 남자를 차버린 것을 말이에요.”
“그래? 하지만 버스는 이미 떠났어.”
“그 버스에 당신과 내가 탄 거지? 호호,”
지우가 살짝 교태를 부리며 웃자, 유진은 불현듯 욕정이 생긴 듯 그녀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그런데 유진의 품에 안겨 행복한 표정을 짓던 지우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앗, 내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유진이 흠칫 놀라며 묻자 지우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화장대 앞으로 달려갔다.
“다이아몬드가 없어졌어!”
지우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화장대 위와 방바닥을 미친 듯이 뒤졌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다이아몬드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지우는 창백한 얼굴로 방바닥에 주저앉더니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어디에 두었는지 잘 생각해 봐.”
유진은 급격하게 공황 상태에 빠져버린 지우를 침착하게 달랬다.
“아까 다이아몬드를 빼내서 잠시 저 화장대에 올려놓았는데 없어졌어요!”
지우는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유진은 다이아몬드가 화장대의 뒤쪽 틈으로 넘어갔나 싶어 화장대를 잡아당겨 그곳을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도 지우의 다이아몬드는 없었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던 지우는 다시 크나큰 절망에 빠진 듯 흐느꼈다.
“난 그것 없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요. 어쩌면 좋죠?”
“걱정하지 마. 내가 다시 다이아몬드를 구해올게.”
유진은 지우를 꼭 안아주며 다독거려 주었다. 실현가능성이 별로 없는 유진의 약속에도 공포심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 지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체 누가 다이아몬드를 훔쳐 갔을까? 혹시?”
“누가 짚이는 사람이라도 있어?”
“혹시 아까 왔었던 가희가 훔쳐 간 것 아닐까?”
지우가 유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하지만 유진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사람이 질투에 미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죠. 나도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그 여자가 갑자기 우리 집을 찾아온 것부터 뭔가 수상해요.”
“으흠,”
딱히 지우의 의구심을 반박할 수 없었던 유진은 그저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가희?”
두 사람이 가희가 다시 돌아왔나 싶어 동시에 밖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 난데없이 지국천왕이 서 있었다. 다른 천왕들의 얼굴도 보였다.
“지국천왕?”
유진이 놀라 얼른 상황을 살피는데 지국천왕의 뒤에 적호왕이 무장한 군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적호왕은 4대 천왕들을 밀치고 서슴없이 방문 앞까지 밀고 들어왔다.
“적, 적호왕?”
느닷없는 적호왕의 방문에 유진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는 벌떡 일어나 적호왕을 제지하고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내가 다시는 여기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데 할 일이 생겼는데 어쩌겠나?”
적호왕은 대뜸 장검을 뽑고 그를 겨누었다.
“할 일?”
유진이 불안한 시선으로 묻자 적호왕은 의기양양하게 내뱉었다.
“화성(華城) 제국을 전복하려고 했던 지우를 잡으러 왔다.”
“무슨 소리야! 그 얘기는 지난번에 이미 끝났잖아!”
“물론 그때는 그랬지.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어.”
“상황이 달라져?”
“지난번은 지우가 인간의 몸이 되었기에 체포가 불가능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제 지우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이 다이아몬드가 없어졌으니까. 후후,”
적호왕은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 하나를 꺼내 들고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 다이아몬드가 낯익었다.
“그 다이아몬드는?”
유진이 뜨악한 시선으로 적호왕에게 묻자 그 소리를 듣고 얼른 그것을 돌아보던 지우도 화들짝 놀랐다.
“어? 저건 내 다이아몬드야!”
지우의 외침에 유진이 그것을 확인하려고 적호왕에게 다가섰다. 하지만 적호왕이 재빨리 검으로 그를 제지했다.
“진정하라고!”
“야비한 놈! 네가 지우의 다이아몬드를 도둑질해 갔던 거야?”
“내가 아니다. 지국천왕이 가희라는 여자에게 그것을 훔쳐 오라고 사주했지.”
“지국천왕이?”
“그래. 둘 다 질투에 미쳐 있었으니까. 후후,”
적호왕은 음흉스럽게 웃었다. 유진은 지국천왕에게 분노의 시선을 던졌다.
“지국천왕, 네가 정말 다이아몬드를 훔쳐내라고 가희를 사주했었나?”
“그렇다.”
지국천왕은 그를 쏘아보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대체 왜 그런 거야?”
