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다이아몬드를 훔친 흡혈박쥐
한참을 뛰어 도청(道廳) 청사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다다르자, 그는 숨이 차서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그는 양쪽으로 유흥 음식점이 줄지어 있는 도로에서 숨을 고르며 흡혈박쥐가 날아갔을 곳을 가늠해 보았다.
초조한 그의 시야에 전방 100미터에서 턱 버티고 있는 팔달산(八達山)이 들어왔다.
예전에 탑산(塔山)이라고 불렸던 팔달산은 해발 128미터의 낮은 야산이었으나 짙은 어둠에 잠긴 모습은 매우 낯설고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가장 유력한 박쥐 출몰지는 저 팔달산인데.”
그러나 이미 인적이 끊겨 괴괴한 산속으로 혼자 들어서기가 왠지 무서웠다. 유진의 등줄기에 소름이 쫙 흘렀다.
“저렇게 넓은 곳에서는 박쥐를 찾기 힘들 거야?”
그렇게 적당한 핑계를 대고 그냥 돌아서던 유진의 눈에 팔달산 중턱 검은 숲 위에서 뭔가 새처럼 날아다니는 검은 물체들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혹시 박쥐?”
자세히 살펴보니 파드닥! 소리를 내고 짧게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이 영락없이 박쥐를 닮았다.
막상 박쥐라는 생각이 들자, 유진의 뇌리에 당장 다이아몬드를 찾아오라며 온갖 성깔을 부리던 가희의 모습이 떠올라왔다. 암흑에 잠긴 심야의 팔달산보다 울부짖는 가희의 화난 얼굴이 더 무서웠다. 잠시 후 유진의 겁먹은 발이 저절로 그를 산으로 끌고 갔다.
“……!”
그런데 그가 막상 팔달산으로 들어가 보니 조금 전에 보았던 박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젠장,”
그렇다고 금방 발길을 돌리기도 뭐해서 유진은 귀를 기울여 박쥐의 소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산속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평소 낮에 가끔 올라와 산책하던 곳이었지만, 야간에는 모든 것이 낯설게 보이는 풍경에 그는 다시 무섬증을 느꼈다. 유진은 스멀스멀 밀려오는 공포를 떨쳐버리려는 듯 일부러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체 이 박쥐 새끼는 어디로 숨어버린 거야?”
그러고는 주변을 힐끔거렸지만, 어두운 숲 속에 혼자 있다는 사실만 부각되면서 더욱 무서워졌다. 그래도 유진은 이왕 산속에 들어온 김에 용기를 쥐어 짜내서, 자기 다이아몬드를 훔친 도둑 박쥐를 찾아 산속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다. 사랑하는 여자 가희를 도저히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끝내 그 어디에서도 박쥐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날 밤늦게 유진이 다이아몬드를 못 찾고 빈손으로 돌아오자, 그 시각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가희는 그에게 차갑게 내뱉었다.
“난 당신처럼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에게 내 인생을 맡길 수 없어. 우리 파혼해.”
그는 사랑했던 약혼녀로부터 졸지에 파혼을 선언당했다.
가희로부터 파혼을 당하고 충격으로 밤새 끙끙 앓던 유진은 다음 날 아침 즉시 커다란 고무줄 새총을 구입했다.
“내가 살 길은 오로지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뿐이야.”
그는 차갑게 얼어붙은 가희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서 박쥐를 잡을 새총 사격 연습에 몰두했다. 그리고 또한 인터넷을 검색해서 박쥐의 여러 가지 특이한 생리도 학습했다.
드디어 박쥐 사냥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마친 유진은 서녘에 해가 떨어지자마자, 새총을 들고 다시 팔달산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인생을 망쳐버린 만든 원수 같은 박쥐를 찾아 죽여버리고 도난당한 다이아몬드를 반드시 찾아야 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었다. 그는 팔달산을 이 잡듯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다.
“……?”
그러던 중 유진은 나무 벤치에 앉아 잠시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문득 팔달산 상공에서 반딧불이 같은 빛이 그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들은 대략 십여 개의 작은 비행체였다.
“저것들은 뭐지?”
유진이 유심히 주시하는 사이 그 빛들은 그가 앉아 있는 곳을 획 지나갔다. 그 순간 그 빛 속에 박쥐들의 형체가 얼핏 보였다. 박쥐들은 빛이 나는 작은 물체를 발에 쥐고 있었다.
“앗, 저건 다이아몬드 같은데……그럼 내 다이아몬드도 저놈들이 훔쳐 갔던 거야?”
다이아몬드를 훔친 유력한 용의자를 발견한 유진은 환호성을 지르며 고무 새총을 거머쥐고는 곧장 그 박쥐들을 따라 정신없이 달려갔다.
“이 새끼들, 이제 내 손에 다 죽었어!”
유진이 이를 갈며 쫓아가는데 잘 날아가던 박쥐들이 갑자기 지상 20미터 공중에서 딱 멈추었다.
“옳거니!”
유진은 쾌재를 지르며 재빨리 새총으로 박쥐들을 정조준했다. 그리고 그가 고무줄 새총에 장전한 쇠구슬을 막 날리려고 하는데, 그때 어디선가 홀연히 또 다른 박쥐 떼가 나타났다. 그것들은 대충 10여 마리가 되었는데 모두 놀랍게도 그가 쫓던 박쥐들보다 몸집이 두 배 이상 컸다.
“저것들 박쥐 맞아? 괴물 아니야?”
그가 몹시 놀라고 있는 사이 작은 박쥐들은 자기들이 쥐고 왔던 빛나는 물체를 괴물 박쥐들에게 차례로 넘겨주었다. 그것들을 건네받은 괴물 박쥐들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자신들이 왔던 북쪽으로 다시 날아갔다.
“안돼!”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한 유진은 재빨리 그것들을 향해 새총의 쇠구슬을 날렸다. 쇠구슬은 바람 소리를 내며 총알처럼 날아갔으나 괴물 박쥐들에게 닿지 않았다.
“이놈들아! 거기 서!”
난감한 유진은 발을 동동 구르며 고함을 쳤으나, 괴물 박쥐들은 어두운 하늘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고 말았다.
“다이아몬드를 못 찾으면 난 정말 끝장이야!”
문득 가희의 성난 얼굴이 떠오르자, 유진은 괴물 박쥐가 날아간 방향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비탈길을 구르고 산등성이를 기어오르며 그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괴물 박쥐를 추적했다.
박쥐들은 어둡고 습도가 높으면서도 바람이 잘 통하는 동굴에서 주로 산다고 하여 그는 동굴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팔달산이 아무리 큰 산이 아니라고 해도 박쥐가 서식할 만한 동굴을 금방 찾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어둑어둑한 산속에서 그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다.
“아, 이럴 때 초음파 탐지기가 있으면 딱 좋은데.”
그는 60만 원짜리 초음파 탐지기를 사지 않은 것을 못내 후회하면서 어두운 산속을 두어 시간을 더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박쥐들이 서식할 만한 동굴을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기운이 쭉 빠진 유진은 길가 바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후,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
그가 피곤한 다리를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고 있는데, 30여 미터 전방 오솔길에 웬 중년 남자가 정신없이 뛰어 내려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의 인생대박과 마주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