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빼앗긴 횡재
다음 날 점심시간에 유진은 주머니 속에서 다이아몬드 하나를 꺼내어 회사 근처에 있는 금은방으로 달려갔다. 현미경으로 다이아몬드를 심각하게 한참 감정하던 보석 금은방 사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것 아주 비싼 다이아몬드인데요.”
예상은 했지만 ‘아주 비싸다’라는 결과를 들은 유진은 새삼 뛸 듯이 기뻐했다.
“오, 대박!”
방금 아주 비싼 것이라고 판정을 받은 다이아몬드가 그가 갖고 있는 노란색 주머니에는 셀 수 없을 만큼 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 몇백억 원은 훌쩍 넘을 듯싶었다.
그 다이아몬드들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다이아몬드의 주인은 총 맞아 죽은 사내였지만 지금 그는 이 세상에 없다.
아니 어쩌면 그 사내도 다이아몬드의 진짜 주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다이아몬드.
그런 경우에는 현재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진짜 주인이다. 지금의 행운은 로또에 대여섯 번 당첨된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는 졸지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날 오후부터 유진은 마음이 붕 떠서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연신 히죽거리는 그의 모습을 마땅치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던 직장 상사 상철이 마침내 가자미눈을 하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들고 온 서류를 그 앞에 홱 던졌다.
“오 대리, 지금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나?”
“넷?”
“이 보고서 숫자가 틀렸잖아! 다시 해!”
상철은 붉은 볼펜으로 좍좍 그은 서류의 틀린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악을 썼다.
“이것은 제가 한 게 아닌데.”
“검토는 당신이 했을 것 아니야? 당신 산수도 못 해?”
유진의 해명을 들지 않던 상철은 급기야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모두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두 사람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유진은 이런 굴욕적인 순간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굴욕을 꾹 참고 상철에게 굽신굽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뭐라고? 산수를 못 한다고? 그럼, 산수 잘하는 당신이 해!”
유진은 그동안 참고 있었던 모든 분노를 그에게 유감없이 모두 터뜨려버렸다. 그의 예상치 않은 거친 반격에 상철은 매우 놀란 듯 눈을 부라렸다.
“이게 미쳤나? 너 회사 그만둘 작정이야!”
“그래, 이 새끼야, 네놈 꼴 보기 싫어서 이 더러운 회사 그만두련다! 당신이나 벽에 똥칠할 때까지 붙어있어!”
유진은 자신도 경악할 정도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온갖 악담을 직장 상사에게 퍼붓고 말았다. 그를 그토록 용감하게 만든 것은 유진의 뒷배로 버티고 있는 다이아몬드의 가공할 힘 때문이었다.
“아,”
가슴을 졸이고 위기 상황을 지켜보던 그의 동료들도 유진의 충격적인 돌변에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떤 자는 자신의 서러움을 대신 풀어주었다며 감사와 환희의 눈물까지 흘렸다.
“뭐,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그날 저녁 집 근처 공원으로 불려 나온 유진의 약혼자 가희는 그의 폭탄선언에 기겁했다. 그와 멋진 데이트를 꿈꾸며 화사하게 꾸미고 나왔던 가희의 멋진 의상들이 한순간에 민망하게 빛을 잃었다.
“응.”
유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가희는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어이가 없다는 듯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아니, 다음 달이 우리 결혼식인데 무책임하게 회사를 그만두면 어떡해? 당신 정말 미쳤어?”
거의 막말에 가까운 가희의 공격적인 비난에 유진은 매우 당황했다.
당혹스러운 마음을 겨우 추스른 유진은 입을 삐쭉 내밀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자기는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결혼식 걱정만 해? 이거 정말 많이 서운한데.”
그의 불평에 가희는 약간 소리를 낮추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두 눈에는 불만과 불안이 가득했다.
“아마 직장 상사가 자기 성질을 또 긁었겠지. 그래도 그렇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직장을 덜컥 그만두면 어떠하냐고?”
“설마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직장을 때려치웠을까 봐?”
유진이 서운함을 꾹 참고 대꾸하자, 가희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 그를 바라본다.
“대체 자기는 뭘 믿고 그토록 무모한 짓을 하는 거야?”
“무모한 짓? 이거나 보고 말해!”
유진은 신경질적으로 내뱉고 그의 서류 가방에서 노란색 주머니를 꺼내어 가희의 눈앞에 대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그게 뭔데?”
