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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록 음악과 밥 딜런

1950년대 “포스터”란 작곡가에 의해서 정리가 되었고 1960년대 도회지와 대학가 중심으로 해서 젊은이들 사이에 옛것을 되찾자는 운동 아래 “모던 포크록”이 발전을 하게 되었다. “포크송”은 일종의 청년 문화다. (후에 이 포크 송은 우리나라의 청바지 문화와 생맥주, 통기타 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청년 문화를 만들었던 포크 음악은 1960년대 중반에 들면서 록 음악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자 1960년대 후반의 세계 모든 음악은 철저하게 록 사운드에 의해서 침식되어 가기 시작했다. 어쿠스틱 악기만을 사용하던 포크 음악계에도 이러한 현상이 서서히 태동하기 시작해 전기 기타와 고출력음향 기계들과 록 사운드 편성에 의해서 포크 음악에도 전자의 힘을 빌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포크 음악의 관계자와 가수들은 포크 대신 포크 록을 연주하게 이르렀다.


포크 록을 최초로 대중화에 성공한 아티스트가 바로
밥 딜런이다.


포크 음악이 처음 대중들에게 선보인 것은 1965년 여름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밥 딜런”이 뉴욕의 “퍼리스트 필즈스타디움” 에서 열린 “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다. 그는 어쿠스틱 기타 대신에 전기 기타를 메고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당시의 포크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많은 관중은 이러한 “밥 딜런”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밥 딜런”이 불렀던 <LIKE A ROLLING STONE>은 당시에 포크에다가 록을 융합했다는 이유로 대중 음악계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이 곡은 그때 당시로서는 대곡이라 볼 수 있는 5분 이 넘는 그런 음악이었다. 지금은 10분이 넘는 곡들도 많지만, 당시에 노래들은 길어야 2분 내외였으니 대중음악으로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포크의 순수성과 전통성을 깨뜨리는 행위야! 이건 음악도 아니야!



포크의 전통성을 깨뜨렸다고 해서 많은 팬으로부터 야유와 외면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시대적 유행이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가 경험한 예로 미니스커트가 처음 우리에게 선을 보였을 때 상당한 거부감과 함께 반대 여론이 많았다. 그러나 끝내 미니스커트는 유행했고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즐겨 입는 패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비키니, 유니섹스 패션도 마찬가지다.

밥 딜런의 음악은 포크 음악에 보수적인 대중들에 의해 순수성과 전통성 심지어 도덕성과 윤리성을 깨뜨린다고 거센 반발을 불러왔지만 시대적 유행의 흐름을 타고 유행되고 말았다. 결국 음악은 어떤 새로운 사조가 나타날 때에는 상당한 거센 반발이 있지만 결국 대중들은 받아들인다.

bob-dylan-63158_1280.jpg 밥딜런과 조안 바에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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