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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03. 2022

몽상가(夢想家)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즐겨하는 사람.


나는 "몽상가"다. 남들이 그리 말할때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지난 몇 달간 우울감과 싸워오며 내린 결론이다. 오늘은 자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부모님께 당찬 꿈을 밝히던 10살짜리 아이가, 스무 살이 되어 스스로를 그 모든걸 '몽상' 이었다고 결론 내리기 까지 스스로의 10년을 다뤄보려고 한다. 그저 과거를 돌아보고, 거기에서 얻을 것이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함이다.

    어린아이들은 대게 성인에 비해 충동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기에, 아마 어린 시절의 나를 본 사람들은 내가 "세상을 바꾸어놓을 거예요!"라 말하고 받는 기대감 섞인 시선에서 쾌락을 느끼는 아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의 머리에서 그 시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실제로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조금 구체적으로는, 하루 종일 그렇게 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첫 번째 인간이 생겨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을까. 나는 그들 중 채 1%의 이름도 알지 못하며, 이 모든 건 우리 모두 언젠간 죽기 때문이다. 50년 후가 될지 100년 후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나에게도 무조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기분이 끔찍해졌다. 아마 내가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어차피 땅에 묻혀 썩어가거나 불에 타 납골당에 안치될 운명이라면, 살아생전에 무언가 엄청난 것이 되어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비록 강박감에 비슷한 감정이었다 할지라도, 이것이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한 계기였다.


    어릴 적,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에서는 R=VD라는 방정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R=VD에서 R은 Realization(실현), V는 Vivid(생생한), D는 Dream(꿈)의 약자로, 생생하게 꿈을 꾸면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R=VD는 내게 그 어떤 공부보다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미래가 나를 끌어주는 삶이라니, 이 어찌나 달콤한가. 물론 실제 저자가 전하려던 메시지는 '불가능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위의 이상론적인 메시지는 아녔겠지만, 난 제멋대로 해석한 R=VD를 내 가슴에 품기로 했다. 결국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강력하게 꿈꾸면 모든 걸 이룰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무장한 채 자퇴를 했다. 물론 R=VD는 사실 '매개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녔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나는 보편적 길에서 벗어날 그 어떤 방법이라도 냉큼 받아들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살아가며 평생 사용하지도 않을 것만 같은 지식들을 16년간 배운 결과가 회사원이 되어 기계처럼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다 죽는 삶이라니, 그런 시점에서 예체능은 당시 내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성공한다면 공인이 되어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막대한 부까지 선사해 줄 테니 말이다. ( '실패의 가능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 절대 일반 학교는 가지 않을 거라며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나에게, 부모님은 한 예체능 특화 국제 고등학교를 추천해주셨다.  처음 1년간은 미술 포트폴리오 준비를 했다. 하루 10시간씩 그림을 그렸으며, 목탄 때문에 손이 하얘질 새도 없었지만, 아무리 봐도 내 포트폴리오는 주변 아이들에 비하여 초라해 보였다.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나는 반을 옮겨 선수를 준비했다. 잠을 아껴가며 12시간씩 노력했지만, 연습경기에서 내가 코치들에 눈에 띄는 일은 없었다. 프로구단에 입단하는 친구들이 생겨날 때마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이 내가 목표로 하던 미술 대학의 Early-decision 합격장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꿈은 내게서 멀어져만 갔다.


단 한 번도 '우매함의 봉우리'를 넘은 적이 없었다.

    졸업식이 있던 그날,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다들 같은 졸업가운을 입은 채 단상에 섰지만, 다른 꼬리표를 달고 졸업하게 되었다. 구단에 입단을 하지도, 명문 미술대학의 합격장을 받지도 못한 나 같은 아이들을 보며, 다들 나와 같이 노력을 하면 할수록 꿈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모순에서 비참함을 느끼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성공한 아이들을 보면서는, 부끄럽게도 그 아이들도 언젠가 우리처럼 실패하는 날을 맞닥뜨릴지가 궁금해졌다. 같은 꿈을 가지고 들어서 비슷한 노력을 하지만, '천재'와 '몽상가'라는 극과 극의 꼬리표를 달게 되는 현실. '보편적 가치'를 집어던진 대가는 비참했다. 


  

과거

  내가 이 분야에 들인 노력을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에 쏟았다면, 분명 나는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보편적 가치'를 거부했기에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태로 너무 엄청난 선택들을 했지만, 굳이 그날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인생에 한 번쯤은 이걸 던져버렸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나를 용서해주려 한다. 평생 후회스럽게 살아왔으니 후회스럽게 죽어야 한다는 식의 자기혐오는 이제 끝이다. 곧 유학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내가 어떠한 것을 경험하고 배울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정말 내가 '몽상가' 따위로 남지 않기를 원한다면, 난 결코 내 지난 10년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내 실패를 되돌아보고 거기서 교훈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때는 정말 내가 졸업식에서 느낀 비참함만이 남을 것이란 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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