대단한 것을 기대했었던 가희는 초라한 주머니를 보고는 금방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유진은 가희에게 윙크를 보내고 노란색 주머니를 쫙 펼쳤다.
“내용물을 보면 아마 기절초풍할걸, 후후,”
그가 의미심장하게 웃고 난 후 주머니를 거꾸로 세우자, 나무 벤치 위로 수십 개의 다이아몬드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이 뿜어내는 영롱한 광채가 어두운 밤하늘을 뚫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어마, 그거 진짜 다이아몬드야?”
그녀의 입에서 탄성과 함께 질문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유진은 얼른 주위를 둘러보더니 황급히 다이아몬드들을 주머니 속에 다시 쓸어 담았다.
“진짜야!”
유진은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가희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가희는 유진의 손에서 주머니를 홱 낚아채어 주머니의 입구를 확 열었다. 그러고는 황홀한 눈빛으로 다이아몬드와 유진을 번갈아 보며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다시 물었다.
“정말이지?”
“그럼. 오늘 보석상에 가서 감정해 보았어. 모두 최고 수준의 다이아몬드래. 흐흐,”
“세상에나, 오오, 자기가 이 빽 믿고 회사를 그만둔 것이었구나!”
“그래! 나도 다 계획이 있었다고. 내가 뭐 어린애인 줄 알아?”
유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스러워하자, 가희는 와락 그를 껴안았다.
“나도 진작에 그런 줄 알았어! 마이 다알링,”
“가희야, 이제 우리 인생길은 뻥 뚫린 고속도로야. 그것도 장미꽃이 쫙 깔린 8차선 고속도로 아우토반이라고! 하하,”
“오, 귀여운 내 사랑,”
가희는 솟구치는 격한 애정을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그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퍼부었다. 호탕하게 웃던 유진도 가희의 키스 세례를 격하게 받아들이며 오랜만에 그녀의 달콤한 혀를 맘껏 탐닉했다.
“……!”
그들이 광란의 키스에 몰두하고 있을 때 공원의 어두운 하늘에 불현듯 박쥐 한 마리가 괴이한 모습을 조용히 드러냈다.
그것은 흡혈박쥐였다.
흡혈박쥐의 붉은 눈이 서로 입술을 빠느라고 여념이 없는 유진과 가희 두 사람을 포착했다. 그리고 박쥐의 예리한 시선이 벤치 위에 놓여있는 노란색 주머니로 옮겨갔다.
공중에서 노란색 주머니의 내용물을 투시하던 박쥐의 붉은 눈이 갑자기 번쩍하고 빛났다. 흡혈박쥐는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환호성을 지르고는 주저 없이 노란색 주머니를 향해 급강하했다.
“……!”
그때 가희의 가냘픈 허리를 끌어당겨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에 키스하던 유진은 무언가 자신의 노란색 주머니를 노리고 질주해 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홱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박쥐는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가듯이 노란색 주머니를 정확하게 찍어 공중으로 높이 비상했다. 정체불명의 박쥐가 자신의 노란색 주머니를 꿰차고 밤하늘로 도망치는 것을 발견한 유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안돼!”
유진은 가희를 얼른 떼어놓고 자신의 행운을 훔친 박쥐를 잡기 위해서 그 뒤를 허겁지겁 뒤쫓아 갔다. 하지만 박쥐와의 거리는 빠르게 멀어졌다.
다급한 유진은 길바닥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돌이나 집어 들고 있는 힘을 다해 박쥐에게 내던졌다. 하지만 기세 좋게 날아갔던 돌은 박쥐에게 닿지도 못하고 맥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박쥐는 노란색 주머니를 발에 쥔 채 그를 놀리는 것처럼 기이한 소리를 내고는 유유히 북쪽으로 날아갔다. 다이아몬드를 훔친 박쥐의 모습이 허공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리자, 유진은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아, 내 다이아몬드!”
유진을 뒤쫓아 오던 가희도 끝내 다이아몬드를 도둑맞은 것을 알고는 길길이 날뛰더니, 이윽고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를 당장 찾아와. 못 찾아오면 우리 결혼도 끝장날 줄 알아! 당장 찾아와!”
이성을 잃은 그녀는 유진을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희의 뜨악한 경고에 놀란 유진은 박쥐가 날아간 북쪽을 향해 무턱대고 뛰었다.
“아, 다이아몬드를 못 찾으면 내 인생은 완전히 폭망이야!”
그의 눈앞에 펑펑 울부짖던 가희의 애처로운 모습과 직장 상사 상철의 비웃는 모습이 함께 어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