“나도 오래전부터 지우를 내 마음에 품고 있었으니까.”
유진은 기가 막혔다.
“이런, 그렇다고 그 따위 야비한 짓을 해?”
“이봐, 신(神)이라도 질투는 어쩔 수 없어. 내가 사랑해 온 지우가 당신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지국천왕은 그동안 숨겨왔던 지우에 대한 연정을 숨김없이 격정적으로 쏟아냈다. 유진은 진짜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질투 때문에 지우가 위험에 빠졌어! 그래도 좋아? 어리석은 자!”
“내가 못 가질 바에야 차라리,”
지국천왕이 신(神)답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자 유진이 눈을 부라렸다.
“닥쳐!”
“유진, 너라도 별수 없었을 거야!”
지국천왕도 질 수 없다는 듯 세게 나오자 적호왕은 의기양양하게 유진 앞으로 쓱 다가섰다.
“자, 이제 그만 싸우고 이제 네 여자의 진짜 모습을 실컷 봐두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는 볼 수 없을 테니까. 후후.”
적호왕은 지우를 가리키며 비열하게 웃었다. 유진은 얼른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방안에 아름다운 지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웬 백색 여우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유진의 시선을 느낀 여우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낯익은 눈빛!
그 순간 유진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지우?”
유진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큰 소리로 묻자 여우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런데 유진이 갑자기 여우의 머리를 양손으로 끌어안더니 크게 외쳤다.
“이야, 이 수줍은 아가씨가 이제야 진짜 모습을 내게 보여주네. 이제 우리 사이에 허물은 완전히 없어진 거지? 서로 바닥을 본 거지? 어쨌든 고마워!”
“……?”
그의 호들갑에 여우는 뜻밖이라는 듯 멍한 시선이 되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모습마저 예뻐죽겠다는 여우의 볼을 끌어당겨 자기 뺨에 마구 비볐다.
“난 그동안 지우 당신이 못생긴 여우이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최상이야. 너무 예뻐!”
유진이 끝내 환호성까지 지르는 모습을 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적호왕은 혀를 끌끌 찼다.
“예쁘다고? 너 미쳤군. 지우는 축생(畜生)이라고!”
적호왕의 원색적인 비난에 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봐, 적호, 나는 더 최악이었어. 난 욕심 덩어리인 아귀계(餓鬼界)였다고! 여우가 아귀보다 훨씬 더 낫지 않아?”
유진이 반론을 하자 적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인간인 네가 여우랑 사귄다는 것은 좀 어색하지.”
“당신도 같은 족속이면서 뭘 그렇게까지 지우를 비난하는 거야?”
유진의 날카로운 지적에 적호왕은 흠칫 놀랐다. 그러고는 그와 더 이상 논쟁을 벌이지 싶지 않은지 손을 내젓고는 정색했다.
“십계호구((十界互具) 론으로 볼 때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우는 우리 화성(華城) 제국의 법을 어겼다. 다시 제국의 백성으로 되돌아온 이상 이제 우리 제국의 율법에 따라 제대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만약 네가 지난번처럼 지우를 내놓지 않고 저항하면 이번에는 제석천(帝釋天)의 군대가 너를 잡으러 총출동할 거다.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
“제석천의 군대까지 출동한다고? 지우 하나를 잡아가기 위해서?”
“지우는 단순한 파렴치한이 아니야. 나를 반역하고 화성(華城) 제국을 멸망시키려 했었던 중죄인이라는 말이다! 유진, 설마 저 여우를 위해서 너의 소중한 목숨을 걸지 않겠지?”
적호왕은 유진의 눈앞에 검을 번뜩이면서 물었다. 제석천의 군대와 상대할 자신이 없었던 유진은 구석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지우를 묵묵히 바라본다.
“……”
그의 침묵을 지우를 포기하는 것으로 여기고 적호왕이 군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은 방 안으로 몰려가더니 그물을 민첩하게 지우에게 던졌다.
“컹컹!”
그물에 포획된 지우는 유진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울부짖었다. 하지만 유진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린 유진은 적호왕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급히 물었다.
“대체 지우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반란을 일으킨 자는 유황불이 활활 타오르는 팔열지옥으로 떨어진다.”
유진에게 냉랭하게 쏘아붙인 적호왕은 그가 따라붙을세라 포획한 지우를 끌고 군사들과 황급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진은 세상이 무너진 듯 그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 가엾은 지우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